서울에 돌아오고 나서 세 번째 겨울을 지내고 있습니다. 하고 싶은 것이 많았으니 잘 지낼 줄은 알았지만 돌아오고 나서 지금까지 생각보다 훨씬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내내 그랬던 것만은 아닙니다.
어느 날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데 문득 얹혀산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단지 나이 하나로 한순간에 잉여인간으로 전락했다는 걸 받아들이기 어려웠지요. 그때부터 일할 곳을 찾았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부산에서 잡부로 일할 기회를 얻어 한 달을 그곳에서 보냈습니다. 그 현장 일이 끝나고 다음 현장으로 옮길 준비를 하는데 현장소장이 저는 안 가도 된다더군요. 힘이 달려서 안 되겠다는 겁니다. 하긴 아무리 제가 건강하다 해도 나이에 비해 건강한 거지 몽골이며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젊은 친구들과 비교가 되겠습니까. 그래서 한 달 일하고 잘렸습니다.
며칠 전 파일을 찾는데 그때 써놓은 글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그때 글을 써놨던 것조차 기억 못 했는데. 읽어보니 재미있네요. 그때는 절박했던 것 같은데. 그러고 보면 세월이 약이라는 말은 진리입니다.
바닥을 고무로 코팅한 목장갑은 손에 잡은 게 미끄러지지 않아 좋기는 한데 코팅한 고무 때문에 낄 때마다 너무 뻑뻑했다. 코팅 장갑은 워낙 그런 줄 알았는데 몇 시간 끼고 일하다 보니 그런 느낌이 없어지고 부드럽기만 하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이 장갑이 부드러워질 때까지 끼고 일해본 적이 없었다.
최근 몇 년 아침마다 배변이 시원치 않아 아침마다 화장실 갈 일이 큰 스트레스였다. 일을 시작하고 나서 아침마다 시원하게 일을 봐서 얼마나 개운한지 모른다. 그동안 너무 편안하게 살았던 모양이다.
갑질은 권력의 문제가 아니라 인성의 문제이다. 누구라 할 것 없이 조그만 것이라도 권력이다 싶으면 휘두른다는 말이다. 작업을 하다 물을 흘렸다고 청소원 아주머니들이 도끼눈을 뜬다. 우리가 늘 치우기는 하지만 그것까지는 이해하겠다. 하지만 노골적으로 돈을 요구하는 건 지나치다. 일도 손에 익지 않아 헤매고 있는데 며칠 먼저 일을 시작한 다른 잡부의 눈치까지 보려니 고달프다. 군대도 아닌데. 그러니 갑질을 하지 않는다면 눈꼽만큼도 가진 권력이 없던지, 아니면 정말 인격이 갖춰졌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