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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Feb 13. 2024

잡부 일기 (3)

잡부 일기 2022.03.25


언젠가 한의원에서 날 보고 대형차 껍데기에 소형차 엔진을 달았다고 한 일이 있다. 체격에 비해 장기가 부실하다는 말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머리로는 빨리 일을 끝내고 쉬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몸은 쉬지 않더라도 천천히 일하는 게 편하다.


노동판에서는 생각이라는 게 필요 없다. 지시하는 사람 머릿속이 정리되어 있지 않으니 지시가 우왕좌왕하고, 그래서 미리 생각을 해봐야 갈등만 생긴다.


인격 무시, 중구난방인 작업 지시, 권한 없는 책임 추궁, 허풍뿐인 자기 자랑, 상스러운 대화. 평소에 끔찍이도 싫어하는 일이다. 그런 일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곳에서 일한다는 건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다. 일당 13만 원, 잡부의 노임으로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하지만 그것을 벌기 위해 평소 끔찍이도 싫어하는 모습을 견뎌야 하는 걸 생각하면 정작 내 노동의 대가는 몇 푼 되지 않는 게 아닐까 싶다.


밥은 끼니때가 되어서 먹었지 배가 고파서 먹어본 지 오래되었다. 최근 십여 년은 아침은 간단하게, 점심은 건너뛰고, 제대로 먹은 건 저녁 한 끼였다. 그래도 하루 종일 배고픈지 모르고 살았다. 워낙 움직일 일이 없어서 그랬을 것이다. 현장에서는 세 끼를 다 먹어도 배고프다.


예전에 좋아하던 야구 선수가 TV에 나와 글씨를 쓰는 걸 보고 몹시 실망한 일이 있다. 누군가 손에 힘을 주는 운동이다 보니 글씨 쓰는 것처럼 섬세한 일에 서툴다고 했다. 노동을 시작하면서 글씨가 흐트러지면 어떡하나 싶어 현장에 와서도 성경 쓰기를 계속하고 있다. 보름 넘게 지냈는데 벌써 글 쓰는 게 편안치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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