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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Feb 16. 2024

영화 <플랜 75>

감독 하야카와 지에

주연 바이쇼 지에코

2024년 2월 7일 개봉


지난가을엔가 지하철 혜화역에서 내리는데 교통카드를 갖다 대니 “어르신 건강하세요” 이런다. 처음에는 무슨 소린가 했다가 곧 알아듣고는 별난 일을 다한다 싶었다. 한참 걷다 보니 은근히 부아가 났다. 노인네 건강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공짜 승객이라고 망신 주는 건가 싶었다. 나 같은 생각을 하는 이가 많았던지 며칠 그러다 말았다. 얼마 전부터 “행하세요” 하는 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


얼마 전에 지하철 경로 무임승차를 폐지하겠다는 정책을 들고나온 신당에서 “무임승차도 폐지하지 못하면서 무슨 연금개혁이냐”는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괘씸한 놈이 아니냐. 그러면서도 무임승차고 연금이고 바뀔 날이 머지않았구나 싶기는 했다. 그러고 보니 홍제역엔 유난히 노인들이 많기는 하다. 그런 플래카드를 걸어놓을 만큼.


일본에서는 75세를 ‘후기고령자’라고 부른다. 어디선가는 ‘초고령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환갑 넘은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젠 후기고령자가 머지않은 나이가 되었다. 요즘에는 운이 나쁘면 백 살까지 산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로 수명이 늘어났다. 장수가 그다지 달갑지 않다는 말이다. 건강하지 못한 장수는 재앙일 뿐이기 때문이다. 부자라면 몰라도 서민들은 은퇴 후의 삶이 넉넉할 수 없고 자칫 병이라도 들면 눈 깜빡할 사이에 영세민으로 떨어지니, 노년에 병들면 그저 몸만 고달픈 게 아니라 생존을 염려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이쯤 되면 안락사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나라는 안락사는 금하고 있지만 대신 연명치료를 거부하는 건 허용하고 있다. 그래서 이미 오래전에 연명치료를 받지 않기로 하고 아내와 함께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을 마쳤다. 그러면서도 안락사를 허용해야 맞는 게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 자살이라면 안락사는 의료진의 도움을 얻어 죽음을 선택하는 것을 말한다. 최근에는 본인 의지라는 것을 분명히 하기 위해 안락사보다는 조력자살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내 생전에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조력자살을 법으로 허용하게 된다면 필요한 상황이 되었을 때 나는 망설이지 않고 선택할 것 같다. 2021년 서울대 병원이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안락사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무려 76퍼센트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불과 5년 전 같은 기관이 같은 조사를 했을 때 찬성률이 41퍼센트에 지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안락사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짧은 시간에 극적으로 바뀐 셈이다.


며칠 전에 안락사를 주제로 한 영화가 개봉되었다. 이름하여 <플랜 75>. 75세가 넘으면 국가가 안락사를 지원하는 제도가 시행되는 사회에서 안락사를 신청한 78세 주인공 미치, 구청에서 안락사를 권유하는 젊은 상담사 히로무, 안락사를 신청한 이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언제든 대화 상대가 되어주는 콜센터 여직원 요코, 안락사를 신청하러 왔다가 상담원인 조카를 만난 히로무의 삼촌이 들고 나며 이야기를 끌어간다. 영화는 미치가 안락사를 신청하도록 만든 상황이나 그 과정에 개입한 히로무와 요코가 받은 충격을 담담하게 그리고 있지만, 내 눈에는 감독이 드러내려고 했던 것은 이야기가 아니라 그 이야기가 생겨난 구조인 것으로 보인다.


♣♣♣


영화가 시작되면 한 청년이 비틀거리며 어두컴컴한 건물 복도를 서성인다. 누군가를 죽이고 노인 세대가 미래 세대에게 부담을 지우고 경제를 망친다는 넋두리를 늘어놓고 그 총으로 자살한다. 자기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이 문제가 공론화되기를 희망한다는 말을 남기고.


‘플랜 75’ 상담을 맡은 히로무는 가난한 노인들이 오가는 공원에서 이동상담소를 열고 무료 급식을 얻으러 온 노인들에게 안락사를 신청하면 준비금으로 10만 엔을 지급하고 안락사 이후 모든 과정을 국가가 무상으로 처리한다며 신청할 것을 권한다.


후기고령자 단체건강검진을 하는 곳에 ‘플랜 75’ 홍보물이 걸려 있는 것을 보면서 미치의 친구는 이젠 건강검진 받는 것조차 눈치가 보인다고 말한다.


안락사를 신청한 이들의 외로움을 달래주기 위해 말 상대가 되어주는 콜센터 직원 요코는 미치와 이야기를 나누며 정이 들지만 말 상대가 되어주되 안락사 신청을 철회하지 않도록 신경 쓰라는 센터의 지시 때문에 괴로워한다.


안락사를 신청하러 온 노인이 이십여 년 전에 소식이 끊긴 삼촌인 것을 알아본 히로무는 안락사 당일에 삼촌을 태우러 간다. 약속 시간보다 늦게 나타난 삼촌은 매일 네 시면 일어났는데 이상하게 늦잠을 잤노라고 말한다. 삼촌과 마지막으로 식사하던 히로무가 삼촌에게 술을 권하고, 술 한 잔 마신 삼촌은 도중에 차를 세우고 모두 토해낸다.


미치는 안락사 당일 아침에 나중에 다 정리해서 집을 주인에게 넘겨주겠으니 문을 잠그지 말고 나오라는 상담사의 말을 떠올리고 그릇을 정성들여 닦는다.


♣♣♣


영화 이야기를 쓸 때 줄거리가 모두 드러나게 쓰는 게 아닌 줄은 안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듯 이 영화의 줄거리는 상황을 설명하는 보조장치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줄거리를 아는 게 영화 보는데 전혀 방해되지 않는다. 이 영화는 줄거리를 따라가는 영화가 아니라는 말이다. 보는 내내 거의 매 장면의 함의를 읽어내기 바빴다.


나는 안락사에 매우 긍정적이고 상황이 되면 나 역시 그 길을 선택하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과연 안락사를 허용하는 것이 맞겠나 싶은 회의가 들었다. 미치의 친구가 자기 자식과 손녀들을 생각하면 신청을 생각해 봐야 되는 게 아닌가 말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타인이 안락사를 강요하는 것을 법에서 허용하지는 않겠지만 본인을 둘러싼 상황이 안락사를 선택하게 만들 수 있고, 그렇다면 그 대상은 약자일 수밖에 없는데 그것은 어떤 경우로도 정당화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걸 막을 방법이 없다면 안락사 자체를 허용하지 않는 게 당연하고.


당면한 문제로도 머리가 아플 젊은이들에게 보라고 할 마음은 들지 않는다. 나이 든 사람이 본다고 무슨 뾰족한 수가 생길 것도 아니니 그들에게도 보라고 못하겠다. 이래저래 봐야 할 사람도 없고 실제로 영화관도 텅텅 비었다. 마음만 무겁다. 그래도 보기를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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