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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Mar 23. 2024

석유 이후의 걸프 경제

서울리뷰오브북스 2024년 봄호

2030년 세계 엑스포가 부산이 아니라 사우디로 결정되자 적지 않은 이들이 오일머니 때문에 졌다는 논평을 내놓았다. 생각 없이 쏟아낸 말이니 정색하고 반박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사우디가 우리보다 훨씬 먼저 유치 경쟁에 뛰어든 이후 범국가적으로 쏟아온 노력을 알았다면 그렇게 말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사우디는 살만 국왕 즉위 다음 해인 2016년 ‘비전 2030’을 발표하면서 경제개혁의 1차 목표를 2030년으로 설정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많은 국제행사를 유치했다. 공교롭게도 엑스포에 앞서 유치한 것이 모두 스포츠 행사였는데, 스포츠워싱 논란에 직면해 있던 사우디로서는 이 논란을 비켜 가기 위해서도 엑스포 유치가 꼭 필요했을 것이다. 더구나 2년 뒤인 2032년은 사우디 건국 100주년이 되는 해여서 절박함에서도 한국보다 앞서 있었다.


이처럼 사우디라고 하면 으레 오일머니를 거론할 만큼 사우디는 한국인에게 부국의 대명사로 각인되어 있다. 석유가 국제질서의 핵심이던 세상에서 산유국의 좌장을 자임했을 뿐 아니라 석유로 쌓아 올린 부가 엄청나니 그렇게 생각하는 게 무리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실상은 그것과 거리가 멀다. 석유 매장량이나 생산량이 다른 걸프국가에 비해 월등하다는 자신감이 오히려 석유 이후를 준비하는데 게으르게 만들었고, 이제는 셰일오일의 등장으로 가격 조정 능력뿐 아니라 시장 점유율마저 잃어 그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기도 쉽지 않게 되었다.


사우디를 비롯한 걸프국가는 우리의 오랜 시장이었다. 우리 기업은 그곳에서 얻은 기회를 통해 양적으로 질적으로 성장했고, 그것이 세계시장으로 진출하는 발판이 되었다. 이후 수십 년 동안 경쟁은 치열해지고 상황은 악화 일로를 걸었다. 그렇기는 해도 아직도 그만큼 역동적인 시장은 찾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걸프국가는 아직도 놓칠 수 없는 시장이라는 말이다. 거기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시장에 대한 많은 이해가 필요하지만, 아쉽게도 그와 관련해 시장을 총체적으로 조망한 책을 찾지 못했고 부분적으로 다룬 책도 몇 종 되지 않는다


걸프 시장을 이해하기 위해 그 시장을 직접 경험한 전문가들이 쓴 책 세 권을 골라 필요한 부분을 연결해가며 읽었다. 한국석유공사에서 석유정책을 다루던 최지웅의 『석유는 어떻게 세계를 지배하는가』에서는 ‘산유국 경제’ 초기형태를, 아랍에미리트(UAE) 대사를 역임한 권해룡의 『중동경제 3.0』에서는 걸프국가의 ‘산유국 경제’ 탈출 과정을, 중동경제학자 임성수와 외교부 중동국 손원호의 『중동을 보면 미래 경제가 보인다』에서는 ‘석유 이후’를 준비하는 걸프국가의 현황을 살펴보았다.


국제질서의 핵심으로 등장한 석유


최지웅은 그의 저서에서 석유가 국제질서의 핵심에 오른 과정을 이렇게 설명한다.


“석유의 위력을 세계에 알린 사람은 윈스턴 처칠이었다. 1911년 당시 영국 해군장관이었던 그는 독일과 해군력 경쟁에서 우위에 서기 위해 함대의 연료를 석탄에서 석유로 바꾸었고, 그 결과 함정의 속도와 작전 반경을 크게 개선할 수 있었다. 석유가 석탄보다 부피도 작고 열량이 높았기 때문이다.” ('석유는 어떻게 세계를 지배하는가', 19쪽)


“1940년대 초반까지 중동을 지배하던 영국이 소련의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미국에 손을 내밀자 2차 세계대전에 참여하면서 석유와 중동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 미국이 이에 응해 협약을 맺었다. 그리고 이란의 석유는 영국이, 사우디의 석유는 미국이, 이라크와 쿠웨이트의 석유는 양국이 개발하기로 합의했다.” ('석유는 어떻게 세계를 지배하는가', 26-27쪽)


“1955년 이집트가 아스완댐 건설비를 확보하기 위해 수에즈운하를 국유화하자 영국ㆍ프랑스ㆍ이스라엘이 2차 중동전쟁을 일으켰다. 이에 대항해 이집트는 선박을 침몰시켜 수에즈운하를 봉쇄하고 그 결과 유럽의 석유 재고가 바닥났다. 이 전쟁에 반대한 미국이 유럽에 석유공급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하자 영국과 프랑스가 군대를 철수해 수에즈 위기가 마무리되었다. 이로써 석유가 국제질서의 핵심인 것이 명확히 드러났다.”('석유는 어떻게 세계를 지배하는가', 40-45쪽)


이런 과정을 거쳐 석유가 국제질서의 핵심에 오르기는 했어도 1960년까지 석유의 주도권은 메이저 석유회사들이 행사했다. 1960년 8월 메이저 석유회사들이 유가를 10센트 낮추자 그동안 그들의 횡포에 분노했던 사우디ㆍ베네수엘라ㆍ이란ㆍ이라크ㆍ쿠웨이트가 즉각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결성했다. 석유의 주도권이 이렇게 산유국으로 넘어간 것이다.


중동 산유국, 특히 걸프협력회의(GCC) 구성원인 걸프국가는 석유가 국가경제를 주도해왔다. 아무것도 없다시피 했던 나라가 석유 하나로 일어섰으니 당연한 일이다. 걸프국가는 형태가 조금씩 다르기는 해도 모두 왕국인데, 모든 왕실은 하나 같이 석유로 인한 수익을 왕실 재산으로 여겼고 그 수익 일부를 국민에게 보조금으로 지급해왔다. 국민에게 돌아갈 당연한 권리라기보다는 왕실이 내리는 시혜 정도로 여긴 것이다. 그리고 국가의 경제활동 대부분은 외국인 근로자에게 맡겼다.


권해룡은 그의 저서에서 “걸프국가 왕실이 국민에게 지급한 보조금이 전기ㆍ수도 요금이나 유류대에 치중되어 있어 정작 보조금을 받아야 할 빈곤층보다는 중산층이나 고소득층이 수혜를 입는 모순이 발생했다”고 지적한다('중동경제 3.0', 186쪽). 이후 각국 정부는 수익을 소비 확대와 시멘트나 철강 같은 수입대체산업에 투입했다. 하지만 수입대체산업이 자본 집약적인 장치산업에 치중되어 있어 고용 창출 효과가 미미할 수밖에 없었다. 그 사이 1990년대 말까지 높은 출산율로 인구가 급격하게 늘어났다. 권해룡은 또한 “1990년대 걸프국가 공공분야의 인건비가 GDP의 11.3퍼센트에 이른다”고 언급하고 있는데('중동경제 3.0', 181쪽), 이러한 공공분야의 과잉 인력은 수입대체산업의 미미한 고용 창출 효과나 급격한 인구 증가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걸프국가가 중동 부국으로 올라서게 된 데에는 두 번에 걸친 오일쇼크가 결정적이었다. 1973년 4차 중동전쟁에서 감산으로 재미를 본 사우디가 종전 후에도 감산을 유지하자 유가가 3달러에서 12달러로 급등한 1차 오일쇼크가 일어났다. 1979년 이란에 루홀라 호메이니가 등장하고, 사우디 메카를 폭도들이 점거하고, 소련이 아프간을 침공하면서 중동이 정정 불안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자 유가가 40달러로 급등한 2차 오일쇼크가 일어났다. 그 결과 세계경제가 성장을 멈췄지만 석유 수입국의 대응도 만만치 않았다. 북해와 알래스카에서 유전을 개발하고, 대체에너지로 미국이 원전 200기 건설을 계획하고, 프랑스도 원전 건설에 나섰다. 지금 게임체인저의 자리에 올라 ‘OPEC 주도의 석유시장’을 뒤흔드는 셰일오일도 이때 개발이 시작되었다.


석유 수입국의 이런 반응이 나오기 전에도 걸프국가에서 석유 이후를 준비해야 한다는 자성의 소리가 있었다. 사우디의 전설적인 인물인 아흐메드 자키 야마니 석유장관은 1차 오일쇼크 무렵 이미 “석기시대는 돌이 부족해서 끝난 것이 아니듯 석유시대도 석유가 고갈되기 전에 끝날 것”이라며 석유 이후를 염려했다. 걸프국가도 그동안 탐사와 생산에 치중하던 석유산업을 정유와 석유화학산업으로 확대했다. 하지만 경제활동은 외국인 근로자에게 맡겨놓고 국민에게는 복지 형태로 수익을 배분했을 뿐 석유에 의존하는 ‘산유국 경제’의 본질은 벗어나지 못했다.


산유국 경제를 탈피하려는 걸프국가들의 몸부림


이런 상황에서 가장 먼저 미래지향적 사업에 투자하고 나선 건 산유국이라고 하기에는 석유 매장량이 턱없이 부족한 UAE의 두바이 토후국이었다. 자원 부족에 대한 절박감이 오히려 그들을 선두에 서게 만든 것이다. 사실 두바이의 약진은 가진 게 워낙 없어 외국자본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고, 그러다 보니 다른 나라와는 달리 금융과 관광산업에 뛰어들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계속될 줄만 알았던 성장세는 2009년에 밀어닥친 글로벌 금융위기를 넘지 못하고 모라토리엄을 맞아 멈춰 섰다.


이에 자극받은 같은 UAE의 아부다비 토후국은 새로운 전략과 패러다임으로 무장하고 고부가가치 산업, 혁신 정보통신기술(ICT)산업, 녹색성장과 같은 산업고도화를 달성했다. 임성수와 손원호가 그들의 저서에서 전하는 UAE의 약진은 놀랍다. 경제지표로 봐도 UAE는 ‘산유국 경제’를 벗어난 지 오래되었다. 2020년 UAE 비석유부문 GDP는 전체의 80퍼센트가 넘었고, 그중 두바이는 2021년 98퍼센트에 이르렀다. 그뿐 아니라 UAE의 산업구조가 그동안 에너지ㆍ항공ㆍ관광ㆍ부동산과 같은 경기민감 산업이 주력을 이루던 것에서 이미 우주항공산업ㆍ첨단제조업ㆍ4차 산업으로 전환되고 있다. 산업다각화의 일환으로 우주항공산업을 선택한 것이 다소 뜬금없어 보이지만, 그 산업이 방송ㆍ통신ㆍ기상ㆍ항공선박운항과 같은 분야에 걸쳐 자동차산업 3배에 달하는 파급효과를 일으킨다는 점에서 그들의 혜안과 실행력은 감탄할만하다. 실제로 UAE는 2006년 우주센터를 설립하고 2021년 2월 화성탐사선 ‘아말’을 화성궤도에 진입시켰다. 또한 2015년에 ‘글로벌 녹색성장기구’를 설치하고 ‘녹색 표준’과 ‘녹색 코드’도 수립했다.


사우디도 석유 이후를 준비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파드 국왕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1995년부터 사우디를 실질적으로 이끌었던 압둘라 국왕도 취업을 늘리고 산업을 다각화하는 정책을 펼쳤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그러다가 살만 국왕이 즉위하고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실질적인 통치자로 올라선 2017년에야 비로소 본격적인 경제개발계획이 시작되었다. 당시 빈 살만 왕세자는 사업비가 1년 국가예산을 훌쩍 뛰어넘는 ‘네옴시티’를 필두로 해서 수많은 거대사업을 발표해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그가 추진하는 거대사업은 하나같이 규모나 내용이 상상을 넘어선다. 물론 UAE가 2117년에 화성에 도시를 건설하겠다고 선언한 것을 생각하면 ‘네옴시티’가 허황한 것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사우디의 경제력이 너무나 취약해 보인다. 2014년부터 계속되는 저유가로 8년이나 국가재정이 적자를 면치 못했고, 2022년 유가가 100달러를 넘어서면서 1년 남짓 흑자로 돌아섰던 때를 제외하면 지금까지 적자가 계속되고 있다. 물론 빈 살만 왕세자로서는 그런 경제구조에서 벗어나기 위해 거대사업을 선택한 것이고, 그래서 외국인 투자를 전제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네옴시티’를 제외한 거의 모든 사업이 관광사업이나 이를 뒷받침하는 항공사업, 스포츠사업이라는 점은 의아하다. ‘네옴시티’에도 ‘트로제나’와 ‘신달라’ 같은 리조트가 들어있을 뿐 아니라 최근 발표되는 ‘네옴시티’의 구체적인 사업도 하나같이 관광사업이다. 관광사업에 선도적이었던 UAE가 중동에서 코로나19로 가장 많이 타격을 받은 나라로 꼽힌다는 점으로도 알 수 있듯이 관광사업은 재난에 매우 취약하다. 게다가 관광사업은 동쪽의 UAE와 카타르, 서쪽의 이집트와 경쟁해야 할 뿐 아니라 자국 내에서도 관광지끼리 경쟁해야 한다. 자연의 아름다움보다는 인공구조물로 관광객을 유치해야 하는 한계도 무시하기 어렵다.


산유국 경제 탈피의 장애물


경제개혁을 추진하는 데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정치적 안정이다. 그래서 걸프국가 중 가장 먼저 ‘산유국 경제’에서 벗어난 UAE가 아랍민족과 견원지간인 이스라엘과 2020년 외교관계를 수립했고 2022년 자유무역협정(FTA)도 체결했다. 2016년 공사급 관계로 격하시켰던 이란과 외교관계도 2022년 다시 대사급 관계로 복원했다. 사우디 빈 살만 왕세자도 2017년 비밀리에 이스라엘을 방문해 화해의 물꼬를 텄고 2020년 11월에는 이스라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사우디 ‘네옴시티’에서 왕세자를 만났다. 비록 한 발짝 뒤졌지만 사우디가 UAE를 부지런히 따라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과연 사우디가 UAE의 성공신화를 재현할 수 있을까?


사우디는 ‘비전 2030’의 재원을 국부펀드인 공공투자기금(PIF)으로 충당한다고 발표하고 있는데, 기금의 규모나 기금을 확대할 수 있는 여력은 UAE의 국부펀드에 비교할 바가 아니다. 우선 자산규모는 PIF가 7,760억 달러인 데 비해 UAE는 아부다비 투자청(ADIA)을 비롯한 4개 펀드에 1조5,685억 달러로 사우디 두 배가 넘는다.(국부펀드연구소 SWFI 자료 업데이트) ADIA는 원유 잉여수익이 재원으로 투입될 뿐 아니라 기금이 미국이나 유럽 안전자산에 투자되어 있다.('중동을 보면 미래 경제가 보인다', 97쪽) 반면, PIF는 정부 출자나 아람코 매각으로 기금을 충당하기 때문에 적자재정이 계속되고 있는 사우디로서는 외부 차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으며, 최근 수년간 전망이 불투명한 스포츠산업 등에 과도하게 투자하고 있어 PIF의 재정은 더욱 악화하고 있다.('중동을 보면 미래 경제가 보인다', 43-45쪽) 외국자본에 의존했던 두바이가 겪은 2009년 모라토리엄이 연상되는 구절이다. 결국 사우디 ‘비전 2030’의 성공은 외국인 투자에 달린 셈이고 사우디 정부에서도 이를 공식화하고 있다.


하지만 빈 살만 왕세자의 거침 없는 행보로 안정되어가는 것 같던 정치적 상황은 2023년 10월 일어난 가자-이스라엘 전쟁으로 다시 한번 위기를 맞았다. 이 전쟁은 당사자인 이스라엘뿐 아니라 배후인 사우디와 이란에도 달갑지 않을 것이어서 오래 가지 않으리라고 짐작했지만 2024년 1월 현재 오히려 확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정치적 상황이 이렇게 불안하고 OPEC에서 감산을 결정했는데도 유가는 오히려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바로 셰일오일 때문이다. OPEC과 점유율 경쟁에서 밀려 도태될 것 같던 셰일오일은 급속한 기술 발전으로 생산 한계를 따지는 게 무의미할 정도로 하루가 다르게 생산량이 늘어나고 있다. 그 결과 2023년 미국과 캐나다의 석유와 가스 생산량이 중동을 추월했다. 감산으로 유가를 떠받치려던 사우디는 점유율마저 위협받게 되자 2023년 1월 아시아에 공급하는 유가를 2달러 인하해 점유율 복구에 나섰다. 유가를 지키려다가 점유율을 잃어 10년 넘게 고생했던 1980년대의 경험도 기억났을 것이고, 그러다가 자칫 매장되어 있는 석유를 캐보지도 못하고 석유시대 종말을 맞는 게 아닐까 두렵기도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우디를 비롯한 걸프국가의 경제개발계획은 재정만 뒷받침되면 실행이 가능한 것일까? 전 UAE 대학 교수 압둘칼리끄 압둘라는 그의 저서에서 “모든 개혁정책은 민주주의 영역에서 신뢰성이 보장되지 않으면 완성될 수 없다”고 말한다.('걸프의 순간', 224쪽) UAE 대사를 역임한 권해룡은 “중동의 왕정이 본질적으로 민주주의 가치와 상충한다”고 지적한다. ('중동경제 3.0', 29쪽) 필자의 눈에는 2010년 ‘아랍의 봄’도 잘 견뎌낸 걸프국가가 왕정을 포기할 것이라는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왕정에서는 개혁이 실패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겠지만 한계는 있을 것이고, 결국 걸프국가의 개혁도 마찬가지 아닐까.


저자들이 지적한 문제 말고도 걸프국가의 치명적인 약점이 하나 더 있는데, 대부분의 경제활동을 외국인에게 의존한다는 점이다. 사우디 통계청 2023년 1분기 자료에 따르면 전체 취업인구 1,536만 명 중 자국민은 387만 명으로 25퍼센트에 불과하다. 그나마 2019년 4분기에 비해 70만 명이나 증가해서 그렇다. 전체인구는 자국민이 외국인의 1.5배에 달하면서도 취업인구가 외국인의 3분의 1에 불과한 상황이야말로 사우디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사우디 정부는 자국민 의무고용정책인 ‘사우디제이션’을 강력하게 펼치고 있지만, 이는 자국민이 일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고백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 의무를 부여해야 마지못해 채용한다는 것이니 말이다. 그런데도 자국민을 성실한 근로자로 키우는 프로그램은 찾아보기 어렵다. 한편 현재 자국민이 전체인구의 10퍼센트에 불과한 UAE와 카타르는 그 비율이 2027년 5퍼센트, 2035년에는 1퍼센트까지 떨어지고 그 이후에는 거의 0퍼센트에 가까워질 것이라고 예상한다. 이에 비하면 경제활동을 외국인에게 크게 의존해서 문제라는 사우디의 상황은 오히려 대수롭지 않아 보인다.


걸프 시장에 대해 좀 더 많은 관심을


지금까지 살펴본 바에 따르면 걸프 시장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그래도 수출에 경제를 의존해야 하는 우리로서는 당장은 세계 어디에서도 그처럼 역동적인 시장을 찾을 수 없는 만큼 그 시장을 철저하게 분석해서 공략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도 그에 대한 정보는 놀랄 만큼 부족하고, 그나마 알려진 것 중에는 부정확한 것이 하나둘이 아니다. 중요한 시장이라고 하면서도 정작 그중 가장 큰 시장인 사우디에는 우리 기업의 중동 진출 이래 언론사 특파원이 주재한 일조차 없다. 정보가 부족하고 부정확한 것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라는 말이다.


1973년 삼환기업이 사우디에서 도로공사를 수주한 것으로 시작된 우리 기업의 걸프 시장 진출은 이미 50년이 넘었다. 하지만 세월이 그만큼 흘렀는데도 시장에 대한 정보나 인식은 좀처럼 달라지지 않았다. 필자는 현지에서 13년 근무하면서 그런 오해 때문에 몹시 고단했고, 귀국하고 나서는 그 오해를 바로잡으려다 오히려 비난받아야 했다. 지금도 시중에서 걸프 시장에 대해 참고할 만한 책을 찾기 어렵고 언론에 이와 관련한 분석 기사도 보이지 않는다. 과문한 탓이겠지만 학계에서도 그 시장에 대해 관심이 없기는 마찬가지로 보인다. 앞으로 학계와 언론계뿐 아니라 관련 전문가의 분발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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