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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Sep 22. 2020

수쿠크법에 대한 오해

어느 장로교단에 총회장으로 뽑힌 인사가 취임사에서 자기 치적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나는 그간 수쿠크법을 막는 데 최선봉에 섰다. 동성애 반대 운동을 주도했으며, 종교인 과세를 전략적으로 대처했을 뿐 아니라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막는 최선두에 섰다.”


저는 이슬람 종주국인 사우디 리야드에서 12년째 일하고 있습니다. 이슬람에 둘러싸여 살다보니 한국교회가 가지고 있는 이슬람에 대한 혐오가 얼마나 근거 없는 것인지 매번 절감하지요. 이 나라 선의에 기대어 생업을 이어가는 이곳 현지교회 교인들까지 그런 혐오를 퍼 나르는 걸 볼 때면 암담하기까지 합니다. <수쿠크법> 반대운동도 이와 마찬가지로 이슬람 혐오의 한 형태일 뿐입니다. 반대하는 근거를 보면 어이가 없습니다. 몰라서 그런 것이라면 부끄러운 일이고, 의도적인 것이라면 책임을 물어야 할 일이 아닌가 합니다.


‘수쿠크’는 무엇인가?


이슬람 금융인 ‘수쿠크’는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를 따라 운영된다. ‘샤리아’는 ‘이자(利子)는 비생산적이고 불공정한 착취’라고 여겨 금지한다. 이를 따르자면 돈을 빌려주고도 수익(이자)을 얻을 수 없으니 채권 발행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샤리아’를 위반하지 않으면서 수익을 얻기 위한 방편이 필요했고, 이런 목적으로 강구된 특유의 금융기법이 ‘수쿠크’이다. 즉 ‘샤리아 원칙에 따라 자금조달 목적으로 발행하는 채권’을 총칭하는 것으로, ‘샤리아’를 비껴가기 위한 편법인 셈이다.


이자를 받을 수 없으니 중간에 실물거래를 끼워 넣는다. 실물거래 종류에 따라 ‘수쿠크’는 여러 형태로 나뉘는데, 그 중 하나인 ‘이자라(Ijara)’를 예를 들자면 이렇다.


“기업이 은행에서 100만 달러를 연 2% 금리로 빌리고자 한다. 이때 은행은 기업이 소유하고 있는 건물을 100만 달러에 사고, 1년 후 이자를 포함한 102만 달러에 그 기업에 되팔아서 원금과 이자를 회수한다.”


물론 모든 ‘수쿠크’가 이렇게 단순하지는 않지만, 실물거래를 끼워 넣어 실질적으로 이자를 지급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수쿠크법>은 무엇인가?


우리 정부나 기업이 이슬람 금융을 도입하려면 이와 같은 거래방식을 따라야 한다. 문제는 이렇게 실물거래가 일어나는 과정에서 세금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자도 과세 대상이기는 하다. 그러나 우리나라 <조세특례제한법> 제21조*에서는 ‘외화채무(외자)’에 대해 지급하는 이자는 소득세나 법인세를 면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는 이자에 과세할 경우 빌려주는 쪽에서 세금만큼 금리를 인상할 것이고, 결국 그 세금이 돈을 빌린 우리 정부나 기업에게 전가되는 셈이니, 정부로서는 과세로 얻을 수 있는 실익이 없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과세하려는 외국금융은 손대지 못하고 우리 정부나 기업이 부담해야할 금리만 높인다는 것이다. 이 법에 따라 우리 정부나 기업이 들여온 외자에 대한 이자는 현재까지 면세 대상이다.


그런데 ‘수쿠크’는 실질적으로는 이자를 지불하면서도 그것이 실물거래 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에 면세대상에서 빠진다. 똑같은 외자이면서도 독특한 거래방식 때문에 다른 외자와 달리 세금을 내야하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고 있는 셈이니 결국 외자를 확보하기 위한 선택의 폭이 좁아지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에서는 <조세특례제한법> 제21조에 ‘과세특례’ 조항을 추가해 (실물거래 형식에 취하고 있기 때문에) 이슬람 금융이 받고 있는 상대적인 불이익을 없앰으로서 외자를 확보하기 위한 선택의 폭을 넓히려 한 것이다. 이슬람 금융에게 특혜를 주자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받고 있던 상대적 불이익을 없애자는 것이다.


조세특례제한법 제21조 (국제금융거래에 따른 이자소득 등에 대한 법인세 등의 면제); ①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의 소득을 받는 자에 대해서는 소득세 또는 법인세를 면제한다. 1. 국가ㆍ지방자치단체 또는 내국법인이 국외에서 발행하는 외화표시채권의 이자 및 수수료


<수쿠크법>의 쟁점


<수쿠크법>으로 불리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외자 확보방안을 다변화하기 위한 것에 지나지 않는데, 기독교계에서는 왜 그렇게 결사적으로 저지하려 했는지, 기 이유가 타당한지 살펴보았다.


○ ‘수쿠크’는 이슬람 금융에 대한 특혜이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수쿠크’의 독특한 거래방식 때문에 일어나 상대적인 불이익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지 특혜를 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혹자는 정부가 우리 경제를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에 굴복시켜 족쇄를 채우려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런데 정부가 왜 그래야하는지는 설명하지 않는다.


○ ‘수쿠크’는 샤리아 위원회의 지배를 받으므로 우리 법체계를 흔들 수 있다.


이슬람 금융은 샤리아를 따르기 때문에 샤리아 위원회의 영향을 받고, 그로 인해 거래조건이 일부 영향을 받을 수는 있다. 그러나 우리 경제가 ‘수쿠크’에 전적으로 의존할 정도로 작은 규모가 아니니 그 영향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고, 따라서 ‘수쿠크’ 도입은 단지 외자 도입선을 좀 더 다양화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상황에서 샤리아 위원회의 결정이 우리 법체계를 흔든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 이자소득에 2.5% 과세하는 자카트가 테러자금으로 쓰인다.


기독교계는 “이슬람 금융은 수익금의 2.5%를 ‘자카트(Zakat)’라는 명목으로 자선단체에 보내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자카트는 ‘하왈라’라는 독특한 방식으로 송금하는데, 이 방식은 송금기록을 남기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어 자금 흐름을 알 수 없으므로 테러조직의 자금줄로 이용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사우디 국세청의 명칭은 ‘General Authority of Zakat and Tax(GAZT)’이다. ‘자카트ㆍ국세청’이라는 말이다. 아래 사진은 사우디 국세청(GAZT)이 발급한 우리 회사의 부가세 해당업체 등록증이다. 나는 아직 사우디 국세청의 자금이 테러조직으로 흘러들어갔다는 소식을 풍문으로라도 들은 바가 없다.


자카트는 ‘수쿠크’ 뿐 아니라 모든 거래에 부과된다. 이 논리대로라면 우리가 지불하는 모든 원유대금도 테러조직으로 들어갔어야 하며, 기독교계는 당연히 이슬람국가와의 원유 거래를 거부해야 하는데, 과문한 탓인지 아직 그런 주장조차 들어본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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