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 발간된 <제국의 위안부>가 허위사실을 전파해 자신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나눔의 집’에 거주하는 위안부 할머니 아홉 분이 이 책의 저자인 박유하 교수를 상대로 2014년 6월 손해배상청구 및 출판금지 가처분 민사소송을 제기하고, 아울러 검찰에 형사고발했습니다. 그 결과, 손해배상소송에서는 배상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명예훼손은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되었으나 항소심에서는 벌금이 선고되었습니다. 출판금지 가처분신청은 일부가 받아들여져 34곳을 삭제하라는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인하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홍승기 교수께서 2020년 3월 발표한 ‘<제국의 위안부> (항소심) 형사 판결의 비판적 분석’과 동년 9월 발표한 ‘명예훼손을 이유로 <제국의 위안부> 34개 문장의 삭제를 인용한 가처분 사건 비판’이라는 논문을 통해 이 판결이 적절하지 않았음을 밝혔습니다.
법학논문이다 보니 일반인으로서 이해하기도 쉽지 않고 분량도 상당합니다. 그래도 지난 몇 달 동안 관심을 가지고 전말을 살펴본 내용이어서 끝까지 읽을 수 있었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과 공유할 생각으로 나름대로 요점을 정리했습니다만, 한편으로 논문 저자의 노고를 가릴까 걱정도 됩니다. 논문 저자이신 홍승기 교수께 양해를 구합니다.
참고로, 이 책의 저자는 2017년 10월 형사2심 결과에 불복해 즉각 대법원에 상고하고 확정판결을 기다리고 있으며, 나머지 소송은 이 판결이 내려지기까지 잠정 중단된 상태입니다.
가. 논의의 전제
○ 표현의 자유와 관련하여, 표현의 ‘내용’이 시민사회의 성숙한 여론 형성에 미치는 영향이 심각할수록 표현을 보호할 가치가 커진다고 보아야 한다. 학문적인 발표로 명예훼손이 발생했다 하더라도 그 표현이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고 성숙한 여론에 기여한다면 그 제한이 사적영역에서 보다 완화되어야 한다.
○ 명예훼손죄는 ‘사실적시’로 인한 범죄일 뿐 ‘의견표명’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실’과 ‘의견’을 구별하는 것이 매우 어렵고, 객관적인 ‘진실’과 ‘거짓’을 구별하는 것 역시 어려우며, 현재 ‘거짓’으로 인식되더라도 시간이 지난 후 그 판단이 뒤바뀔 수 있다.
○ 유럽안보협력기구, UN, 미주기구, 아프리카 인권위원회는 ‘공동선언’에서 “표현의 자유 관점에서 형사 명예훼손은 적절한 방식이 아니므로 필요한 범위 안에서 민사 손해배상으로 대체할 것”을 강조했으며, 전통적으로 명예훼손을 언론의 자유보다 우위에 놓았던 영국도 2009년 명예훼손죄를 폐지하였다. 미국도 1960년 이후 명예훼손 연방법이 폐지되고 일부 주법에서 형식상 처벌규정이 남아있으나 이미 실효성이 상실되었다.
나. ‘유죄 판결’에 대한 판단
○ “국제기구에서 전문가들이 작성한 보고서는 ‘정확하고 객관적’인데 <제국의 위안부>가 이를 ‘왜곡 인용’하여 독자들이 ‘오해하도록’ 서술했다”고 판결한 것에 대해;
‘국제기구’라고 해도 특정 지역의 문제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연구해온 ‘지역전문가’보다 더 잘 알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국제기구 보고서’는 ‘지역전문가’의 도움으로 작성되고, 따라서 도움을 준 ‘지역전문가’의 성향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쿠마라스와미 보고서>와 <맥두걸 보고서>는 1990년대 위안부 논의를 주도하던 인사들의 의견을 바탕으로 작성한 것이며, <제국의 위안부>는 그들과 다른 시각에서 위안부 문제를 분석한 기록이다. 이들 보고서와 <제국의 위안부>는 각각 ‘독자적인 의견’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 중 하나를 사실로 확정하고 그것과 다른 표현을 ‘허위’로 판단할 수는 없다. 더구나 <제국의 위안부>는 같은 내용을 이들 보고서와 ‘약간 다른 방식’으로 기록하고 있을 뿐이다.
○ 제3자의 진술을 인용하거나 평가한 ‘의견’까지 저자의 ‘사실’ 표현으로 취급하고, 나아가 그것이 ‘허위 사실’이라고 판결한 것에 대해;
대법원은 정당한 자료를 인용한 후 이를 판단한 것은 ‘순수의견’이기 때문에 타인의 명예를 훼손할 여지가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미국 리스테이트먼트에서도 공개된 기초사실에 대한 ‘순수의견’은 책임을 면제하고 있다.
○ “조선인 위안부들이 일본군과 동지의식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협력했다는 ‘허위사실’을 적시했다”고 판결한 것에 대해;
조선인 위안부는 일본에 합병된 이후 출생하여 황국 신민으로 성장한 2등 국민으로서, 전쟁 중 매사가 불안정한 동년배의 일본 남성에게 ‘군수품으로서의 동지의식을 느꼈다’는 것이 어색한 일이 아니다. 위안부 증언기록에 일본 군인과 우호적 관계를 가진 사례가 적지 않다.
○ “일본군의 공적인 강제연행은 없었다는 ‘허위사실’을 적시했다”고 판단한 것에 대해;
위안부 동원방식(유형별 비율)은 연구자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위안부 동원에 관한 연구에서 취업사기의 비율이 강정숙 52.6%, 정진성 46.9%, 박정애 46.9%, 윤명숙 64.5%에 이른다. 나머지도 대부분 업자에 의해 저질러진 것으로, 이는 <제국의 위안부>에서 “물리적 강제성이 위안부 동원의 ‘주된 방식’이 아니었다”고 서술한 내용을 뒷받침 한다.
다. 결론
○ 재판부는 <제국의 위안부>의 저자가 “학계의 주류 시각과 다른 입장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자신의 주장을 개진하였다”고 판단하고도 “독자들이 마치 많은 조선인 위안부들이 자발적으로 위안부가 되었고, 경제적 대가를 받고 성매매를 하였으며, 일본이 강제동원하지 않았다고 받아들일 수 있다”고 판결하였다. 이는 학자가 기존의 다수 견해에 반하는 새로운 견해를 주장하려면 다수 견해로부터 제기될 수 있는 모든 반박에 답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인데, 이는 전혀 현실성 없는 과도한 요구이다.
○ <제국의 위안부>에서 언급된 ‘동지의식’과 ‘강제성’은 학자의 의견이자 평가이다. 반대편의 입장에서 이 표현 가운데 일부를 ‘사실’로 판단한다 하더라도, <제국의 위안부>의 전체적인 맥락에서 보면 이를 ‘허위’라고 단정할 수 없다.
○ <제국의 위안부>에 언급된 ‘위안부’는 개인마다 사연과 고통의 크기가 다른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 전체’를 의미한다. 그런데 재판부는 이를 ‘소송을 제기한 피해자들’로 좁게 해석했다.
○ “객관적 자료에 한계가 있고 시각을 달리하는 새로운 자료가 뒤엉켜 객관적 진실을 확인하는 것이 쉽지 않은 사건은 유죄판단을 극도로 자제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에 비추어볼 때, 재판부의 판단은 학술서에 대한 형사판단에 반드시 필요한 절제와 고심의 경계를 크게 넘었다.
가. 문제의 제기
○ 언론ㆍ출판 등의 표현행위에 의해 명예가 침해되는 경우에는 ‘표현의 자유’와 상충되지 않도록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 표현행위에 대한 억제는 엄격하고 명확한 요건을 갖추는 경우만 허용해야 한다.
나. 피해자 특정
○ 채권자(소송제기인)의 연령과 건강상태를 고려할 때 학술서인 <제국의 위안부>를 숙독하고 의미를 이해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 이 사건을 지원하고 있는 주체가 ‘나눔의 집’ 고문변호사라는 사실과, 피해자 접근 금지를 함께 요청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진정한 채권자는 지원단체인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 ‘집단표시에 의한 명예훼손’은 그 집단에 속한 특정인에 대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 비난으로 인해 구성원 개개인의 사회적 평가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한 경우에는 구성원 개개인에 대한 명예훼손이 성립되지 않는다.
○ <제국의 위안부>에서는 확인 가능한 모든 자료를 통하여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 전체에 대한 동원방식이나 생활 양태에 접근하고자 했다. 따라서 <제국의 위안부>에서 채권자를 특정하지 않았고, 특정할 이유도 없다.
다. ‘표현 삭제 판결’에 대한 판단
○ “일본군의 공적인 강제연행은 없었다”는 표현 삭제 판결에 대해;
<제국의 위안부>는 강제연행에 대한 국가책임을 부정하지 않았다. 연구자들이 대체로 동의하는 대로 “일본군에게 강제로 끌려갔다”고 말하는 증언자는 소수이고 증언자의 대다수가 “(취업사기 등에 의해) 집을 떠났다”고 말하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일본군이 병사를 위안한다는 명목으로 위안부 모집을 발상하고 그로 인해 사기나 유괴까지 횡행”하게 되었으니 ‘책임을 져야할 주체가 일본군’임을 명백히 했다.
○ “위안부의 본질이 강제적 매춘이다”는 표현 삭제 판결에 대해;
이는 ‘성노예’라는 표현과 다르지 않고, 오히려 위안부 실태에 대한 객관적 자료인 ‘미군 전시정보국 49호 보고서’나 ‘위안소 관리인 일기’와 부합한다. 네덜란드 군사법정은 일본이 인도네시아를 점령한 후 자바섬에 설치한 군 위안소의 운영주체에 대해 ‘강제적 매춘(forced prostitution)’ 죄목으로 유죄 판결하였다.
○ “조선인 위안부는 일본군과 동지적 관계에 있었다”는 표현 삭제 판결에 대해;
조선인 위안부는 일본인에게는 (2등 국민이기는 하지만) 자국민이었고, 따라서 연합국이나 일본의 식민국에게는 ‘적의 여인’이었다. 이런 이유로 종전 후 산속에 숨었고 중국인들로부터 일본인들과 한편이라고 공격받았다. 미군 공습이 시작되자 일본 군인들이 이들을 보호하려했고, 패주할 때 자기들과 일정 간격을 두고 따라오도록 했다.
라. 결론
○ 이 사건의 실질적인 당사자는 지원단체이다. 채권자를 당사자로 인정한다고 해도 <제국의 위안부>에서 이들을 전혀 특정한 바 없다. 수가 얼마나 되는지도 알 수 없는 전체 조선인 위안부의 고통을 분석한 <제국의 위안부>가 개별 채권자의 명예를 훼손할 가능성은 처음부터 없었다.
○ <제국의 위안부>는 물리적 강제력이 위안부를 동원하는 ‘주된 수단’이 아니었다는 사실과 ‘가난과 남성우월주의와 국가주의라는 구조적 강제성’을 강조하고 있다.
○ ‘동지적 관계’라는 표현은 당시의 사회적 상황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채권자의 명예와 무관하다. 이는 연구자로서 저자가 갖고 있는 의견일 뿐 사실의 적시라고 할 수 없다.
○ 문제가 된 표현은 ‘학자의 의견’이거나 ‘허위가 아닌 사실’로서, 학문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라는 공공의 이해에 직결된다. 재판부는 당사자조차 특정되지 않은 사건에서 판결에 반드시 필요한 ‘고도의 입증책임’도 ‘표현의 자유ㆍ학문의 자유와 상충되는지’도 살피지 않고 ‘표현 삭제 요청’을 받아들이는 잘못을 저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