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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Sep 11. 2020

[역사적 예수 4] 이에 대한 견해와 풀어야 할 숙제

역사학자 김기흥 교수의 '역사적 예수'를 읽고 (4, 完)

역사적 예수 논쟁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셔서 인간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고, 부활하셨고, 승천하셨다”는 기사가 사실이냐는 것이다. 이 논쟁은 다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실존’하신 분이었는지, 실존하셨다면 과연 ‘신성’을 지니신 하나님의 아들이셨는지 하는 것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예수께서 보여주신 이적과 표적은 이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니 논쟁의 본질이 아니고, 따라서 굳이 역사성 여부를 가릴 필요가 없겠다.


저자는 요세푸스의 ‘유대 고대사’나 타키투스의 ‘연대기’를 볼 때 예수께서 이 땅에 실재하셨으며 빌라도에 의해 처형당하신 것을 의심할 수 없는 사실로 받아들인다. 또한 시대를 초월한 지성과 영성과 탁월한 감화력을 지닌 역사적 존재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성령에 기록된 대로, 또한 그리스도인 대부분이 믿는 것처럼 ‘성령으로 잉태되어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신성을 지닌 존재’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저자는 예수께서는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을 때 겪은 ‘신비 체험’을 통해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재인식 하셨고, 본디 인간이었으나 하나님 아들로 다시 태어나셨다고 해석한다. 또한 세상 사람들의 죄를 대신하여 죽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르침대로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죽은 것인데, 이런 예수께서 ‘희생제물’이 되셨다고 기록한 것은 희생제사 중심의 유대교 성전체제에 익숙했던 추종자들이 그렇게 인식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저자가 복음서를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위에 언급한 바와 같이 해석한 것은 각 복음서를 기록한 신앙공동체가 복음서를 역사서로 편찬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신앙을 제고시킬 목적으로 편찬하였으며, 따라서 그들의 필요에 맞도록 예수 상을 재해석하고 아울러 신앙고백적인 내용을 포함한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복음서가 역사서가 아니기 때문에 이를 근거로 예수의 역사성을 판단할 수 없다는 저자의 견해는 원로 비교종교학자인 오강남 교수의 저서 ‘예수는 없다’에서도 동일하게 확인된다.


“문제는 4복음서가 예수님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여 후세에 남길 것을 목적으로 쓰인 ‘역사적 기록’이 아니라는데 있다. 한마디로 ‘믿음의, 믿음에 의한, 믿음을 위한 기록’이라는 것이다. 객관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쓴 역사문헌이 아니라 철두철미 ‘신앙고백서’이다. 그렇기에 복음서를 통해 역사적 예수를 알아낸다고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19세기와 20세기 중반까지 많은 신학자가 역사적 예수를 알아내려던 시도 끝에 얻은 결론은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 ‘예수는 없다’ p.194


또한 같은 책에서 오강남 교수는 복음서를 믿음의 기록으로 판단한 근거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말하자면 복음서는 신앙고백이며, 그 신앙고백은 세월이 흐르면서 발전되고 확장된다는 것이다.


“마가복음에 보면 처음부터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그리고 ‘예수님의 하나님 아들 되심’이 세례를 받을 때라고 말하고 있다. 세월이 얼마 흘러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이 쓰일 때쯤 되어서는 (이 사건이) 그의 출생 때로 당겨진다. 요한복음에서는 그의 출생 이전으로 올라간다. 예수님은 태초부터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하나님과 함께 하시고 동시에 그대로 하나님이셨다는 것이다.” - ‘예수는 없다’ p.206


김기흥 교수의 ‘역사적 예수’와 오강남 교수의 ‘예수는 없다’는 예수께서 역사적으로 실재하셨던 분이라는 것과 복음서로 역사성을 판단할 수 없다는 면에서는 같은 견해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김기흥 교수는 예수께서 “세례 받으실 때 겪은 신비 체험으로 스스로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깨달았으며, 그 결과 개별적 인간이 하나님의 아들로 다시 태어났다”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한 반면, 오강남 교수는 이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있다.


결국 저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역사적으로 실재하셨지만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난 존재’로 규정하고 있는데, 이로서 예수 그리스도는 피조물로 태어나신 존재라는 충격적인 결론에 이르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 즉 하나님 되심을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성자와 성령이 어떻게 성부 하나님과 동등한 격을 가질 수 있는지도 모르겠고 성자와 성령께 의지하지 않고도 성부 하나님을 만나고 함께 인생길을 걷는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는 내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신성’을 가지신 분인지 아닌지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다만,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이 기독교 신앙의 토대인 ‘삼위일체’의 전제가 되는 것이라면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하는 의문은 남는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한 역사학자인 저자’의 주장이 ‘그리스도인인 저자’의 신앙에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 매우 궁금했는데, 아쉽게도 그런 언급을 찾을 수 없었다. 결국 이 책을 읽고 가지게 된 아래 질문은 이 책을 읽도록 만든 진규선 목사께 드릴 수밖에 없게 되었다. (당초 가졌던 질문 중 하나인 예수 그리스도의 ‘실존’은 글을 써오는 가운데 해결되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신성’을 지니신 하나님의 아들이신가?


둘째, 저자의 주장대로 피조물(인간)이셨던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례 때 경험한 ‘신비 체험’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깨닫게 되셨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이 부정되는 것인가? ‘신성’이 부정된다면 삼위일체는 그대로 성립하는가?


셋째, 복음서는 신앙고백서이므로 위 질문 자체가 무의미한 것은 아닌가?


예수의 역사성과 별개로 이 책을 읽으며 오랫동안 의아했던 부분을 해결할 수 있었다. 성경 전편을 통해 여성에 대한 차별적인 표현이 적지 않게 나타나는데, 이것이 내가 이해하는 하나님의 성정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어서 받아들여지지도 않고 누군가 질문할 때마다 아주 난처했다. 저자는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워낙 시대를 뛰어넘는 것이어서 제자들이나 추종자들조차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잘못 기술한 것’으로 판단했다. 그런 이유로 복음서가 성령에 구술에 의한 무오한 책이라고 인정하는 것은 진실과 거리가 있을 수 있다고 했다. 그 말 하나로 많은 궁금증이 해소되었다.


지난 보름 가까운 시간동안 책을 읽고, 이해하려 애쓰고, 또 내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아마 내가 무엇을 믿고 있는지 차근차근히 돌아본 건 처음이 아니었나 싶다. 이런 계기를 만들어주신 진 목사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며, 아울러 위의 질문에 대한 답변과 혹시 미처 깨닫지 못하고 놓친 부분이 있다면 적절한 조언을 더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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