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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Apr 06. 2024

석유는 어떻게 세계를 지배하는가

<피렌체의 식탁> 박인식의 호기심 따라 읽기 7

웹진 <피렌체의 식탁>에 일곱 번째 서평이 올라왔습니다. 이번에는 한국석유공사에서 석유정책을 다루던 최지웅의 <석유는 어떻게 세계를 지배하는가>를 읽었습니다. 링크는 아래에 올립니다. 응원하는 마음으로 클릭 한 번...


♣♣♣


석유는 어떻게 세계를 지배하는가

최지웅

부키

2019.08.20


석유의 위력을 세계에 알린 사람은 뜻밖에도 윈스턴 처칠이었다. 1911년 당시 영국 해군장관이었던 그는 독일과 해군력 경쟁에서 우위에 서기 위해 해군 함대의 연료를 석탄에서 석유로 바꾸었고, 그 결과 해군 함정의 속도와 작전 반경을 크게 개선할 수 있었다. 석유가 석탄보다 부피도 작고 열량이 높았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세계는 아직도 석유의 위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산업화시대에 접어들어 두 차례나 오일쇼크를 겪으면서 세계는 석유와 중동 산유국의 위력 앞에 무릎을 꿇어야 했다. 그래서 중동 산유국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위해 에너지원을 원자력으로 바꾸고, 북해와 알래스카를 비롯한 여러 곳에 유전을 개발하고, 급기야는 세일오일을 채굴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도 중동에서 전운이 감돌면 유가가 급등할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은 아직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중동 산유국의 입지가 탄탄한 것도 아니다. 세계를 쥐락펴락 했던 예전의 위상은 생각하기도 어렵고, 최근에 기술발전으로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셰일오일 생산량 때문에 그나마 취약해진 처지도 얼마나 유지할 수 있을까 염려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미 오래 전부터 석유 이후 시대를 준비하기 위해 산업다각화에 나섰던 중동 산유국들은 위기가 점점 실체로 다가오자 경쟁적으로 거대사업에 재원을 쏟아 붓기 시작했다. 최근 모자란 사업자금 때문에 유가를 띄우기 위해 석유 감산 카드를 들고 나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유가는 오히려 떨어져 회복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낮은 유가에 생산량마저 줄어 이젠 재정적자를 염려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한국석유공사에 입사해 석유정책을 다루던 저자는 자신의 경험과 사유를 녹여 석유가 세계에 위력을 드러난 때로부터 셰일오일이 시장의 변수로 등장한 2019년 중반까지의 상황을 정리해 석유가 세계를 지배하는 방식을 책으로 엮었다. 석유가 우리 삶을 지배하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그동안 국내에서 석유가 세계 경제, 더 나아가 세계 질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정리한 책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다행히 그 과정을 33장면으로 정리해 설명하는 이 책으로 석유가 세계를 지배한 역사를 만날 수 있었다.


***


미국은 1941년 제2차 세계대전에 참여하면서 석유와 중동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그때까지 중동을 지배하던 영국은 소련의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미국을 끌어들여 영미협약을 맺는다. 이 협약에 따라 이란의 석유는 영국이, 사우디의 석유는 미국이, 이라크와 쿠웨이트의 석유는 양국이 공유하기로 한다. 이때 미국은 사우디에 아람코를 세운다. 1955년 이집트 나세르가 아스완댐 건설비를 확보하기 위해 수에즈운하를 국유화하자 영국ㆍ프랑스ㆍ이스라엘이 2차 중동전쟁을 일으킨다. 이에 대항해 나세르는 선박을 침몰시켜 수에즈운하를 봉쇄하고 그 결과 유럽의 석유 재고가 바닥이 난다. 이 전쟁에 반대한 미국이 유럽에 석유공급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하자 영국과 프랑스가 군대를 철수해 수에즈 위기가 마무리된다. 이로써 석유가 국제질서의 핵심인 것이 명확히 드러나게 되었다.


1960년 메이저 석유회사들이 유가를 10센트 낮추기로 결정한다. 그때까지 메이저 석유회사들의 횡포를 당해야 했던 사우디ㆍ베네수엘라ㆍ이란ㆍ이라크ㆍ쿠웨이트가 OPEC을 결성한다. OPEC 회원국의 석유수출량이 세계 수출량의 80퍼센트 이상이었기 때문에 그때부터 유가 결정권은 OPEC 손에 들어간다.


1973년 4차 중동전쟁이 일어나자 사우디가 석유 감산조치로 압박을 가하지만 초반에 열세에 몰렸던 이스라엘이 역전으로 전쟁을 마무리 짓는다. 감산의 위력을 실감한 사우디가 종전 후에도 감산정책을 유지하자 유가는 3달러에서 12달러로 급등해 1차 오일쇼크가 일어난다. 이 기간 동안 미국은 GNP가 6퍼센트나 떨어져 전후 이어오던 경제성장이 멈추고, 사우디의 금수조치에 굴복해 아람코 지분 60퍼센트를 사우디에 양도한다. 세계는 이에 대응하기 위해 북해와 알래스카에서 유전 개발에 나서고, 1975년 미국 포드 행정부는 원전 200기 건설계획을 수립하고, 프랑스 또한 원전건설에 나선다. 1970년대 후반에는 처음 셰일오일 개발을 시도한다. 하지만 산유국에서도 이를 그냥 보고만 있지는 않는다. 메이저 석유회사가 유전을 소유하던 방식에서 산유국 정부와 계약하는 방식으로 바꿔 정부수입을 생산량의 50퍼센트에서 70~90퍼센트로 대폭 늘린다.


격동의 1979년이 밝아오자 이란에서는 1월에 팔레비가 쫓겨나고 2월에 호메이니가 귀국한다. 3월에 미국 Three Mile Island 원전 사고로 원전의 불안감이 높아지자 카터 대통령은 원전 70기 건설계획을 중단한다. 11월에 사우디 메카를 폭도들이 점거하는 사건으로 사우디는 강경 와하비즘으로 돌아선다. 12월에 소련이 아프간을 침공하자 미국은 소련이 아프간을 발판 삼아 중동지역에 영향력을 발휘하려 들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싸인다. 이와 같은 불안한 중동정세로 인해 2차 오일쇼크가 일어나 유가가 13달러에서 40달러로 급등한다. 이때 북해와 멕시코만과 알래스카의 석유개발이 급진전 되어 1982년을 기점으로 OPEC보다 비OPEC의 생산량이 커지기 시작한다. 아울러 고유가 때문에 에너지에서 석유의 비중도 감소하면서 오히려 석유 공급이 과잉상태가 된다.


OPEC은 1982년 회원국에 생산 쿼터를 배정하고, 1983년 공급과잉으로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유가를 방어하기 위해 감산에 들어간다. 감산의 가장 큰 희생자는 하루 1천만 배럴을 3백만 배럴로 줄인 사우디였지만 회원국의 공조가 이루어지지 않아 사우디는 유가 방어도 못하고 수입도 1983년 1,190억 달러에서 1985년 260억 달러로 줄어줄고 시장점유율마저 크게 잃는다. 1985년 말 사우디가 무한경쟁을 선언하고 증산에 돌입하자 유가는 30달러에서 7달러로 폭락한다. 그 후로 사우디는 10년이 지나서야 잃어버린 시장점유율을 되찾는다. 이때 뜨거운 맛을 본 사우디는 2014년 셰일오일이 등장하자 증산에 나섰고, 이는 유가 폭락으로 이어져 100달러를 상회하던 유가가 40달러 대로 주저앉고, 그 결과 사우디가 의도한 대로 셰일오일 업체들이 도산한다.


***


2022년 6월 115달러로 정점을 찍었던 유가는 2023년 10월 가자 전쟁이 일어나고 OPEC이 감산에 나섰는데도 2024년 1월까지 좀처럼 80달러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사실 중동 산유국으로서는 유가를 띄우기 위해 감산을 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다. 하루가 다르게 생산량이 늘어나는 셰일오일 때문이다. 유가를 유지하기 위해 감산하다가는 자칫 시장을 셰일오일에게 넘겨주게 될지도 모르고, 그럴 경우 석유 이후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 벌인 대규모 사업에 필요한 재원 마련이 어려울 뿐 아니라 국가재정이 적자에 들어설 수 있기 때문이다.


이쯤 되니 이제는 전설이 된 사우디 야마니 석유장관이 시대를 읽는 감각이 얼마나 뛰어난지 새삼 깨닫게 된다. 그는 1973년 석기시대는 돌이 부족해서 끝난 것이 아닌 것처럼 석유시대도 석유가 고갈되기 전에 끝날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그는 또한 고유가를 반대한 인물로도 유명하다. 고유가가 지속되면 세계경제 침체와 장기 불황이 이어지고, 결국 석유 소비가 줄어들 것이기 때문에 유가를 안정적으로 유지해 수요를 꾸준히 늘려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의 말대로 산유국이 욕심을 덜 부렸더라면 산유국의 위세가 조금 더 이어지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그것이 셰일오일 개발이나 에너지 변환을 막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만약 미국이 셰일오일 증산으로 더 이상 중동 석유가 필요하지 않을 경우 중동에서 발을 뺄 가능성이 적지 않은데 이렇게 되면 사우디로서도 그 상황이 결코 편안치만은 않을 것이다. 지금은 균형외교를 통해 강대국 사이에서 이익을 취하고 있지만 그 중 하나가 빠져나가면 그 전략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셰일오일로 자국의 석유수요를 충당하게 될 경우 미국은 중동에서 철수할 수 있을까?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미국에게 중동은 석유 공급원으로서 뿐 아니라 달러가 기축통화일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버팀목이기 때문이다. 만약 중동 산유국이 달러 아닌 다른 통화로 석유 대금 결제를 허용할 경우 기축통화로서의 달러의 위상이 흔들릴 것이고 이는 미국 경제에 큰 타격이 되지 않을까.


이래저래 석유는 처칠이 영국 해군 함대의 연료를 석유로 바꾸어 그 위력을 드러낸 이래 지금껏 국제질서의 키 플레이어로서 작동하고 있다. 비록 위상은 이전만 못할지라도. 앞으로 석유가 국제질서에 미칠 영향을 예측하기 위해서는 이런 배경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데, 바로 이 책이 그런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https://www.firenzedt.com/news/articleView.html?idxno=3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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