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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Book Review

저는 암병동 특파원입니다

일어나라, 황승택!

by 박인식

황승택

민음사

2018년 11월 9일


인연


환갑을 넘어서면서 어떻게 삶을 잘 마무리할까 생각하기 시작했다. 성급하다고 할지 몰라도 우리나라 남성 기대수명이 여든이라는 걸 생각하면 죽음이라는 게 그리 멀리 있는 게 아니지 않은가. 몇 해 전에 루게릭병을 앓는 분과 인연이 닿았다. 그 분과 이야기를 나누고, 경과를 지켜보고, 그 분을 위해 기도하면서 이런 생각이 더 많아지고 깊어졌다.


삶을 어떻게 마무리할지 생각하다 문득 번지점프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일이 있다. 뛰어내릴 수 있을 것 같아서가 아니라 과연 뛰어내릴 수 있을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마지막 순간도 이와 같지 않을까? 오래 준비하고 있으니 잘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기는 한데, 정작 마지막 순간이 닥쳤을 때 생각해왔던 모습을 지킬 수 있을지 궁금하다.


페이스북에서 급성백혈병 투병 중인 젊은 기자 하나를 알게 되었다. 사십도 되기 전에 발병해서 네 해가 넘는 동안 몇 번이나 재발의 고통을 겪으면서도 끝내 이겨내고 복직한 이야기를 책으로 냈다고 했다. 전도가 창창한 젊은이가 그 두려움을 어떻게 이겨냈는지 궁금했다. 책을 읽고 나서도 일상으로 복귀한 그의 삶이 궁금해 인연을 이어나갔다. 같은 신문사에 기자로 일하는 조카아이의 동료이어서 반가운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며칠 전, 짧은 묵상 하나를 페이스북에 올려놓았다. “어느 구절을 가장 의지하느냐고 물으면 망설임 없이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시라’는 말씀을 꼽겠다”는 글에 그가 이렇게 댓글을 달았다. “본심이 아니시더라도 그분이 저에게는 너무 가혹한 분이 아닐까 생각해볼 때가 있습니다.” 숨이 막혔다. 그날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그리고 그의 책을 다시 꺼내어 읽었다.


투병


간단한 검진으로 생각하고 있다가 급성백혈병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매사에 긍정적으로 임하고 건강을 소홀히 하지 않았는데 이런 일이 생겨 어리둥절했다. 항암치료 중에 조혈모세포 공여자가 나타났다. 조혈모세포를 이식하려면 유전형질이 맞아야 하는데, 부모도 맞기 어렵고 형제도 일치율이 25%에 불과하다고 했다. 타인이 맞을 확률은 2만분의 1. 그 기적이 일어났다. 주어진 기적에 감동한 순간이 지나자 고통이 밀려왔다. 이식 이후에 구토가 계속되고 식욕이 떨어졌으나, 어떻게든 밥을 먹고 샤워를 하고 아령을 들었다. 덕분에 백혈구 적혈구 수치가 빠른 속도로 반등했다. 두 주는 머물러야 한다는 무균실을 열흘도 되지 않아 빠져나왔다.


복직을 두 달 앞두고 잘못 씹어서 생긴 입속 피멍울이 아물지 않아 병원에 연락했다. 재발되었으며 다시 골수 이식을 받아야 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지난 1년 2개월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 낙심이 되었고, 이 질긴 백혈병과 어떻게 싸워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본격적인 항암치료를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극심한 통증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수면부족으로 체력이 떨어지고, 입속이 계속 헐고, 음식을 먹지 못하니 회복이 지연되는 악순환이 계속되었다. 체력이 회복되지 않으면 항암치료를 받을 수 없어 병세가 더욱 악화될 위험이 커졌다. 끝이 보이지 않는 고통의 굴레 속에서 투병 생활 이후 처음으로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 그러나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다는 생각이 들자 그동안 실종됐던 회복 의지가 돌아왔다. 루틴을 만들고, 이를 실천하고, 열심히 복도를 걷고, 투병일기를 쓰고 간곡하게 기도도 했다. 놀랍게도 혈액 수치가 서서히 정상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믿을 수 없는 회복세 덕분에 40일 만에 꿈같은 퇴원을 했다. 수차례 항암치료와 조혈모세포 이식수술을 다시 해야 할 것 같다는 진단과 달리 재이식을 하지 않고 통원 항암치료만 해도 충분한 상태로 바뀌었던 것이다. 3년에 한 번 정도 볼 수 있는 드문 사례라고 했다.


정기검사를 앞두고 몸에 갑자기 근육통이 왔다. 뭔가 께름칙하기는 했지만 처음처럼 어지럽거나 몸에 멍자욱이 생긴 건 아니라 3차 발병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골수검사를 마치고 주치의가 골수에서 암세포가 발견됐고 다시 항암치료가 필요하다고 했다. 첫 재발 당시에는 정신을 놓다시피 했지만 이번 발병에는 의연히 맞서기로 재빨리 마음을 다잡았다. 다행히 타인 공여자를 또 찾아 조혈모세포 이식을 받을 수 있었다. 두 번이나 이식을 하고 온 몸에 방사선을 쏘인 탓인지 체력을 회복하는 데 시간도 오래 걸리고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세 번의 발병과 두 번의 조혈모세포 이식 끝에 49개월 만에 회사에 복직했다.


백혈병 진단을 받고 입원하고 항암치료 받는 과정에서 뒤를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생면부지의 사람에게서 조혈모세포를 기증받을 수 있어 신께 감사했고, 베푸는 삶을 살기로 다짐했다. 복직을 앞두고 재발하자 그런 생각은 철저하게 무너졌다. 어떤 반성이 부족했고 무얼 잘못해서 이 큰 고통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겪어야 하는지 답을 찾을 수 없었다. 힘든 시기를 잘 넘기고 몸이 서서히 회복되면서 시련의 이유를 다시 찾기 시작했다. 교훈도 얻었고, 그동안 자신과 가족의 안녕만을 위해 살아오지 않았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다. 그리고 이 책의 인세 모두를 한국백혈병어린이재단에 기부하기로 했다. 이 힘으로 세 번째 발병에 의연히 맞설 수 있었고, 치료를 마치고 나서는 앞으로 자신에게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오히려 궁금해 하기에 이르렀다.


지혜


1차 항암치료를 앞둔 사람은 1차 항암치료를 마친 환자의 정보를 갈망한다. 2차 항암치료에 돌입한 환자는 3차 항암치료 방법과 환자가 감내해야 할 고통에 민감하다. 항암치료 차수가 높아질수록 투입되는 항암제 용량이 높아지고 각종 부작용이 생길 가능성도 커진다. 하지만 이런 정보는 환자에게 미래에 대한 걱정만 더한다. 걱정을 사서 하지 말라.


최고의 의사를 만나려면 본인도 최고의 환자가 되어야 한다. 환자가 자신의 질병을 공부하고, 궁금증을 적극적으로 의사에게 묻고, 그것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환자와 의사는 서로를 신뢰하게 된다. 이러한 신뢰를 바탕에 두고 환자가 의지를 가지고 의사의 치료법을 따를 때 치료 효과도 좋아진다.


이런 상황에 닥치면 갈피를 잡기 어려운 게 당연하다. 하지만 본인이 보호자라면 변해야 한다. 자신이 노를 젓고 닻을 올려서 폭풍우 몰아치는 바다 한가운데에서 환자를 안전한 항구로 데려가야 하기 때문이다. 우선 마음을 굳게 먹으라. 해당 협회나 환우 홈페이지를 찾아 최대한 신속하게 정보를 모으고, 혼자하기 힘들 때는 주위의 도움을 받으라. 상태를 빨리 확인하고 그에 가장 적합한 의료진과 병원을 찾으라. 다만 현재 의료진을 무조건 배타적으로 대하지 마라. 취합한 정보와 의견이 합리적이라면 의료진이 따라줄 가능성이 높다. 필요에 따라 병원을 옮길 수도 있다. 보호자는 환자가 기댈 수 있는 동반자이자 모든 상황을 통제하는 총사령관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


항암치료에 들어가면 환자들은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쉽게 입안이 헐고 기력이 떨어진다. 어느 때는 면회는 고사하고 전화 받는 것도 쉽지 않다. 각종 검사를 받고나면 침대에서 오랜 시간동안 절대안정이 필요하기도 하다. 면회나 전화를 고집하기 보다는 메시지로 본인의 마음을 전하는 게 환자를 위해 더 좋을 수 있다. 가급적 평서체로 종결하는 것이 좋다. 의문문이 아니라서 대답을 늦게 해도 덜 미안하기 때문이다.


조혈모세포 기증은 환자의 생명을 건질 수 있는 일이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유전형질이 일치할 확률이 높다. 기증방법도 간단하다. 헌혈의 집에 가서 ‘조혈모세포 기증 희망자 등록 신청서’를 작성한 후 혈액 5밀리미터를 채혈하면 된다.


이후


그는 2019년 7월에 복직의 감격을 맛보고 새로운 환경에도 어려움 없이 적응했지만 마음속에 있던 아쉬움을 감출 수는 없었다. 투병할 때 오직 복직만을 꿈꿨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미 각오했던 아쉬움이 다시 살아난 것이다. “아프지 않았었더라면 지금 어떤 위치에 있을까? 아파서 놓쳐야 했던 기회와 경험은 어떤 것일까?” 하지만 누군들 달랐을까?


그는 회사에 복직하면서 더 이상 자신과 가족만을 위해 사는 삶이 아니라 공동체에 기여하기로 마음먹는다. 같은 병을 앓는 환자들을 돕기 위해 여러 곳에 투병생활과 조혈모세포 이식 경험을 공개적으로 기고했고, 방송에 나가 투병생활과 재발에 대한 공포를 담담히 이야기하기도 했다. 향후 치료에 대한 공포와 궁금증을 물어오는 환우나 가족들을 만나면 최선을 다해 답변해오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속으로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라며 스스로를 대견하게 여겼는지도 모르겠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이런 각오는 최근 급성중이염 수술로 한시적으로 청력을 잃으면서 다시 깨진다. 중이염 발병은 면역력이 떨어졌기 때문일 것인데, 다행히 전공의 파업 와중에도 시기를 놓치지 않고 몇 시간에 걸쳐 수술을 받았다. 그리고 “청력이 훼손되기 전까지는 ‘마스크를 쓰고 수업 하면 청각장애인 아이들이 선생님 입모양을 볼 수 없어 더욱 힘들다. 원격 수업 때 자막이 제공되지 않아 청각장애인 아이들의 학습권이 침해되고 있다’는 뉴스를 머리로만 이해했지 가슴으로 공감하지 못했다. 내가 경험한 고통에만 공감하면서 스스로 이타적인 사람이 되었다고 자만한 셈”이라고 고백한다.


격려


그는 긴 시간 고통을 겪으며 많은 것을 깨달았고, 지금껏 깨달은 것을 실천해오고 있다. 이번에 급성중이염 수술을 받으며 다시 낙심했을 것이나, 그렇게 주저앉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시라”는 말씀은 고생하며 근심하는 것이 하나님 탓이 아니라는 뜻이 아니다. 그것이 본심이 아니시기 때문에 반드시 고생하며 근심하는 데서 건져주시겠다는 말씀이다. 이미 벌어진 일의 원인을 따지시는 게 아니라 미래를 책임지겠다고 약속하시는 것이다. 신앙인으로 살아온 지난 오십여 년의 내 삶이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고.


그가 사랑하는 두 딸 혜린이 채린이는 내가 사랑하는 교회학교 제자, 그리고 손녀가 태어나기 전까지 내 사랑을 독차지 했던 내 조카아이와 이름이 같다. 그는 내 조카의 직장 동료이기도 하고, 내 대학 후배이기도 하다. 일면식도 없으나 인연이 결코 만만치 않은 사람이다. 그가 한가위 명절을 따뜻하게 보내기 바라며 독자로서, 선배로서 격려의 말을 전한다.


일어나라, 황승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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