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가 도저히 가능할 것 같지 않은 사업을 벌이는 이유가 무엇일까를 놓고 여러 추측이 있습니다만, 요즘 들어 저는 혹시 투자자를 끌어모으기 위한 전략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우디에서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불러들인 전략가들이 계획을 세웠을 텐데 불가능한 계획을 세우기야 했겠느냐는 상식으로 판단한 것이지요. 투자자들을 모으자면 그저 남이 하는 대로 하겠다는 정도로는 안 되고 남이 꿈조차 꾸지 못하는 정도의 그림을 보여줘야 가능했을 테니 말이지요.
삼프로TV에서 이런 생각을 밝히자 이진우 기자께서 혹시 그것이 왕세자(MBS)가 어딘가에 꽂혀서 벌인 일이 아니겠냐고 반론을 제기하셨습니다. 말하자면 회사 회장이 어디엔가 꽂혀서 되지도 않을 지시를 해도 누구 하나 감히 반박하지 못하고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는 것과 같은 상황이었을 것이라는 말씀이지요.
월스트리트저널 기사에 따르면 The LINE은 원래 폭 2km, 길이 160km인 띠 모양의 도시로 계획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계획을 본 MBS가 폭을 줄이고 수직으로 높이자고 제안했고, 그 결과 폭 50m에 높이 500m인 건물을 100m 띄워 170km나 이어지는 현재와 같은 건물로 변경되었다는 것입니다. 말이 좋아 제안이지 그걸 거부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앞서 언급한 MBS가 직접 출연한 네옴 홍보영상에는 피터 쿡이라는 세계적인 건축가도 출연했는데요, 그는 홍보영상이 공개되기 한 달쯤 전에 Architects Journal이라는 건축전문잡지 인터뷰에서 The LINE을 500m 높이로 짓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500m in height is a bit stupid, 200m in height might be getting near the perfect spot, although 150m was quite agreeable.”
그러면서 The LINE은 총체적으로 터무니없는 개념(absurd concept)이라고 평가절하했습니다. 홍보영상에서 딱히 The LINE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지만 (문제를 제기했으면 홍보영상에 포함시켰겠습니까) 나름대로 의미 있는 역할을 담당한 것으로 보이는 그가 이렇게 대놓고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할 정도라는 것이지요.
기사는 이어서 현장에서 일어나는 시행착오를 전하고 있는데요, 평생 건설업에 종사한 저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건물을 어떻게 지을 것인지 결정도 되기 전에 기초굴착을 시작했답니다. 구조물 하중 조건이나 하중 분포조차 결정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기초굴착 범위며 깊이를 결정했을까요? 기사에서도 MBS에게 일단 시작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MBS가 The LINE의 시점을 몇 km 옮기라고 지시했다는군요. 그러다 보니 앞서 기초굴착한 것이 모두 헛수고가 되고, The LINE이 작업자들의 캠프가 설치된 지역을 지나게 되어 십만 명이 넘는 작업자들의 캠프를 옮겨야 하게 생겼답니다. 이미 기초굴착한 곳을 어떻게 처리하려는지 궁금합니다.
오죽하면 설계에 참여한 전문가가 The LINE은 “필요에 따라 계획을 세우는 게 아니라 계획을 세워놓고 거기에 필요를 꿰어맞춘다(USE would usually drive DESIGN. We are using DESIGN to drive USE)”고 표현했을까요.
며칠 전 네옴을 비롯한 사우디 거대사업을 주관하고 있는 사우디 공공투자기금(PIF)에서 일하다가 미국으로 돌아간 지인과 통화할 일이 있었습니다. 워낙 월드뱅크에 소속되어 있던 분인데 공공투자기금에 파견되어 꽤 오래 일했지요. 사우디가 이처럼 지금까지 듣지도 보지도 못한, 공상과학영화 같은 사업을 하겠다고 나선 이유가 무엇인지 물어봤습니다. 치밀한 계산 끝에 이루어진 전략인가, 아니면 MBS의 무모함인가 하고 말이지요. 분명하게 대답은 안 했지만 후자 쪽으로 판단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의 이 기사가 공개된 날 아랍뉴스에 무함마드 알 자단 재무부 장관의 발언이 실렸습니다. 사우디 정부 재정이 6분기 연속 적자를 내고 있기는 하지만 이는 경제발전을 위해 의도적으로 그렇게 운영하는 것이라면서, 적자가 생산적으로 사용되는 한 정부 부채는 투입 자금 이상의 경제적 수익을 창출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당연한 말입니다. 우리나라도 그렇게 성장했으니 말입니다. 저도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게 왜 저렇게 무모해 보이는 사업이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계획이야 늘 시행착오가 따르게 마련이지만, 최근 한두 달 사이에 일어난 일은 시행착오라고 하기엔 격차가 너무 크지 않나 싶습니다. 그래도 덕분에 물류 여건이 크게 개선되었다니 다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