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잉여일기

2024.08.22 (목)

by 박인식

<보보담> 여름호에 여수가 실렸다. 도시가 얼마나 아름다우면 이름을 여수(麗水)라고 붙였을까 싶을 만큼 아름다운 곳.


대학 다닐 때 남해 상주 해수욕장 가는 배를 타려고 여수에서 하룻밤 묵은 것이 첫 발걸음이었다. 전등 하나를 양쪽 방에서 쓰고 목욕탕 물탱크를 남자와 여자가 함께 나누어 쓰던 값싼 여인숙. 모든 게 넉넉하지 않았던 시절이었으니. 벽 위에 구멍을 뚫어 등을 하나 매달아 놓고 물탱크 위로 벽을 막아 목욕탕을 남녀로 나누어 놓았는데, 이렇게 설명한다고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그래서 불을 끄려면 양쪽 방이 합의를 봐야 했던 조금은 황당한 기억도 이성이 목욕하는 소리를 들으며 목욕했던 야릇한 기억도 아직 생생하다.


직장생활 시작하고 이십 년 가까이 출장으로 집 비운 날이 집에 있었던 날보다 훨씬 많았다. 출장이라는 게 늘 고단한 일이지만 그래도 여수라면 기대가 되었다. 늘 시간에 쫓겨 살았으니 경치 즐길 여유가 어디 있었겠나만, 그래도 밥은 먹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여수 음식 맛이야 두말하면 입만 아프고. 그래서 밥때가 되는 게 그렇게 기다려졌다.


이번 호에서도 역시 음식 이야기가 빠지지 않았다. 그중 박찬일 셰프의 글이 유독 눈길을 끌었다.


“병어라고는 작은 것들을 뼈째 썰어 먹는 법밖에 몰랐던 내게 여수의 포장마차는 진짜를 가르쳐주었다. 병어가 얼마나 큰 생선인지, 부위별로 또 맛이 어떻게 다른지, 여수식 병어 먹는 법은 무엇인지 그날 밤 배웠다. 여수에서는 병어회라면 절대로 양념한 된장에 찍어 먹는다. 초장이나 고추냉이 간장 같은 건 사파(邪派)로 몰린다. 마늘, 참기름, 파 따위를 버무린 것인데 담박한 병어살에 윤기를 준다. 병어는 영어로 ‘버터 피시’라 부른다. 살점이 부드러워 그렇다. 정말 병어 뱃살 회를 입 안에 넣어 보라. 정말 솜사탕처럼 부드럽게 퍼지며 감싸는 맛이다. 몇 해 후 소설가 한 분을 만나 빈대떡에 소주를 마시면서 여수 병어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병어란 놈은 씹으면 감칠맛이 잇몸 구석구석에 달라붙는 것 같다’고 했다. 병어 맛의 표현은 더 더할 게 없다. 그것으로 끝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사람과 함께 밥을 먹고 술잔을 기울이는 건 얼마나 흥미진진한 일일까? 일전에 모임에서 구정은 기자가 박찬일 셰프를 비롯한 몇몇 음식 고수들과 냉면을 먹다가 어찌나 사설이 긴지 음식평은 나중에 하고 냉면 좀 먹자고 짜증을 부렸다고 했다. 메밀이 어떻고 조리는 어떻게 하고. 이야기가 끊어지지 않더란다. 그래서 내가 한마디 했다. 복에 겨운 것도 모르고 불평한다고. 나는 그런 자리에 한 번 끼는 게 꿈이라고도 했다. 구 기자께서 그 말에 정색하며 그 자리에 한 번 끼워줄까 물었는데, 기억이나 하고 계시는지 모르겠다. 이 글 보시면 얼른 자리 마련하시라.


<보보담>은 사진이 워낙 좋지만 이번 호에는 유독 사진이 많다. 경치가 아름다워 사진이 멋진 줄 알았는데, 잘 찍어놓으니 정유공장 야경도 작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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