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잉여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인식 Nov 01. 2024

2024.11.01 (금)

윤영수의 <내 여자친구의 귀여운 연애>

한강의 소설을 읽으려고 붙든 2005년 이상문학상 작품집에서 뜻밖에 좋은 소설을 만났다. 단숨에 읽었고, 그랬는데도 작가가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을 독자에게 전하고 싶었는지 바로 깨달았다. 물론 전적으로 내 취향이다. 우수작 여섯 편 중 하나인 윤영수의 <내 여자친구의 귀여운 연애>라는 소설인데, 처음에는 제목만 보고 건너뛰려고 했다. 어떤 내용인지 살펴나 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했다가 단숨에 다 읽었다. 작품집 말미에 실린 심사평이다.


“가족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살고 있는 할인매장 지하식품부의 양미는 결코 예쁘다고 할 수 없는 뚱뚱한 여자다. 그런 그녀가 애인이 생겼다며 갑자기 다이어트와 함께 외모를 가꾸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그녀를 조롱하거나 동정한다. 그러나 그녀는 마침내 날씬해지고 몰라보게 바뀐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내게 전화를 걸어와 다급한 목소리로 애인이 준 목걸이를 잃어버렸다고 하소연한다. 그녀를 찾아간 나는 비로소 그녀가 그동안 상상 속의 애인과 연애를 해왔음을 알게 된다.”


“돈과 미모, 그 어느 것도 물려받지 못해 현실에서 소외된 한 여성을 감동적으로 그려냈다”는 이 심사평은 작품의 줄거리는 물론 작품에서 받은 감동의 일부분도 담아내지 못한다.


읽고 나서 몹시 궁금했다. 내가 지루해하는 소설과 내가 흥미를 느끼고 감동도 함께 느끼는 소설은 어떻게 다른지, 내가 좋은 소설이라고 생각하는 작품의 공통점은 무엇인지.


우선 이야기가 흡인력이 있다. 이야기가 가지고 있는 힘 때문에 읽는 동안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다. 장소와 시제에 얽매이지 않고 시공을 넘나드는, 그래서 글을 따라가기도 쉽지 않은 요즘의 소설에서 느끼는 불편함이 없다. 이야기를 따라 시공을 넘나들어야 하는 소설을 읽는 건 에너지가 너무 많이 드는 일이어서 그렇다.


묘사라고 할 만한 부분이 눈에 띄지 않는다. 그저 이야기가 흘러갈 뿐이다. 느낌으로는 윤영수 작가의 글은 주로 동사로 이루어졌다면 한강 작가의 글은 형용사와 부사로 이루어진 것이 아닐까 싶었지만, 다시 확인해보니 그렇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왜 그런 느낌이 드는 걸까?


책을 덮을 때쯤 인간에 대한 작가의 이해와 연민이 그대로 느껴졌다. 묘사를 뜯어보거나 작품을 해석하고 나서 감동이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그냥, 저절로 느껴진다. 이균영의 <어두운 기억의 저편>, 조해진의 <단순한 진심>을 읽을 때 받았던 딱 그 느낌을 다시 받았다. 하지만 그 감동을 담아내기엔 작품의 제목이 너무나 모자란다. 이 작품의 유일한 흠이라고나 할까.


잘 알지도 못하는 소설에 대해 이처럼 말 같지 않은 말을 마구 쏟아낼 엄두가 생긴 건 모두 한강 작가 덕분이다. 나 같은 사람이 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이런저런 이유로 소설과는 거리가 멀었으나, 한강 작가의 수상을 계기로 소설을 가까이하게 된 그런 사람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2024.10.30 (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