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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Oct 30. 2024

2024.10.30 (수)

몽고반점

나는 ‘소설은 이야기’라고 생각해 왔다. 말하자면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구상 미술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이야기가 아니라 심리나 상황을 묘사하는 데 치중한 소설은 쉽게 읽지 못한다. 마치 추상 미술은 이해하지도 못하고 곧 지루함을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책을 지식을 얻는 도구로 생각하는 편인데, 그러다 보니 시나 소설에 그다지 익숙하지 않다. 그래도 책 읽는 게 너무 편향되는 건 아닌가 싶어 의무적으로라도 소설을 읽으려고 했다. 그렇게 읽은 것이 ‘이상 문학상’ 작품집이었다.


‘이상 문학상’은 1977년 김승옥의 <서울의 달빛 0장>을 수상작으로 배출한 이래 올해로 47회를 맞았다. 아마 2000년 들어서면서 더 이상 읽지 않았을 텐데, 그렇게 된 계기가 1989년 수상작인 김채원의 <겨울의 환>이었다.


그전까지 읽은 작품 중 이균영의 <어두운 기억의 저편>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몇 년 전, 오랫동안 읽지 않던 소설을 다시 읽게 만든 작품인 조해진의 <단순한 진심>을 읽으면서 이균영의 소설이 떠올랐고, 굳이 서울에 다녀오는 인편에 책을 부탁해 두 소설을 비교하며 다시 읽었다.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았던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도 그렇고 최인호의 <깊고 푸른 밤>, 이제하의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도 기억에 남는다.


하지만 1989년 김채원의 <겨울의 환>을 기점으로 작품이 이야기보다는 심리 묘사, 상황 묘사에 비중이 실리면서 읽기가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그 후로도 십여 년 더 읽기는 했다. 거의 의무감으로. 회사 업무가 점점 많아지기도 했고 굳이 의무감으로 읽을 필요가 있을까 싶은 생각에 그 후로는 소설에서 멀어졌다.


이런저런 이유로 소설을 즐겨 읽지는 않지만, 노벨문학상이라는 엄청난 선물을 국민에게 안겨준 작가에 대한 경의의 표시로라도 그의 작품 몇 개는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먼저 그의 이름을 알린 2005년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몽고반점>을 읽었다.


악몽에 시달려 육식을 하지 못해 채식주의자가 된 처제에게 베트남 참전용사인 장인이 고기를 먹지 않겠다는 처제의 뺨을 때리고 우격다짐으로 고깃덩어리를 밀어 넣는 장면을 만나면서 잠시 혼란스러웠다. <채식주의자>에서도 그랬다고 하지 않았던가? 혹시 내가 두 소설의 줄거리를 혼동한 건 아니었을까? 그런 의문을 품고 또 의문을 풀어가며 그렇게 그렇게 읽기는 했는데 작가가 뭘 말하고 싶었던 것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지금은 <몽고반점>에 이어 작가 자신이 대표작으로 골라 함께 실은 <아기 부처>를 읽고 있다.


반은 감사함으로 반은 의무감으로 작가의 소설 몇 개를 전자책으로 받아놨다. 돈 들여 산 것이니 읽기는 하겠는데, 그것이 언제가 될지는 <아기 부처>를 읽고 나서 결정할까 한다. 이야기보다 심리 묘사 상황 묘사에 치중한 소설이 불편하지 않을 때쯤? 그런데 그런 날이 올까 싶기는 하다.


생각해 보니 내가 흥미 있게 읽었던 소설과 지루하게 읽었던 소설이 각각 공통점이 있다. 바로 작가의 성별. 우연한 것일까? 아니면 작가의 성별에 따라 작품을 풀어나가는 방식이 차이를 보이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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