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미정
서경문화사
2024년 5월 3일
홍미정 교수의 역작을 발간 순서대로 읽어가고 있다. 저자의 이름을 알게 된 것은 졸저를 집필하면서 참고문헌을 찾던 중 확인한 사우디 왕가와 정치에 관한 논문 때문이었다. 처음 저자의 논문을 확인했을 때 사우디 관련 자료라면 어지간히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자신이 우물 안 개구리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머쓱했다. 그렇기는 해도 지금까지 사우디에 관한 저술로는 저자가 발표한 것 이상을 찾지 못했다.
저자의 저서는 대중서로 발간되기는 했어도 하나같이 읽는 데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전문서에 가깝다. 그러다 보니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정도의 긴장을 유지하면서 읽는 게 쉽지 않다. 그래서 저서마다 몇 가지 관점을 세워 그 내용을 집중적으로 살피고 있다.
이번 저서에서는 그동안 관심은 두었으나 마땅한 텍스트를 찾지 못했던 영국-시온주의자-하심가문의 관계를 집중해서 살폈다. 그 과정에서 영국의 중동전략, 그리고 사우드가문이 하심가문을 물리치고 사우디를 건국하게 된 배경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동안 사우디 역사를 살피면서 중동의 역사를 함께 살피지 않고서는 사우디 역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는데, 그런 관점에서 저자가 이 책에서 이슬람 예언자 무함마드로부터 요르단ㆍ이라크ㆍ사우디 건국에 이르는 과정을 서술한 것은 사우디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또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만 차별한 것이 아니라 유대인 자국민조차 출신에 따라 차별을 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된 것도 큰 수확이었다. 저자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집착하는 중요한 이유로 가자지구 해안에서 발견된 가스전을 들고 있다. 처음 들어보기는 해도 저간의 상황을 고려할 때 저자의 추론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앞으로 이 지역의 정세를 판단하는 데 중요한 잣대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19세기 말~20세기 초 중동 문제의 중심에는 영국이 자리 잡고 있다. 영국은 ‘후세인-맥마흔 서한’으로 하심가문에 아랍국가의 독립을 보장함으로써 아랍연합을 이용해 오스만제국을 무너뜨리려 했고, 동시에 ‘벨푸어 선언’으로 시온주의자들에게 유대국가 건설을 약속했다. 양립할 수 없는 약속을 한 것이다.
1914년 오스만제국은 영국이 주축이 된 연합국에 맞서면서 메카의 샤리프(지배자)였던 후세인에게 원군을 요청한다. 후세인은 오히려 이것을 아랍국가 건설의 기회로 삼아 아랍국가를 인정한다는 조건으로 영국에게 오스만제국을 상대하는 전쟁에 앞서겠다고 제안한다. 아랍연합의 힘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후세인의 능력을 신뢰하지 않았던 영국은 제안을 받아들이면서도 제안의 조건에 대해 미온적인 반응을 보인다. 이용만 하겠다는 심산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영국과 거래를 튼 샤리프 후세인의 하심가문은 영국의 미온적인 반응에 조바심을 내다가 결국에는 영국이 의도한 대로 ‘벨푸어 선언’을 인정하고 유대인을 팔레스타인의 통치자로 세우는 데 동의하기에 이른다. 저자는 그 결정이 아랍 무슬림을 피지배자로 전락시키고 영국을 분쟁의 중재자로 공인해 지금과 같은 피비린내 나는 상황에 이르게 만들었다는 비판적인 견해를 밝히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샤리프 후세인이 주축이 된 아랍연합이 애초 기대했던 아랍국가를 세울 수 있었던 것도 아니다. 물론 영국의 지지로 샤리프 후세인의 2남 압둘라가 요르단 국왕이 되고 3남 파이살이 이라크 국왕이 되는 성과를 거두기는 했지만, 애초 기대했던 아랍국가도 아니었고 하심가문이 이라크를 다스린 것은 10여 년에 불과했다.
그러면 영국이 중동에 집착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영국에게 중동은 수에즈운하의 배후이자 이라크 북부 키르쿠크 유전에서 출발한 송유관이 지나는 지역이고 동시에 인도로 가는 길목이었다. 이런 요충지를 지키기 위해 영국은 오스만제국을 몰아낸 1920년부터 각종 방법으로 자신들의 통치 권한을 유지하려 했고, 중동에서 철수하던 1948년 이스라엘을 건국해 그들을 자국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대리인이자 방패막이로 내세웠다. 그리고 그 결과는 보는 바와 같이 팔레스타인 정착민이 오히려 배제되고 차별받는 모양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영국의 대리인으로 정착민을 몰아내고 주인이 된 유대인들은 모두 우대받아야 할 것 같은데, 저자는 같은 유대인이라 하더라도 출신성분에 따라 팔레스타인인과 크게 다르지 않은 차별을 받고 있다고 말한다.
이스라엘 건국 당시 유럽 출신 아시케나지 유대인은 인구의 80%를 웃도는 주축 세력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북아프리카 출신인 미즈라히 유대인이나 이베리아반도 출신인 세파르디 유대인이 60%이고 아시케나지 유대인은 40%에 불과하다. 건국 이후 귀환한 유대인 중에서 미즈라히ㆍ세파르디 유대인이 다수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초대 와이즈만으로부터 지금까지 대통령이 모두 11명이었는데 그중 9명이, 실질적인 국가 지도자인 총리는 초대 벤구리온으로부터 현 네타냐후까지 13명이 모두 아시케나지이다. 건국 초기야 아시케나지가 절대다수였으니 그럴 수 있다고 하지만, 이미 국민의 60%가 미즈라히ㆍ세파르디인 지금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화이트칼라들은 아시케나지가 42.9%인데 반해 미즈라히ㆍ세파르디는 19.8%에 불과할 뿐 아니라 교육 수준도 낮고 비숙련직 종사자가 대부분이다. 대학 교원 중 이들의 비율은 아시케나지에 비교되지 않을 만큼 낮고 교도도 수감률은 또 그만큼 높다. 이스라엘 하층민인 이들과 아시케나지 간의 격차를 해소하는 데 99년이나 걸릴 것이라는 암울한 분석도 있다.
사우디 건국 이전에 사우디 지역은 하심가문과 사우드가문과 라시드가문이 분점하고 있었다. 라시드가문은 사우드가문에 의해 일찌감치 제압되었지만, 하심가문은 그 후로도 상당한 세력을 유지하며 중동 구도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최종적으로는 사우드가문이 하심가문을 축출하고 1932년 왕국을 수립했지만, 지금까지도 당시의 역학 구도가 어땠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앞서 하심가문이 ‘벨푸어 선언’에 동의했다고는 했지만, 정확히는 샤리프 후세인의 2남인 압둘라(요르단 국왕)와 3남인 파이살(이라크 국왕)이 동의한 것이고 정작 샤리프 후세인은 ‘벨푸어 선언’을 거부하고 영국에 아랍국가의 완전한 독립과 통합에 대한 약속을 요구했다. 이를 성가시게 생각한 영국은 오히려 사우드가문의 압둘라지즈(사우디 초대 국왕)에게 하심가문이 다스리고 있던 헤자즈 정복을 승인했다. 얼마 전 압둘라지즈의 일대기를 다룬 <이븐 사우드>에서 상대적으로 열세였던 사우드가문이 하심가문을 몰아내고 사우디 통일왕국을 수립했다는 내용을 읽으며 의아했었는데, 이것으로 궁금증이 풀렸다. 상대적 열세를 영국의 힘을 빌려 극복한 것이다. 영국의 손바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기도 하고. 그런 역사를 돌아볼 때 지금 사우디가 ‘아랍의 대의’를 들먹이며 팔레스타인 후견인을 자처하는 모습은 볼썽사납다.
이처럼 사우드가문은 영국의 도움으로 하심가문을 몰아내고 헤자즈를 차지하면서 독립왕국 건설에 성공했지만 민심 이반을 염려했던 그들은 이후 하심가문 지우기에 나선다. 이슬람 예언자 무함마드의 후손인 하심가문은 무함마드 사후 메카ㆍ메디나 지역을 천 년 가까이 지배했는데, 그러다 보니 하심가문 지우기는 결국 예언자 무함마드 지우기로 이어져 무함마드 출생지를 우시장으로 만들고 그와 자녀들의 무덤을 파괴하고 이들을 기리는 것을 우상숭배로 낙인찍기에 이른다. 사우디 건국이념인 와하비즘을 만든 종교가문인 와합가문은 종교적으로 이를 정당화한다.
그동안 어떤 이유에서였건 예언자 무함마드 유적을 파괴한다는 건 이슬람 종주국을 자처하는 사우디로서는 선택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우드가문이 예언자 무함마드의 유적을 파괴한 걸 이해할 수 없었다. 이런 점에서 저자의 이런 해석이 반갑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이 저자의 독특한 견해인지 이미 학술적으로 받아들여진 해석인지 궁금하기도 하다. 저자는 그 증거로 사우디가 ‘알울라’ 선사유적지나 사우드가문의 발원지인 ‘디리아’를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신청해 성사시켰지만 이슬람 종주국을 자처하는 그들이 정작 메카ㆍ메디나는 제외했다는 사실을 들고 있다. 지금도 메카에는 초고층 호텔을 비롯한 관광시설 증설이 이어지고 있는데, 저자는 그것도 하심가문 지우기의 하나로 해석한다. 그것이 사우디 관광 수입을 늘려주기는 하겠지만 결과적으로 이슬람 성지를 훼손하는 일일 뿐 아니라 예언자 무함마드의 유적을 훼손한 자리에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집착하는 원인 중 하나로 1998년 가자지구 해안에서 발견된 가스전을 꼽는다. 가자 가스전은 가자지구에서 36km 떨어진 해수면 600m 아래에 분포한다. 개발하기 쉽고 경제성도 높다. 실제로 이 가스전의 매장량은 팔레스타인 에너지 자급을 이룰 뿐 아니라 수출 여력도 만만치 않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서 즉각 탐사를 실시하고 개발할 채비를 갖추었지만, 이스라엘은 1999년에 팔레스타인이 가스전에 접근하는 것을 금지하고 미국 기업과 함께 탐사를 진행하고 있다.
하마스의 공격으로 시작된 하마스-이스라엘 전쟁에서 미국이 이스라엘 편을 드는 건 놀랄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인접한 요르단이나 사우디도 하마스를 비난하고 나선 건 이해하기 어려웠다. 따라서 이와 같은 저자의 해석은 매우 합리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들어보지 못한 내용이어서 이 역시 저자의 독특한 견해인지 공감대가 형성된 견해인지 궁금하다.
저자에 따르면 인접한 요르단은 가스전의 직접적인 수혜자이다. 실제로 요르단 국영전기회사는 가스전 개발자인 미국의 노블에너지와 천연가스 협정을 맺었고, 요르단 정보부 장관은 이로써 에너지 예산을 매년 6억 달러 절약할 수 있을 거라고 밝혔다. 아래에 인용한 저자의 견해를 수용한다면 사우디 또한 수혜자이기는 마찬가지이다. 요르단이나 사우디가 팔레스타인에 대해 모호한 태도를 보인 이유가 바로 이것이 아닐까?
“이스라엘이 천연가스를 이집트와 요르단 등 이웃 국가를 넘어서 유럽으로 수출할 수 있게 된다면 유럽의 에너지 환경은 완전히 바뀔 것이고 이로써 이스라엘은 ‘미국과 유럽의 필수 자산’의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이는 러시아 가스에 대한 터키와 유럽의 의존도를 줄이고, 따라서 이 시장에 대한 러시아의 장악력을 축소할 것이다. 결국 이스라엘부터 터키에 이르는 가스 파이프라인은 러시아의 가스 판로에 심각한 타격을 가함으로써 미국에 전략적 승리를 안겨줄 것이다. 또한 이집트-요르단-이스라엘의 천연가스 협력은 불안정성이 큰 역내에서 미국과 미국 동맹의 안정성을 확보할 것이다.”
이로써 이스라엘이 집요하게 가자지구를 공격하는 것이나, 요르단이나 사우디가 팔레스타인에 거리를 두는 모습, 그리고 미국이 무조건 이스라엘 편을 드는 상황을 선명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밖에도 미처 거론하지 못한 내용이 하나둘이 아니다. 중동 교과서로서도 손색이 없는 역작이다. 그런 면에서 색인을 싣지 않은 것은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한번 보고 말 책이라면 모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