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미정ㆍ마흐디 압둘하디
아랍문화연구소
2018년 3월 2일
몇 달 전부터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을 중심으로 한 중동 역사를 집중적으로 읽고 있다. 이전에도 사우디 중심으로 중동을 다룬 책을 적지 않게 읽었지만, 짧은 시간에 이토록 집중해서 읽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는 것도 하나둘 잊어버릴 나이에 뭔가 새롭게 알아간다는 게 쉬운 일도 아니고, 때로는 무모한 일이다 싶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필요할 때 되돌아갈 수 있도록 밑줄 치고 메모하고 책 귀퉁이를 접어가면서 읽는다.
중동은 우리와 달리 여러 나라가 이합집산하면서 국가를 형성해 왔다. 한국이나 일본은 땅과 사람은 그대로인 채 국가의 정체성만 바뀌었지만, 중동은 땅도 사람도 여러 번 나뉘고 합쳐지다 보니 그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 무척 버거웠다. 그렇기는 해도 여러 권을 연속해서 읽으면서 나름으로 정리도 되고 윤곽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이전 글에서 기독교인인 내게 이스라엘은 ‘성경 예언의 성취’로 인식된다고 언급한 일이 있다. 하지만 책을 읽어가면서 그런 내 인식이 사실과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조금씩 깨닫고 있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이스라엘 유대인이 성경의 유대인이 아닐 수 있다는 주장에 초점을 맞췄다. 이스라엘 건국 배경에 대해서는 저자의 다른 저서인 <중동 현대사>에서 살폈으므로 이번엔 건국 이후 팔레스타인 땅을 차지한 과정에 초점을 맞췄다.
“이스라엘 유대인 작가 보아스 에브론이 1995년에 출판한 <유대국가인가 혹은 이스라엘인의 국가인가?>에서 밝힌 시온주의가 내세우는 핵심 전제는 다음과 같다. 1) 팔레스타인은 성서에서 아브라함과 고대 이스라엘인에게 약속한 땅이다. 2) 아브라함은 기원전 17세기에 팔레스타인에 정착했다. 3) 아브라함은 고대 이스라엘 족장이다. 4) 고대 이스라엘은 기원전 13세기에 팔레스타인 땅을 정복하고 정착했다. 5) 로마가 점령한 팔레스타인의 유대인들은 고대 이스라엘인의 후예이다. 6) 그들은 팔레스타인에서 강제로 추방당했다. 7) 현대 유대인은 로마가 추방한 고대 이스라엘인의 후예이다. 8) 조상의 고향으로 귀환하는 것은 천부적인 권리이다. 9) 유대인은 시간과 공간을 관통해 ‘하나의 민족’으로 존재했다.”
나는 몇 년 전까지 성경을 역사서로 이해해 왔다. ‘성서비평’에 눈뜨면서 성경은 오랜 시간에 걸쳐 첨삭되고 다듬어져 온 편집의 산물임을 깨닫게 되었고, 그때부터 성경을 신앙고백서로 이해하게 되었다. 그래서 성경에 기록된 사실이 역사와 어긋나는 게 이상하지도 않았고 내 신앙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았다. 그런 바탕이 있어서인지 20세기 이후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계속된 고고학 발굴과 연구 결과 이 지역에서 고대 이스라엘인이 뚜렷한 역할을 한 증거를 찾지 못했다는 주장이 그다지 놀랍지 않았다.
저자에 따르면 1997년 출판된 <고대 이스라엘의 발명>의 저자 키스 휘틀럼은 “고대 이스라엘인이 역사적 실체가 아니며, 유럽 국민 국가나 나아가 서양 근대 문명을 합리화하려는 학자들에 의해 발명된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저자는 고대 이스라엘 국가의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이스라엘이 고고학에 집중적으로 투자했지만, 팔레스타인 땅에 고대 이스라엘인이 역사적으로 존재했는지조차도 확인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말하자면 위에서 인용한 ‘시온주의의 핵심 전제’가 사실과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점령 명분도 그렇다. 그들은 점령에 대한 정당성을 3천 년 전 유대 사원의 존재에서 찾고 있는데, 알아크사 모스크가 있는 성전산(Temple Mount) 일부를 지탱하고 있는 서쪽 벽(통곡의 벽)이 예루살렘이 유대교 성지였고 기원전 10세기에 건설된 솔로몬 성전 터였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1968년 고고학 발굴 과정에서 가장 밑에 있는 초석이 단지 기원전 1세기 로마 헤롯왕 시대의 것이라고 확인했다. 이 벽의 건축 연대가 기껏해야 기원전 1세기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경 해석의 전제가 무너지는 셈이다.
저자는 <울지마, 팔레스타인>에서 민족 이동과 관련한 여러 증거를 제시하면서 시온주의의 핵심 전제를 반박하고 있다. 이러한 서술은 일란 파페의 <이스라엘에 대한 열 가지 신화>에서도 확인되며, 도브 왁스만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모든 것>에서도 유대인 디아스포라와 이스라엘의 관계를 일반화하기는 불가능하다고 서술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예루살렘에 유대 성전이 존재했는지 자체를 의심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고고학자는 10세기에 건설되었다는 첫 번째 솔로몬 성전도 허구이고 6세기에 건설되었다는 두 번째 성전 역시 공상의 세계에나 존재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주제는 중동 분쟁뿐 아니라 내 신앙의 근간에 해당하는 일이어서 앞으로도 계속 관심을 가져볼 생각이다.
지금이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이 유대인이 이스라엘을 건국하면서 팔레스타인인을 몰아내 발생한 것이라는 걸 부정하는 이가 없지만, 이스라엘 건국 당시에는 팔레스타인이라는 존재가 지워졌거나 그들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1853년 7월 영국 정치가인 새프츠베리 경이 당시 영국 외무장관에게 보낸 서신에서 팔레스타인을 ‘민족 없는 땅, 땅 없는 민족’을 공식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는 팔레스타인 땅에 대한 권리가 고대로부터 합법적으로 그 땅을 지배해오던 유대인에게 있다고 주장하기 위해 팔레스타인 지역을 비어있는 땅으로 규정하였다. 이후 새프츠베리의 이 문구는 United Presbyterian Magazine 등 장로교회 잡지를 중심으로 퍼져나가면서 장로교의 폭 넓은 지지를 얻었다. 이후 영국 성공회를 비롯한 여러 곳에서도 이 개념을 선호하며 19세기 후반에 ‘민족 없는 땅, 땅 없는 민족’이라는 문구가 영국과 미국의 대중에게 확산되었다. 이렇게 볼 때 시온주의를 창안해 널리 유포시키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한 주체는 유대인이라기보다는 영국인이며, 이를 팔레스타인에 실현할 수 있게 만든 것도 대영제국이었다.”
그동안 중동을 다룬 책을 읽으면서 중동 역사는 대영제국의 중동 운영사(運營史)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앞서 언급한 ‘후세인-맥마흔 서한’이라던가 ‘벨푸어 선언’이 중동 지배를 위한 전투 병력이라면 ‘민족 없는 땅’이라는 가공의 개념을 만든 영국 외교계는 선무 공작대 정도 되는 게 아닌가 싶다. 미국이 이스라엘을 조건 없이 지지하는 배후를 미국 보수 기독교가 굳건하게 뒷받침하고 있는 걸 보면 그들의 선전전은 대단한 성공을 거둔 것이고.
유대인 귀환과 이스라엘 건국의 중심에는 1897년 결성된 세계 시온주의자 의회(The World Zionist Congress)가 있었다. 세계 시온주의자 기구의 최고 입법부인 이 기구는 1897년 바젤에서 제1차 시온주의자 의회를 개최한 이후 1901년까지 매년 회의를 개최했으며 이후 이스라엘 국가 수립 이전까지 2년마다, 국가 수립 이후에는 4~5년에 한 번씩 예루살렘에서 정기회의를 개최하고 있다.
이들은 건국의 중심이었을 뿐 아니라 팔레스타인 땅 강탈의 근거가 되는 법을 만들었다. 이와 관련한 저자의 설명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897년 1차 바젤 회의에서는 ‘팔레스타인 공법에 보장된 유대민족 고향 창설’을 강령으로 제시했다. 1901년 5차 회의에서는 ‘이스라엘 국가의 강화, 추방된 유대인 이주 지원, 유대민족 통합 촉진’을 위한 세칙을 제시하고 오스만제국 통치하의 팔레스타인 땅을 구매ㆍ개발하는 회사로 유대민족기금(Jewish National Fund)을 창설했다. 1968년 27차 회의에서는 ‘역사적 고향인 예레츠 이스라엘로 유대인 이주’를 강조하면서 ‘모든 곳에서 유대인 권리 보호’를 명시했다. 예레츠 이스라엘이란 1967년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불법 점령한 동예루살렘, 서안 및 가자 지역을 포함하는 것으로, 바로 이 불법점령지로 유대인을 이주시킨다는 뜻이다. 2004년 제시된 예루살렘 강령에서는 팔레스타인인을 배제하고 유대국가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유대민족기금은 창설 이후 현재까지 이스라엘 땅을 개발하고 유대인과 유대인 고향 사이의 결속을 강화해 왔다. 점령지 팔레스타인 영토에서 유대 식민촌 건설 사업과 이스라엘 내부 개발사업에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1948년 국가 수립 이후 이스라엘 정부는 아랍 부재지주의 땅을 유대민족기금에 팔기 시작했다. 1950년 말경에 유대민족기금이 소유한 땅의 2/3 이상은 팔레스타인 부재지주, 즉 팔레스타인 난민의 땅이었다. 1950년 3월 제정된 부재자재산법은 유엔에서 팔레스타인 분할안이 의결된 1947년 11월 9일 현재 아랍국가의 시민이거나 아랍국가에 거주하던 사람과 팔레스타인이라 할지라도 본인의 거주지를 떠나있던 사람들은 이유를 불문하고 부재자로 분류했다. 부재자재산법에는 판매 거부권이 명시되어 있어 시골 땅은 이스라엘 정부나 유대민족기금에만 팔 수 있었다. 부재자재산법에 따르면 부재자의 재산은 그 재산의 점유자에게 귀속되었는데, 점유자들은 전 재산을 이스라엘 정부에게 팔았고 이스라엘은 이로써 손쉽게 원주민 팔레스타인인의 재산권을 강탈했을 뿐 아니라 이들이 팔레스타인이나 본인의 집으로 귀환할 근거를 사실상 없애버렸다.”
나는 이스라엘 건국 과정에서 유대인들이 땅은 정당하게 사들인 줄 알았다. 정당하게 땅을 사들였다고 해서 그곳에 나라를 세우는 것을 합리화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하지만 이스라엘은 자기 땅에 살지 않는 팔레스타인인을 부재자로 분류하고, 그런 부재자의 재산을 점유자의 소유로 인정하고, 그것을 이스라엘 정부에게만 팔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저자의 말대로 본인의 집으로 귀환할 근거까지 없애버린 것이다.
분쟁을 바라보는 시선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하지만 그 시선은 사실에서 출발해야 다름을 인정받을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런 면에서 이렇게 하나씩 사실을 확인해 가는 과정이 내게는 매우 의미 있는 작업이 아닐 수 없다. 다행히 사안의 본질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저자의 작업이 그런 내게 큰 도움이 되고 있어 감사한 마음으로 읽고 있다. 좀 더 많은 이들이 관심을 기울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