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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Nov 22. 2024

세 개의 전쟁

<피렌체의 식탁> 박인식의 호기심 따라 읽기 20

웹진 <피렌체의 식탁>에 스무 번째 서평이 올라왔습니다. 이번에는 태평양전쟁, 우크라이나전쟁과 함께 대만전쟁을 다룬 김정섭의 <세 개의 전쟁>을 읽었습니다.


링크는 아래에 올립니다. 응원하는 마음으로 클릭 한 번...


♣♣♣


세 개의 전쟁

김정섭

프시케의숲

2024년 4월 15일


우리는 휴전 이후 칠십 년 넘게 지척에 적을 두고 산다. 그동안 북한에서 셀 수 없을 만큼 여러 번 위협을 가했고, 그래서 외국인들은 그런 곳에서 무서워서 어떻게 사느냐고 묻곤 했다. 하지만 북한 위협 때문에 일상에 지장을 받았다는 경우는 들어보지 못했다. 비록 휴전 상태라고는 하지만 전쟁은 남의 이야기가 되었다는 말이다.


그렇게 전쟁을 잊고 사는 우리가 다시 전쟁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지척에 대치하고 있는 북한 때문이 아니라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던 대만해협 양안의 대결 국면 때문이다.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면 오산과 군산의 미 공군이 투입될 것이고, 그걸 가만두고 볼 중국이 아니니 우리 땅에서 전투가 벌어지는 걸 피할 길이 없을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다.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둔 중국이 북한을 시켜 남한을 공격함으로써 미 공군의 발목을 묶어 놓으려 할 것이라는 시나리오도 아주 현실감 있게 들린다.


이런 상황에서 안보 전문가가 태평양전쟁, 우크라이나전쟁과 함께 대만전쟁을 다룬 <세 개의 전쟁>이라는 책을 냈다. 안보에 문외한인 내게는 이 책이 앞서 일어난 두 전쟁의 교훈에서 아직 일어나지 않은 대만전쟁을 막을 수 있는 해법을 찾으려는 시도로 읽혔다.


저자는 세 전쟁 모두 경제가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고 말한다. 일본은 동남아의 자원을 얻기 위해 이길 수 없는 전쟁을 일으켰고, 소련은 연방해체로 발트 3국에 막혀 바다로 나갈 수 없게 된 데다가 우크라이나의 농업 기반과 공업 생산력을 잃었고, 중국은 일대일로의 관문인 대만을 포기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일본이 패전하게 된 결정적인 원인을 독일, 이탈리아와 맺은 3국 동맹으로 해석하는 저자는 독일이 승리하면 동남아에 있는 영국과 프랑스와 네덜란드 식민지가 독일의 수중에 들어가 일본의 자원 확보가 불가능해질 것이라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그 못지않게 독일의 승리에 고무되어 자신들도 승전국 대열에 끼고 싶었던 일본의 허영심도 큰 이유였을 것으로 판단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렇지 않고는 석유가 바닥을 보이는 상황에서 근거 없는 장밋빛 전망에 엉터리 통계 수치를 바탕으로 진주만 공격을 포함해 전선을 확대하는 어리석은 결정을 내리는 과정이 설명되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가 의도한 바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미국의 민낯은 세계 경찰과는 너무도 거리가 멀다. 일본 항복의 계기가 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 투하는 자국민의 희생을 줄이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는 하지만, 그들은 그 과정에서 전쟁과 무관한 민간인의 희생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미국인의 희생을 줄이자면 일본 본토를 공격해야 했고, 그러자면 무려 25만 명의 희생을 무릅써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자 트루먼 대통령은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원폭 투하를 결정했다. 그 결과 원폭 투하 당시 7만 명, 낙진 피해로 10만 명, 장기 질환으로 20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인류 최악의 역사를 남겼다. 이는 군수 능력을 파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전쟁 의지를 말살하기 위한 것이었고, 그러다 보니 민간인 무차별 살상을 외면했다고 말하기는 한다. 하지만 내 눈에는 오히려 전쟁 의지를 말살하기 위해 민간인 무차별 살상을 의도한 것으로 보인다. 그랬으니 민간인 대피를 위한 경고조차 하지 않은 게 아닌가.


우크라이나전쟁 또한 태평양전쟁과 마찬가지로 영토정복전쟁이기는 하지만, 이 책을 통해 그 원인을 단지 대국의 오만함으로만 해석할 수 없는 나름의 배경이 있다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놀랍게도 저자는 러시아가 침략에 대한 과도한 공포를 안고 살아왔다고 말한다. 러시아는 자연 경계물이 없는 평탄한 지형 때문에 침략에 취약했고, 그래서 대평원을 달려온 몽골의 침략에 속수무책으로 당해 240년이나 그들의 지배를 받아야 했다. 2차대전 때 독일과의 전투에서 연합군이 40만 명 사망하는 동안 러시아군은 그의 20배에 달하는 800만 명이 사망했고, 민간인을 포함한 전체 사상자는 무려 2,900만 명에 달했다. 전쟁에 나간 러시아 청년 100명 중 10명만 살아서 돌아왔고 그나마 사지 멀쩡하게 돌아온 청년은 겨우 1명에 지나지 않았다. 독일군이 871일 동안 포위했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시민의 1/3이 굶어서 죽었다. 그뿐 아니라 소련이 해체되면서 연방 다른 나라에 흩어져 살던 러시아인들은 노골적인 차별에 시달리며 2등 국민으로 전락한 쓰라린 기억도 있다. 그러니 러시아인이 대다수인 루간스크와 도네츠크 지역을 자국 영토로 편입한 그들의 침공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물론 그렇다고 침략전쟁이 정당화될 수는 없는 일이다.


러시아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쳐도 우크라이나전쟁으로 러시아는 오히려 많은 것을 잃었다. 당초 예상과 달리 무려 2년 넘게 전쟁을 끝내지 못한 것도 그렇고, 이 때문에 나토가 와해되기는커녕 소련 해체로 국방비를 삭감했던 회원국들이 재무장하고 나토 깃발 아래 결속을 강화하고 나섰다. 전쟁도 경제가 뒷받침되어야 지속할 수 있는 것인데, 중국의 1/12 미국의 1/18에 지나지 않는 경제력으로 우크라이나뿐 아니라 벨라루스,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지역에 과도하게 개입하고 있는 러시아로서는 진퇴양난의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저자의 견해대로라면 마치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일으켰을 당시 대등하던 함재기 수가 전쟁 말기에는 미국의 1/15로 줄어들었던 것처럼, 전쟁 말기에 GDP 격차 또한 크게 벌어졌던 것처럼, 러시아는 시간이 갈수록 경제력이 소진되어 결국은 국가 존립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것 때문에 당장 우크라이나전쟁에서 패배하지는 않더라도 쇠약해진 국력 때문에 열강에서 탈락하게 되지는 않을지 모르겠다.


앞서 말한 대로 중국은 국운을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일대일로(Belt and Road Initiative)를 구축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나는 일대일로가 중국이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는 것으로 여겼고 다른 이들도 대체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와 달리 저자는 단지 일대일로의 구축에 매진할 뿐 중국은 미국과 불필요한 충돌을 자제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 경제적 동기에서 출발한 일대일로가 겨냥하는 곳은 중국의 서남쪽인 남중국을 비롯한 인도양과 중동, 아프리카라는 것이고, 그러다 보니 대만이 관문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중국이 미국의 패권을 부인하는 모양이 된 것은 달라질 것이 없지만.


아무튼 저자는 이런 이유로 중국이 침공보다는 강압 정책을 펼친다고 말한다. 대만을 침공하면 미국과 충돌이 불가피하니 그것보다는 서서히 힘의 균형을 바꿔서 당사국들이 베이징의 의도에 저항하지 못하도록 만들고, 전투기가 대만 방공식별구역에 침입하고 군함이 대만해협 중간선을 침범해 대만이 대응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고, 중국과 충돌했을 때 어떤 결과를 맞게 될지 상상하게 만들어 결과적으로 레드라인을 서서히 지워나간다는 말이다. 반면에 미국은 어떤 경우에도 레드라인 넘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이고.


저자의 판단대로라면 대만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겠고, 이런 저자의 판단은 관련 전문가들의 견해로 뒷받침되기도 한다. 2024년 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국 대학의 국제관계학자의 72.5%가 중국의 침략전쟁이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예상했고 10년 안에 전쟁이 일어나리라 예상하는 사람은 24.1%에 지나지 않았다. 핵보유국끼리 전쟁을 벌인 일이 없다는 것도 그런 희망적인 사고의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긴장을 고조시키는 방법으로 중국이 미사일 공격을 펼치거나 도서를 점령하거나 해상 봉쇄를 벌일 것으로 예상한다. 그러면서도 전면 침공으로까지 번지지는 않을 것으로 판단한다. 그런데 전쟁이 어디 생각대로 전개되는 것인가. 그리고 중국이 미국과 패권을 다투는 일보다는 경제력을 키우는 일에 더 역점을 둔다는 저자의 견해도 중국의 안하무인인 모습을 생각하면 수긍하기 어렵다.


저자는 강대국은 자신의 핵심 이익이 침해될 때 국제 규범에 구속받지 않는다고 말하고 국제 정치를 선악이나 옳고 그름의 문제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중국이 미국과 충돌은 어떻게든 피하려 들 것으로 해석하고 있는데, 이것은 서로 모순된 것은 아닌가? 물론 저자는 이 상황에 우리가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잘 생각해야 한다는 점을 말하려 했을 것이다. 대외 노선을 정리해 국민의 공감대를 얻어내고 그 노선을 일관되고 투명하게 유지해야 한다고 말이다. 그런데 그런 자세가 국제 규범에 구애받지 않는 강대국 사이에 끼어 있는 상황에서 얼마나 의미가 있는 일인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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