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들음과 걸음에 대해 생각한다

by 다정




두 달 전쯤, 한 저명한 여성 인사가 세상을 떠났다. 그의 이름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인권 변호사, 로스쿨 교수 시절에는 섹스(sex)라는 말 대신 젠더(gender)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 미국 역사상 두 번째로 임명된 여성 대법관. 여성이고, 엄마이자, 유대인이면서 '합법적' 차별에 맞서 싸웠던 사람.


그를 설명할 수 있는 단어가 많구나 멋지다 생각하다가, 그가 남기고 간 또렷하게 빛나는 것들을 되새기다가, 문득 내 할머니를 떠올린다. 긴즈버그가 연방대법관에 임명된 1993년 그해, 나의 '할머니'가 된 당신을. 곧 태어날 나에게 피아노를 사 주겠다며 열심히 돈을 모으던 당신을.



당신의 들음과 걸음에 대해 생각한다. 나이가 드는 것, 그에 따라 잘 듣지도 걷지도 못하게 되는 것은 인류에게 주어진 당연한 과정이겠지만, 오히려 너무나 보편적인 사실이라서 받아들일 때마다 언제나 슬픈 것일 테다.


당신은 잘 듣지 못한다. 보청기가 필요하지만 오른쪽 귀는 보청기도 소용 없어진 지 오래다. 당신과 대화하기 위해서는 당신의 왼쪽 귀에 보청기를 끼운 상태에서 당신에게 아주 가까이 다가간 후, 크지만 날카롭지 않은 목소리로 또박또박 이야기해야만 한다.


밤에는 보청기를 빼놓으시기에 때로 나는 메모장과 색연필을 들고 말을 건다.


'저녁 드셨어요?'

'과일 드릴까요?'

'티비 보실래요?'

'할머니 사랑해요.'


당신은 침침한 눈을 떠서 내가 쓴 글씨 위에 손가락을 얹어 따라 읽는다.


"저…녁 드…셨어요. 먹었지."

"과일… 드…릴까요. 아녀, 괜찮어. 생각두 없어."

"티…비…보… 실래…요. 어, 틀어줘. 여기 앉어. 같이 봐."

"할…머…니… 사…랑…해…요."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소리를 듣지도 못하면서, 자막을 속도에 맞춰 따라 읽지도 못하면서 맨날 "이루 와 앉어. 같이 티비 봐"라고 하는 당신. 사랑한다는 말엔 늘 부끄럽게 웃고 마는 당신.



건강하고 총기 있던 당신은 발가락 하나를 잘라내고 지팡이에 의존해 뒤뚱뒤뚱 걷다가, 그마저도 힘들어 보행 보조기에 몸을 의지하고 발을 끌며 걷다가, 다른 발가락까지 곪아 들며 결국 눕게 되었다. 가족들이 매일 번갈아 당신에게 간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찾아가지만, 당신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조금씩 죽음에 가까워진다. 하얗고 밝았던 당신의 빛은 조금씩 탁해져 노란색이 되었다가 이제는 갈색빛을 띤다.


어제 당신은 내 앞에서 자꾸 울었다. 할머니, 왜 울어? 하니까 이제 정말 죽을 것 같아서 그런다고 했다. 죽을 날만 남았어, 큰일이여, 한다. 지금보다 건강했던 작년에 당신이 넘어져 다쳤을 때 내게 말했다. "죽으려면 얼른 죽어야지. 이렇게 살려면 뭐 하러 사나 싶어. 얼른 죽어야지." 살아도 사는 게 아니라던 당신의 말이 내내 맴돌아 마음에서 헤엄을 치더니 이젠 죽을까 봐 무섭다는 말이 머물며 가슴을 찢는다. 살고 싶어 하는 당신 모습이 나는 죽음만큼 아프다.


목소리 톤을 한껏 높여 대답한다. 에이, 할머니. 무슨 소리야. 얼른 나아서 우리 같이 집에 가야지요. 이 짧은 말이 끝나기도 전에 목이 뻐근해진다. 뒤돌아 목구멍 뒤로 울음을 흘려보낸다. 당신이 덮은 이불을 온 마음을 담아 다독인다.



5년 전, 당신에게 내 방을 내어 주고 우리가 함께 살게 되었을 때를 기억한다. 늦은 밤 집에 돌아왔는데 당신의 방이 된 내 방에서 흥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방문을 열었다. 깜깜했다. 불을 켜니 이제 왔냐며 오늘은 일찍 왔다고 반가워하는 당신이 있었다.


책을 들고선 여기까지 읽다가 눈이 시려서 더 못 읽었다고 했다. 밥은 먹었느냐고 얼른 먹으라고도 했다. 잘하셨다고, 저녁은 먹었다고, 안녕히 주무시라고 답하고 불을 끄고 방문을 닫고 나왔다. 다시 흥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날 나는 당신의 노랫소리가 잦아들 때까지 방문 앞에 앉아 있었다. 당신의 부름과 나의 들음이 만났던 수많은 장면들이 그리움으로 남을 것이었다. 나만 보면 그때가 언제든 밥부터 먹으라고 하는 당신이, 돌아선 나의 등 뒤로 흥얼거림을 들려주는 당신이, 그리고 그걸 듣는 내가.



당신을 좋아하지 않았다. 오랫동안 떨어져 살아서 미울 일도 좋을 일도 없었지만 감정은 주로 싫은 쪽에 가까웠다. 내 엄마를 힘들게 했으니까. 아프게 했으니까. 그런데 그랬던 당신을 엄마는 수천 번 용서하고 수만 번 사랑한다. 엄마가 사랑하는 당신을 보다 보면 내가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없음을 알게 된다.


어쩌면 나는 꽤 오래전부터 당신을 사랑해 왔는지도 모르겠다. 자꾸 가빠지는 당신의 숨을, 느려지는 심장 박동을, 꺼져가는 삶을 붙잡고 싶다.


어떤 것들은 죽음 이후에 더 또렷한 빛을 낸다. 당신은 어떤 것을 남기고 갈까. 그것들은 남은 나를 얼마나 낭랑하게 비추어 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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