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는 세 개의 이야기를 품고 있는 사람.
1.
보고 싶진 않지만 쉽게 잊히진 않는 사람이 있어. 그 애의 생일에 나는 이렇게 말했어.
우리 더 깊어지자. 오래도록 서로를 품자. 서로에게 해 질 녘의 그림자가 되어 주자.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의 시간에도 자주 웃고 가끔 눈물지으며 살아내자. 그때마다 곁에서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사랑으로 있어 주자.
그리고 우리의 마지막 장면에 그 애는 내게 이렇게 말했지.
착한 너에게. 행복하기 위해 태어난 네게 너무 오래 슬픔을 주어 미안했어. 너는 늘 찬란했고, 나는 그저 함께였어. 찬란한 순간을 함께할 수 있게 해 줘서 고마워.
불행할 걸 알면서도 마음을 걸었어. 타오르는 불길에 뛰어드는 불나방 같았어. 그 애와 나는 너무 멀었고 달랐어. 절대 가까워질 수도 같은 곳을 볼 수도 없는 사람들이었지. 사랑하려고 부단히 노력했어. 사랑은 의지라는 말을 처절하게 깨달았던 시절이었어. 남은 건 타 버린 마음과 재가 되어버린 시간이었을까. 다시는 아프고 싶지 않아. 이렇게 겁쟁이가 되어 가는 건가. 어쩌면 어른이란 건 겁쟁이의 다른 말일지도 모르겠어.
2.
떠나고 싶지만 잃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어.
그 애에게 잘 보이고 싶어 안달이 났었어. 어떻게든 걔를 웃게 하려고 애썼어. 그 애가 웃으면 따라 웃었어. 그리고 날 웃게 할 때면 불안한 마음을 움켜쥐고 환하게 웃었어. 가까워지는 마음을 멈출 수 없어서 괜히 읊조렸어.
얘가 날 좋아하게 해 주세요. 그럴 수 없다면 나도 얘를 안 좋아하게 해 주세요.
조금도 손해 보고 싶지 않았어. 주는 마음만큼만 받고 싶었어. 아니, 주는 것보다 더 많이 받고 싶었어.
신은 야속했어. 받은 마음은 없는데 주는 마음은 자꾸 스스로 자라났어.
웃음이 좋고 농담이 좋고 손짓이 좋았어. 냄새가 좋고 눈동자가 좋았어. 목소리도 좋은데 이러다 전부가 좋아져 버리는 어느 날에 나는 별안간 와락 안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그 애가 내게 반해서 전부를 걸어주길 소망했어. 먼 곳에서의 하룻밤이 지날 때마다 그리움이 잔뜩 자라났어.
3.
오랜 기간 사랑해 온 사람이 있어. 보고 싶고 잊을 수 없고 잃고 싶지 않은 사람. 우리는 너무 같았고 가까웠어. 나의 미래에 그가, 그의 미래에 내가 없는 장면은 상상할 수 없었어. 어느 날 그는 이제 영원히 떠나가기로 다짐했다고 말했어.
누군가의 말을 떠올렸어. 너무 많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것은 고단한 일이라고, 사건과 격정으로 점철되기 쉽고 서로를 소진하다 못해 망가뜨릴 수 있다는 말을. 그러니까 우리의 헤어짐은 아주 잘된 일이었어. 그의 미래에 내가, 나의 미래에 그가 없어야 하는 거였어. 인연이 아니면 아무리 애써도 연결되지 않으니까, 살아가다 보면 더 좋은 날 올 테니까, 조급하지 않아도 되는 거야. 다음에 다가오는 마음을 더 씩씩하게 마주할 수 있을 테니까.
아무것도 진심이 아닌 말을 매일 변명처럼 내뱉곤 해.
가을이 지나가고 있어. 낙(落)의 계절이야. 낙화, 그리고 낙엽. 떨어지는 것들과 함께 지내는 이 시절에 불행은 매일 새롭게 꽃을 피우곤 해. 살아야 하는데. 나는 살아가야 하는데. 삶은 너무 어지럽고 또 지독해. 내일은 제발 눈을 뜨지 않게 해 달라고 신께 간절히 빌며 잠이 들지.
안녕. 나는 가을을 살아내는 사람.
잘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