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나 나대는 미친년

by 다정



초등학생 때 태권도 학원에 다녔다. 우리 학원에는 비공공연한 규칙 같은 게 있었는데, 수업 시작하기 30분 전에 미리 와서 같이 노는 거였다. 주로 축구나 줄넘기, 술래잡기처럼 뛰어노는 놀이들을 했다.


그날은 단체줄넘기를 하고 있었다. 내가 줄잡이를 할 때, 어떤 빨간띠 남자애 발이 계속 걸렸다. 그 애는 나에게 좀 천천히 돌리라며 짜증스럽게 소리를 질렀다. 나는 좀 쫄았지만 야, 네가 잘해야지! 하면서 계속 빠르게 돌렸다. 다들 줄넘기를 잘했기 때문에 줄을 점점 빠르게 돌리는 게 우리의 암묵적인 룰이었다. 그날따라 속도를 줄이지 않는 우리의 규칙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건지, 아니면 유독 내가 용서가 안 되었는지, 네 번째쯤 발이 걸리자 그 애는 내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Ⅹ발!”


뜬금없는 주먹질에 그대로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나는 이렇게 맞아 본 게 처음이라 일어나서 같이 싸워야 하는지 그냥 주저앉아 울어야 하는지도 몰랐다. 어쨌든 여기는 태권도 학원이고, 나는 검은띠고 쟤는 빨간띠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의지와 상관없이 눈물은 왈칵 쏟아졌지만 때리는 대로 맞고 울고만 있으면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심하게 날 것 같았다.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소리치고는 일어나는데 걔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리고 내가 제대로 일어나기도 전에 또 내 얼굴을 때렸다.


“야! 네가 검은띠면 단 줄 알지!”


머리가 텅 울리고 하늘이 반짝였다. 앞이 잘 보이지도 않았다. 속수무책의 주먹질에 그대로 고꾸라졌다. 이젠 자존심이고 나발이고 악을 쓰고 비틀거리며 일어나는데 또 하늘이 반짝였다.


“아, 진짜 미친년이 존나 나대!”


나는 키도 덩치도 작고 힘도 없는 여자애인 주제에 키도 덩치도 크고 힘도 센 그 빨간띠 남자애의 발을 자꾸 걸리게 했기 때문에 맞았다. 검은띠면 다인 줄 알아서 맞았고, 존나 나대는 미친년이라서 맞았다. 얼굴에, 주먹을, 세 대나.


그날 그 애를 처음 보았고, 단체줄넘기를 하려면 줄잡이는 두 명이 필요하고, 나 말고 다른 줄잡이는 걔랑 덩치가 비슷한 남자애였다는 사실을 인지하지도 못한 채로 말이다.


오른쪽 눈 아래에 멍이 잔뜩 들었다. 태권도에서 돌아온 내 얼굴을 본 엄마는 기겁했고 아빠는 분노했다. 바로 그다음 날 아빠가 태권도 학원으로 와서 그 애를 찾았다. 잔뜩 혼난 걔는 자기보다 키도 덩치도 크고 힘도 세 보이는 아빠에게 사과했다. 그리고는 아빠가 돌아가자마자 나를 째려봤다. 너무 무서워서 죽을 것만 같았다.



얼굴에 든 멍은 몇 주가 지나도 남아 있었다. 내 얼굴을 보는 사람들은 말했다.


“어머, 여자애가 얼굴이 왜 그러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여자애 얼굴을 이렇게 만들다니… 쯧쯧.”


걔가 잘못한 건 함부로 폭력을 썼기 때문이지 ‘여자애’ 얼굴을 때려서가 아닌데, 그 애의 행동은 아무리 그래도 그럴 수 없어야 하는 일인데, 멍투성이 내 얼굴은 여자애 얼굴이라서가 아니라 쉽게 휘두르는 폭력에 당한 약자의 얼굴이어서 안타까운 거고, 쯧쯧이 아니라 함께 분노했어야 하는 일인데. 모든 것이 이상하고 또 슬펐다.


나는 검은띠인데 빨간띠 하나 이기지 못하는 애였다. 내가 빨간띠 남자애한테 얻어맞았다는 사실을 아는 모두에게 들킨 사실이었다. 쪽팔렸지만 태권도를 더 열심히 배워서 언젠가 걔한테 복수해야겠다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내가 태권도를 잘하게 될수록 그 애를 열받게 할 것 같았다. 존나 나대는 미친년에서 존나존나 나대는 미친년으로 진화해서 나보다 키가 두 뼘은 더 큰 그 애한테 반드시 쥐어 터질 것 같았다. 그러니까, 나는, 두려웠다.



학교 친구들은 이 사실을 몰라서 다행이었다. 도복 입은 나를 보게 되면 여전히 우와 검은띠 멋지다 할 테니 걔네들 앞에서는 자랑스러워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때까지는.


얼굴의 멍이 거의 다 사라졌을 무렵, 태권도 학원에 가려고 도복을 갈아입고 집에서 나왔는데 같은 반 남자애를 마주쳤다.


“풉, 너는 여자애가 태권도 다니냐? 조폭마누라네.”


다음날 등교하자 남자애들은 전날 그 애처럼 낄낄거리며 나를 놀리기 시작했다.


“야, 쟤 깡패야! 태권도 다니던데? 어제 도복 입고 가는 거 봤다.”


놀림당할 때마다 기죽지 않고 뭐라고? 야 너 죽었어 일로 와! 소리치면서 가만 안 두겠다고 죽자 살자 쫓아다녀 댔지만 집에 돌아와서는 효정에게 볼멘소리를 했다.


“엄마, 왜 나한테 태권도를 배우게 했어? 차라리 발레 학원을 보내 주지 그랬어.”


태권도 학원에 보내 달라며 그렇게 떼를 쓴 건 일곱 살의 나였으면서 말이다.



열두 살의 나는 검은띠인 나를 자랑스러워하다가, 그런데도 빨간띠를 못 이기는 나를 부끄러워하다가, 주먹을 날렸던 그 남자애를 무서워하다가, 발레가 아닌 태권도 학원에 다니는 나를 쪽팔려했다. 그리고 열세 살이 되었을 때 태권도 학원을 그만두었다. 조금만 더 다녀서 4품을 따면 사범을 할 수 있으니 나중에 성인이 되어 태권도 학원에서 아르바이트도 할 수 있고 좋지 않겠느냐는 부모님과 관장님의 말은 들리지도 않았다. 그때는 안 나대는 것, 미친년이 안 되는 것, 조폭마누라가 안 되는 것만이 중요했다. 장난으로 조폭마누라라고 놀리는 남자애들이 태권도는 안 배웠을지 몰라도, 내가 너무 나대는 순간 검은띠면 다냐면서 때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냥 내가 태권도를 안 다니면 되는 거였다.



시간이 지나 중학생이 되었다. 태권도도 빨간띠 남자애도 다 잊고 짝사랑에 빠져 속앓이만 하고 있는 때였다. 급식실 앞에 줄 서 있으면서 친구한테, 나 너무 떨려 걔 마주치면 어떡하지 마주쳤으면 좋겠는데 나는 걔 못 보고 걔만 나 봤으면 좋겠다 나 지금 앞머리 괜찮아? 따위의 이상한 말을 하며 발을 구르고 있는데 그 빨간띠 애를 마주쳤다. 나를 때리고도 반성을 안 해서 학원에서 쫓겨난 이후로 한 번도 보지 못했다가 처음 마주친 거였다.


어떡하지. 전학 가야 하나. 그 애가 가까워질수록 심장이 동동거리다 못해 퉁퉁거렸다. 죄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가 다시 들었을 때 눈이 마주쳤는데 그 애는 빠르고 무심하게 나를 지나쳐갔다. 나는 그 애의 기억에서 없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냥 행인에 불과했다.


다행이면서도 열받았지만 미친년보다는 행인1이 나았다. 전학은 안 가도 될 테니까. 어느 순간 나를 그 미친년이라고 기억해 내면 또 맞을지도 모르니, 그 후로 학교에서 안 나대려고 최선을 다하는 학생이 되었다. 그게 뭔지도 모르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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