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s ta vie

by 다정



자존감 (self-worth)
자아존중감. 자신의 능력과 가치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와 태도.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대한 긍정. 스스로를 사랑받을 만한 소중한 존재로 여기며 어떤 일을 해낼 수 있다고 믿는 마음.



자존감이 높은 것과 자존심이 센 것은 아주 다른 것이라고 해.


나는 늘 나 자신을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어. 줏대도 없고 눈치도 많이 보고 항상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는 데다 내가 나인 걸 좋아하지 않았으니까. 나를 떠나는 이들을 온 마음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그들의 선택이 잘한 일이라고 결론 내리곤 했어. 그러면서도 아무도 그걸 알아채지 않았으면 했어. 그래서 되게 잘난 척하면서 살았어. 허세도 잔뜩 부리고, 강한 척 단단한 척하면서 말이지.


이런 나를 잘 아는 누군가가 말했어. 너의 자존감은 낮지 않다고.


내가 그래 보이느냐고,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었어.


자존감이 아니라 자족감이 없는 거라고. 자존감이 낮은 게 아니라 높은 자존감이 뒤틀린 거라고. 욕심이 많고 스스로에 대한 기대가 아주 커서 그걸 성취하지 못하는 자신에게 가혹한 잣대를 들이미는 거라고. 그런 답을 들었어.


정말 그런 걸까. 누군가가 나를 약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게 싫으니까 그 말이 오히려 듣기 좋았어.



돌이켜보니 그랬어. 나는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게 딱히 없어. 취향이 없다고 해야 할까. 어떤 음식이든 다 맛있고 어떤 장소든 다 예쁘고 어떤 하늘이든 다 아름다워. 누가 그러더라고. 나는 항상 다 좋고 예쁘고 귀엽다고 한다고. 늘 '좋아요 좋아요' 한다고. 근데 그러면서도, 예쁘다고 생각한 옷을 입고 갔는데 누가 그 옷 이상한 것 같다고 한마디만 해 버리면 다시는 그 옷을 입지 않아. 갖고 싶은 게 생겼는데 누가 그거 별로라고 하면 갑자기 모든 갈망이 사라지고 갖고 싶지 않아져. 내가 한 거 내가 가진 거 내가 결정한 건 다 별로고 나 아닌 모든 것들은 다 쉽게 좋았어.


나도 멋진 사람들처럼 '내 스타일'을 확고하게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으면 했어. 무턱대고 사람을 믿지 않는 똑똑한 사람이라 상처 받지 않고,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의 유형이 뚜렷해서 현명한 인간관계를 만들어 가는 사람이길 바랐어. 명확한 가치관을 갖고 있어서 의견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


현실을 사는 나와 내가 바라는 내가 너무 달랐던 거지.


내가 나인 것에 자신이 없었어. 내 재능은 타인을 실망시키는 일이었어. 그것만큼은 자신 있었지. 언젠가 기필코 누군가를 실망하게 만들 수 있었어. 이미 내가 나에게 잔뜩 실망한 상태로 살아가니까 그것쯤은 어려운 일도 아니었어.



그림자 안에 스스로 갇힌 채 살아가는 일이 고달프다고 느낄 즈음, 나 같은 애를 끊임없이 사랑해 주는 사람들은 말했어.


너를 잃고 싶지 않다고. 너는 네가 얼마나 사랑스러운 사람인지 모를 거라고. 나에게는 네가 너무 소중해서 네가 깨어 있는 시간 안에서 구름 둥둥의 감정을 더 많이 느끼며 살기를 바란다고. 저 사람에게는 네 영혼을 훼손시킬 자격이 없다고. 비뚤어진 사람이 네게 몰상식한 말을 내뱉는 건 이기적인 사람들이 흔히 저지르는 일들이라고.



이미 이런 나인데, 나는 어떤 나를 나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던 걸까. 그들에게 미안해지기까지 했어. 나를 사랑하는 그들을 위해서라도 나는 살아내야 했던 거야. 가능하다면 자주 웃고 열심히 걸으면서 말이야.



나는 어느 날, 사랑을 쉽게 포기하지 않는 고마운 이들에게 결국 이렇게 말하게 되었어.


―나는 더 나아질게. 네가 나에게 끝까지 보여 준 인내와 신뢰를 저버리지 않을게. 나는 처음으로 돌아간 마음으로, 다시 네 옆에 있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게 노력할게.


―엄마, 나는 꼭 행복해질게.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어리석다면 어리석은 대로 살아 보려고 해. 높아지지 않으려고 해. 그 대신 그런 나를 사랑해 보려고 해. 발 디딘 곳을 마음껏 누려 보려고 해. 이슬아 작가가 그의 글방 제자들에게 이야기했듯, 나는 자라서 최대한의 내가 될 테니까. 어느새 나도 모르게 기쁜 한 걸음 내디디고 있을 테니까. 그렇게 느리지만 분명 괜찮아질 테니까. 최대한의 나로 나아질 테니까.



그래서 오늘도 나에게 이야기해.

vis ta vie. 네 인생을 살아.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