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과 행복의 상관관계
늘 바쁘다. 해야 할 일도 신경 써야 하는 일도 많다.
산더미같이 쌓여 있는 일들은 하나둘씩 해 나가도 조금도 줄지 않는다. 해내는 속도와 양보다 더 빠르게 더 많이 다시 쌓여간다.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데 걸음마다 늪이다.
뭐가 그렇게 공사가 다망하셔서 월화수목금토일을 꽉꽉 채우고 있는 걸까. 숨이 턱 막힌다. 천 리 길은 여전해서 글을 쓰는 지금도 또 다른 써야 할 글과 읽어야 할 책과 만나야 하는 사람과 해내야 하는 일들이 기다리고 있다.
우선순위를 정해야 하는데 모두가 첫 번째 순위다. 어느 것 하나도 나중으로 미룰 수가 없다. 보통은 용기나 시간이 필요한 일들이다. 용기를 갖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하니까 결국은 다 시간이 필요한 거다.
해야 하지만 당장 안 하면 죽지는 않는 것-
자궁경부암 예방 주사, 독감 예방 주사 접종하기, 아픈 할머니 뵈러 가기, 충치 치료하기, 내시경 받기.
해야 하는 것 말고 하고 싶은 것-
사진첩 정리하기, 더 많은 쓰고 싶은 글 쓰기, 책상 구석의 편지들 버리기, 운동하기, 반주자님과 진솔이와 혜선이 만나기, 뮤지컬과 영화와 전시 보기, 서울의 예쁜 거리 걷기, 아늑한 북 카페에 들어가 아무것도 안 하고 온종일 책만 읽다 끝내 엉엉 울고 말기, 멀지 않은 거리에 사는 사촌 언니 집에 놀러 가 하룻밤 자고 오기, 얼마 전 아이를 가진 친한 언니 만나기.
나는 이런 것들을 하면서 지내고 싶다. 위시리스트를 하나씩 지워나가는 삶을 살고 싶다.
하고 싶은 건 많은데 해야 할 일들에 밀려 하나도 하지 못하는 일상은 답답할 수밖에 없다. 혼잣말이 늘어가고, 하루에 열 번은 한숨을 쉬고 한 번쯤은 눈물도 찔끔 흘린다. 이렇게 마음에 걸리는 부하가 크니 결국 어느 것 하나도 똑바로 해내지 못하고 어설프게 마무리하고 만다. 엉망진창, 난장판, 뒤죽박죽. 이것이 내 삶의 요약인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안다. 이것이 나의 용기와 능력과 리더십의 부재에서 파생되는 일임을.
욕심은 무엇이고 행복은 무엇일까. 당시에는 미처 깨닫지 못하지만 어떤 선택을 할 때 주위로부터 "너 그거 욕심이야"라는 말을 들을 때가 있었다. 욕심인 거 나도 아는데 다 해낼 수 있다고, 이 선택이 결국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줄 거라고 호언장담했었다.
이제는 의문을 품는다. 나의 강함과 욕심에 대해. 행복해지자고 시작했던 일들이, 강한 나는 해낼 수 있다고 다짐했던 일들이 '욕심'인가 생각한다. 생각보다 강하지 않을 수 있겠다고. 적당량 이상으로 꼼꼼한데, 그러면서도 물러터지고 우유부단하고 게을러서 어쩌면 남들보다도 더 적은 양의 일을 오랜 시간에 걸쳐서 해야 하는 사람일 수 있겠다고. 그러니까 이 모든 건 나의, 약함이고 욕심이었다고.
물론 행복하지 않은 순간만 있던 건 아니다. 행복했다. 그러긴 했다. 지나온 시절 속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랑을 했고 우정을 나눴다. 그 선택을 하지 않았더라면 만나지 못했을 이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저릿할 정도다. 많은 걸 느끼고 깨달았다. 몸으로 부딪히고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배우면서 한 걸음씩 어른이 되는 것 같아 뿌듯하기도 했다.
건강한 욕망은 꿈이고 희망이기 때문에 피어나는 꽃처럼 아름답다. 그러나 도가 지나치면 시든 꽃처럼 찬란함을 잃고 만다. 행복이라는 욕망이 욕심이라는 깨달음이 되어 돌아온 지금처럼.
뻔뻔함과 당당함이 분명하지 않아 배려심이 무너지고 열등감과 자존심의 차이가 분명하지 않아 자신감이 무너지듯, 욕심과 행복의 차이가 분명하지 않아 무너진 일상을 돌아본다. 누군가를 외롭게 만들었고 지치게 했으며 나 자신을 옭아맸던 시간을 바라본다. 내 삶에는 얼마나 밀도가 없었는가.
이제 그 욕심을 내려놓는다. 그것이 아니어도 나는 행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데 필요한 거라곤
단순하고 소박한 마음뿐이다.
- 니코스 카잔차키스 Nikos Kazantzak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