옳음과 친절함 중에 친절을 선택하라며

by 다정






청년들 선물로 1kg짜리 과일청 40개를 주문했다. 며칠 뒤 배송이 완료되었다는 알림을 받고 빨리 왔다며 좋아하고 있는데 집에 있던 동생에게 연락이 왔다. 대체 집 앞에 언니 이름으로 와 있는 이 박스들 뭐냐고, 공장이라도 차리냐고, 빨리 안으로 들여놓으라고. 그게 무슨 소리냐며 다시 주문 목록을 조회해 보는데 배송지가 우리 집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이럴 리가 없는데? 눈을 씻고 몇 번을 다시 봐도 똑같았다. 명백한 내 실수였다.


집으로 돌아와 박스를 들어 보니 꿈쩍도 안 했다. 40킬로짜리가 일곱 박스에 나뉘어 담겨 왔으니 한 박스당 6킬로는 나갈 거였다. 이걸 이고 지고 1.5킬로 떨어진 곳으로 가야 했다. 평소 같으면 산책 삼아 걸어갔을 거리인데, 지금 같은 상황으론 택도 없었다.


앱을 열어 택시를 불렀다. 한참 기다리니 아쉬운 알림음과 함께 배차 가능한 택시가 없다는 문구가 뜬다. 워낙 가까운 거리라 당연히 처음엔 기사분들이 잘 안 잡으시겠지 싶어 다시 호출 버튼을 눌렀다. 두 번, 세 번, 다섯 번, 열 번. 호출 누르는 횟수가 많아질수록 슬슬 너무한다 싶은 마음이 들었다. 열한 번째부터는 천 원을 더 얹어 주면 배차 성공률이 높은 택시를 탈 수 있다는 스마트 호출로만 택시를 불렀다. 하지만 어떤 택시도 와 주지 않았다.


열다섯 번, 스무 번, 서른 번…. 이제는 오기가 생겼다. 우리 동네에 택시가 얼마나 많이 다니는지 다 아는데 이렇게 계속 부르는데도 안 와 준다니, 아무리 가까운 거리를 불렀다고 해도 너무한 거 아닌가, 이 정도 거리를 택시로만 이동할 수 있는 사람도 분명 있는 거 아닌가, 해도 너무한 거 아닌가.


응답 없는 택시를 부른 지 오십 번째 정도가 되자 정말 안 되겠다 싶었다.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라 숨이 가쁘고 열이 났다. 박스를 아파트 현관 1층에 그대로 두고(1층까지 옮기는 데도 애먹었다) 택시 승강장으로 향했다. 우리 집에서 5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는 곳이었다. 거기에 택시가 한 대도 없다면 기사님들이 정말 바빠서 못 와 주신 거겠지, 하고 이해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갔다. 택시는 그곳에 세 대나 있었다. 맨 앞에 정차해 놓은 택시 앞으로 가서 기사님께 물었다.


기사님, 여기 언제 오셨어요? 돈 안 되는 가까운 거리는 아예 수락도 안 누르시고 돈 되는 먼 거리만 골라서 가시는 거예요? 그 마음 십분 이해는 하는데요, 그래도 사람이 이렇게 지금 40분 내내 한 장소에서 택시를 부르고 있으면 그만한 사정이 있구나 하고 와 주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택시 기사님들 자꾸 손님 골라 받으시는 거 예전부터 문제 돼서 기사도 여러 번 떴던 거 알고 있고, 그래도 이게 기사님들 생계랑 연관되어 있으니까 어쩔 수 없다는 것도 아는데요. 그래도 너무하신 거 아니에요? 심지어 제가 지금 여기까지 걸어오면서도 계속 호출했는데 끝까지 한 번을 수락 안 해 주시잖아요.


기사님은 우물쭈물하시더니 일단 타라고 했다. 아파트 1층에 버려둔 박스를 가지러 우선 집 쪽으로 가는데 기사님이 호출 알림이 안 왔다는 둥 이상한 핑계를 댔다. 그 말에 다시 호출을 눌러 지금 똑바로 보시라고 무슨 알림이 안 뜨냐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하시라고 반박했다. 기사님은 또 할 말을 잃고 우물쭈물했다.


집 앞에 도착해 박스를 택시 뒷좌석으로 옮겼다. 다 옮긴 후 앞자리에 올라타 원래 박스가 보내졌어야 하는 곳으로 출발했다. 가는 데 차로 5분밖에 안 걸리는 곳을 못 가서 지금까지 50분가량을 씨름했다니. 진짜 어이가 없어서 한숨만 푹푹 내쉬고 있는데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택시 못 잡을 것 같아서 데리러 가고 있다는 말. 일하는 중에 왜 또 여기까지 나를 태우러 나오는데…! 엄마한테 미안하고 이 상황이 어처구니가 없고 억울해서 눈물이 막 났다.


뜨거운 물이 찬물보다 더 빨리 얼듯 감정을 막 토해버리고 나니 금방 진정되었다. 사실 이 모든 건 배송지를 집으로 잘못 입력한 나 때문에 벌어진 게 아닌가. 내 탓으로 벌어진 일들 때문에 속상한 마음을 얹어 미워할 대상을 찾다가 내 옆에 계신 기사님이 딱 걸린 것이었다. (기사님이 보기에) 새파랗게 어린 고객이 막 훈계질 하는데도 잘 참고 가 주시는 기사님께 갑자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옳음과 친절함 중에 하나를 선택할 때 친절함을 선택하라는 엄마의 말이 떠올랐다. 누군가를 다시 안 볼 사이라고 단정 짓고 함부로 대하는 건 늘 내게 어떤 종류의 두려움을 안겨 준다는 사실도 상기됐다. 훌쩍대면서 기사님께 아까 뭐라고 해서 죄송하다고 했다. 아, 진짜 큰맘 먹고 사과했는데 기사님이 말했다.


“콜 부르면 되는 걸 아가씨는 콜비 그거 천 원 아끼자고 급하다면서 한 시간 내내 카카오 택시만 불렀어요?”

“기사님, 제가 (천 원 더 내는) 스마트 호출 불렀잖…”

“그거는 기사들한테 600원밖에 안 떨어져요. 400원은 수수료로 떼 가요. 그거 불러놓고 뭘….”


옳음과 친절함 중에 친절함을 먼저 선택하지 않았던 내 탓이려니 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쉬운 슬픔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