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 슬픔 (3)

저기 빛들은 여기 풀들을 모른다

by 다정


변하지 않는 세상에서 여전히 슬픈 채로 고민한다. 봄과 가을과 겨울에 기억해야 할 사람이 늘어간다. 가만히 있으라는 말로 물속에서 나오지 못한 아이들, 복숭아 같던 사람, 자신을 사랑하고 타인에게 바른 웃음을 주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 하얀 손수건 같던 사람.

거대한 슬픔이 몰려온다. 세상은 왜 이렇게 불합리한 일들로 가득 차 있는지, 우는 사람과 울리는 사람은 왜 따로 있는지, 어떤 말은 비수가 되어 누군가를 비수에 잠기게 할 수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왜 이토록 많은지, 원망도 탄식도 끝나지 않는다.

말투, 행동부터 심지어 내뱉었던 단어 하나까지 입방아에 오르내리던 사람들이었다. 마약 하는 거 아니냐고, 여기저기서 몸 함부로 굴리는 거 아니냐고,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냐고, 사람은 끼리끼리 만나서 어울리는 거라고, 호기심을 핑계로 한 온갖 조롱과 비아냥이 넘실거렸다. 그런 세상에서도 꿋꿋이 살아내던 사람이 더 이상 나와 같은 세상에 있지 않다는 속보가 떴을 때, 나의 세상은 또 한 번 가라앉았다. 모든 걸 멈추고 한 줄짜리 속보 기사 페이지에 머물며 5분마다 새로 고침을 눌렀다. 40분이 지나고 한 시간, 두 시간이 지나니 거짓이라 믿었던 일은 분명한 사실로 변했다.

나는 부끄러웠다. 조롱과 비아냥이 넘실거렸던 과거에 침묵했고 때로 동조했으니까. 그러나 나는 부끄럽지 않다. 어리석었던 과거를 부끄러워할 줄 알게 되었고, 더 이상 부끄럽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혐오와 폭력이 난무하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애쓰고 있으니까. 그럴수록 너 좀 유난스러운 것 같아, 너무 예민한 것 같아, 좀 편하게 사는 게 어때, 하는 말들이 내 세계에도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그런 세상에서 그들은 내게 위로이자 용기였던 사람이었다.

순간은 때로 영원처럼 남아 오래도록 머무른다. 그들은 세상을 바꾸겠다 선언하지 않았다. 무지한 이들에게 어리석다고 지적하지 않았다. 행동할 뿐이었다. 그들의 언어는 누군가의 미움을 샀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사랑과 위로와 용기로 남았다. 앞으로도 오래도록 짙고도 깊은 호흡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슬픔을 노래하던 한 시인은 물었다. '그러면 우리는 어디로 가지? 아직도 펄펄 살아 있는 우리는 이제 각자 어디로 가지?' 그러므로 오늘도 쓴다. 적어 내려가는 문장이 누군가에게 상처로 남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며, 그림자를 빼앗겨 누구나 아득한 혼자*가 될지라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덜 외롭기를 바라며.

하루에도 수십 번씩 세상은 슬픈 안녕들로 차오른다. 슬픔이 쉬이 찾아오는 세상에서 쉽지 않은 슬픔을 생각한다. 자, 우리 쉽게 슬프자. 자주 앓고 아프고 쓰라리자. 대신 가볍게 떠들지 말자. 무겁게 기억하자. 그리고 쉽게 무너지지 말자. 잊지 말자. 누군가의 슬픔을, 슬픈 안녕을.

2020년 10월 14일 故 최진리의 1주기,

2020년 11월 24일 故 구하라의 1주기를 추모하며.

*기형도, 「노을」,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솔 (1999)

- '쉬운 슬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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