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비를 좋아했던가, 단지 빗소리를 좋아했던가

by 다정



첫째 날. 울음의 기분. 정신을 놓고 절망 속에서 절망하다가 날 포기하게 만든 것에 미안하다가 후회하다가.


둘째 날. 슬픔의 기분. 눈을 뜨자마자 밀려오는 낯선 감정에 꿈인 줄 알았다가 꿈이 아님을 알고 위태로운 감정에 휩싸이고, 떠지지 않는 눈을 뜨고 일상을 살아내러 몸을 일으키고, 나를 빼고 모든 게 여전한 창밖 풍경에 몸을 떨다가, 일상이 아닌 오늘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하다가, 태연히 또 일상을 살다가, 웃고 떠들기도 하다가, 홀로 마주할 시간에서 도망치다가, 내 감정에 대해 고민하다가, 나의 이기적임에 치를 떨고, 이런 나를 여태 사랑한 당신에 놀라고 쫓기듯 잠이 든다.


이 새벽엔 얼마나 끔찍한 꿈을 꿨는지, 그때 그 칼로 나를 찔렀어야 한다고 생각해.


셋째 날. 모순의 기분. 선약이 있어서 감사하다가, 당신을 궁금해하다가 당신에게 고마워하고, 당신을 슬퍼한다. 그러다 생각하기 시작한다. 내가 바라는 재회는 정말로 괜찮을지, 이미 한 번 신뢰와 애정을 잃은 우리가 우리를 사랑 안에서 안식하게 할 수 있을지, 웃는 가운데 스멀스멀 피어나올 어떤 어두움들을 잘 외면할 수 있을지, 또 지지 않을 수 있을지. 그리고 나서 생각한다. 나는 당신에게 아무 말도 전할 수 없겠구나. 나를 다시 한번 더 사랑하는 수고를 해 달라고 말할 수 없겠구나. 당신의 무기력함과 희망 없음을 끝까지 사랑하지 못한 내가 다시 희망을 가져 달라고 부탁하는 것은 당신에게 할 짓이 아니구나.


넷째 날. 기다림의 기분. 마주침을 기대한다. 해야 할 일들을 하며, 밥을 맛있게 먹고, 웃고 농담을 한다. 일주일 전의 나처럼. 단지 불안하다. 나를 지지해 줄 이는 이제 세상에 없으니까.


다섯째 날. 그리움의 기분. 이유도 없이 터지는 눈물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하루. 어쩔 줄 몰라 허우적대다가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어 간다. 두 시가 넘고 세 시가 넘어도 기다리는 사람은 오질 않는데 기다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기다려도 되는 건지 고민하다가, 그립다는 생각 끝에 이것도 사랑인지 여러 번 되묻다가, 신이 있다면 아주 볼만한 광경이겠다며 빈정거린다. 당신이 그리운 걸까, 과거의 사랑이 그리운 걸까. 잠깐이라도 웃고 있는 모습을 당신에게는 보이면 안 된다는 생각에 최대한 불행한 마음과 표정으로 세상을 대하는 내가 가증스럽다. 모든 생각과 행동을 멈춘다. 어떤 추억도 들춰보지 않고 어떤 흔적도 거두지 않는다. 마주칠 것들을 감당할 용기가 없다. 당신을 찾을 수도 없다. 영원한 종지부가 그 입술에서 나올까 두렵다.


여섯째 날. 여행을 떠난 당신. 무엇을 떨쳐내고 싶었던 걸까. 나를 버리려 떠났겠지. 밀려오는 파도에 나는 놓아두고 당신만 돌아오겠지. 돌아오는 길 당신은 얼마나 고독할까. 내게 주어진 벌이 잔혹하다.


일곱째 날. 일주일이 되었다. 이렇게 한 달도 지나고 일 년도 십 년도 지나겠지. 혼자 있는 시간은 여전히 영원히 두렵다. 그전에는 생각나지 않았던 기억의 덩어리들이 순간순간 찾아와 나를 놀래키고 슬픔에 가둘 것이 가장 두렵다. 새로 시작할 모든 것이 불안하다. 당신은 나 빼고 모든 사람을 좋아하기로 했나 보다. 비가 온다. 당신은 비를 좋아했던가. 아니, 단지 빗소리를 좋아했던가. 나는 당신을 모른다. 그저 소망한다. 부디 행복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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