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기 싫은 날

by 다정



글을 쓰다 보면 마음이 자꾸 말랑해지는데 나는 그 과정을 좋아한다. 조금 굳어 있는 마음이 글을 쓰는 동안 어떤 상황을, 누군가를, 어느 시절의 나를 돌아보며 조금씩 물러지는 것이다. 푹신한 소파 같은 마음은 나를 아주 풍족하게 만들어 준다. 어떤 글감이든 다 써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럴 때마다 떠오르는 모든 걸 습관적으로 적어 내려가다 보니 메모장과 다이어리에는 늘 수많은 생각의 조각들이 떠돌아다닌다.


하지만 이미 마음이 말랑해져 있는 날에는 쓰는 일이 쉽지 않다. 그런 날의 나는 푹신한 소파보다 젖은 솜에 가깝다. 내가 지고 있는 내 인생을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버거워 다른 걸 더 흡수할 수도 그렇다고 내보낼 수도 없는 상태인 것이다. 주로 몸이 아프거나 기분이 좋지 않거나 다른 일들에 치여 너무 바쁘거나, 혹은 글을 쓰고 싶지 않은 마음인 경우다. 이때의 나는 글을 쓰지 않거나 쓰지 못한다.


아플 때, 몸이 아픈 현상을 잘 견디지 못하는 나는 주로 쓰러져 잔다. 깨어 있는 몸으로 아픔을 견디는 게 버겁기 때문이다. 회복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최선이기도 하다. 기분이 별로일 때도 잘 쓰지 못한다. 어떤 일이 벌어져서 기분이 어떤 '별로'라는 지점에 막 도착했을 때, 그때는 그 상황을 분석하고 기분을 감당하는 데에 온 시간이 할애된다.


바쁠 때도 마찬가지이다. 글을 쓰는 일은 내가 즐거워하며 하고 싶어 하는 일이지만, 우리의 삶은 하고 싶은 일보다는 주로 해야 하는 일을 하며 살도록 설계되어 있지 않은가. 나 또한 해야 하는 일을 선택해야 하는 때가 잦다. 이러할 때는 글을 쓸 수 있는 상황조차 만들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상황들에도 글을 써야 하는 날이 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선택하는 건 커닝이다. 이전에 적어 놓은 것들을 다시 펼쳐보는 것이다. 내가 이때 이런 생각을 했구나, 이런 단어를 떠올렸구나, 이때의 나는 이랬었구나 하며 글을 쓰면 아무것도 없는 백지에 커서만 깜빡이는 상황처럼 막막한 기분은 들지 않는다.


어떻게든 글을 쓰게는 된다. 그러나 가장 난감할 때가 있는데, 글을 쓰고 싶지 않을 때다. 떠오르는 글감이 있어도 이미 구상을 다 해 놓은 주제가 있어도, 쓰고 싶지 않으면 쓸 수가 없다.


왜 쓰기 싫은지 곰곰이 생각해 보면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건 열등감이 아닐까 한다. 와, 세상에 글 잘 쓰는 사람 너무 많아. 어떻게 이런 내용을 이렇게 잘 쓰지? 이 사람은 어떻게 살아왔길래 진부한 얘기를 이렇게 재밌게 쓰지? 이 세상의 모든 '글 잘 쓰는 이'에게 느끼는 질투심이 자격지심이 될 때, 내 글은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여전히 머릿속에서만 부유하게 된다. 가여운 내 활자들.


그럼에도 쓰는 일을 계속하고 싶은 이유는 딱 하나다. 쓰기 싫은 날보다 쓰고 싶은 날이 더 많기 때문에. 더 잘 쓰고 싶기 때문에. 쓰는 나와 읽는 이의 시선이 만나는 그 지점을 사랑하기 때문에. 오늘도 글 쓰기 싫은 날이었는데, 쓰기 싫다는 걸 쓰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이렇게도 글은 적힌다. 이것이 글을 사랑하는 또 다른 이유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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