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좋구나 너를 잊으러 가야지*

by 다정




떠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는데, 날이 좋을 때마다 당신을 잊으러 길을 나서는 사람이 되었다. 세상 곳곳 당신으로 가득 찬 장소들을 다른 기억으로 뒤덮으러 간다.


원치 않는 불면과 동거하던 시절, 돌멩이를 올려놓은 눈두덩이에서 진물이 줄줄 흘러나올 것 같은데도 눈이 감기지 않던 그 시절, 그리워하던 게 있었다. 당신이 모르는 나의 흔적 같은 거. 너무 만들고 싶었고 이제는 당신이 좀 알았으면 좋겠던 거.


태어나 처음으로 수면제를 먹고 잠을 기다리며, 점점 몽롱해지던 낯선 기분 속에서도 떠올렸다. 내가 전부 지워진 당신을, 네가 잊은 어떤 장면의 나를. 그 덕에 온몸 구석구석 습기가 찼다.


딱 한 번만 연락을 해 볼까. 이름을 불러 볼까. 꼭 우리 사이 같은 마침표 하나를 적어 보낼까. 하지만 그 흔한 애칭 하나가 없어서 당신을 부를 수조차 없었다. 우리는 공기 같았다.


한 번도 다정하지 않은 적 없던 당신의 다정하지 않은 모습을 보게 될까 두려웠다. 마음을 달래려고 미리 당신의 눈빛과 손짓을 수십 번 상상했다. 하지만 사실은 당신에게 내가, 당신이 내게 챙기거나 상할 자존심 같은 건 있지도 않다는 걸 잘 알았다. 당신이 어떤 모진 말을 던져도 그건 내가 세상에서 들어 본 어떤 말보다 둥그럴 것이고, 당신이 아무리 나에게 차갑게 대해도 그건 너무나 따뜻한 온도일 거라는 것도.


낙엽 밟는 것을 좋아하는 나로 나를 기억할 당신에게, 나는 낙엽으로 남겠지. 찬 바람에 바싹 말라 부스러지고 말겠지. 어느새 썩어 저 멀리 땅 밑으로 사라지고 말겠지. 언젠가 죽게 된다면, 꼭 당신 이름을 불러야지. 끝없이 되뇌는 그 이름 끝에, 당신이 서 있는 장면을 상상해야지.


다시 마주칠 땐 사랑하자고, 솔직하자고 약속했던 당신에게 나는 상처 받는 법조차 잊어버렸으니까.



*언니네 이발관, '애도' 中 / <홀로 있는 사람들>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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