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인석 Feb 23. 2021

왜 서점에서 프라모델을 팔까?

TEXTIST PROJECT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것 같지만, 생각해보면 갸우뚱한 점이 있다. 

 

 얼마전, 그러니깐 서점에서 겪은 절망에 대한 바로 그 글의 그 서점이다. 

 서점은 옛날 같지 않아서 책만 팔지 않는다. 그것 또한 바로 저 때의 서점에만 한정되는 일이 아니다. 어느 서점을 가도 요즘에는 책 이외의 다른 것들 -이를테면 사무용품이나 음반, 퍼즐, 프라모델 등-을 위해 적어도 1/3 정도의 공간이 할애된다. 

 서점에서 사무용품이나 만년필을 파는 것은 그리 이질적이지 않다. 뭐라고 딱 정형화해서 설명할 순 없지만 이해가 충분히 된다. 음반도 마찬가지다. 음악과 문자는 전혀 다른 분야 같지만 왠지 모르게 음반을 서점에서 파는 모양새가 이해는 된다. 

 퍼즐은 조금 애매하긴 하다. 하지만 서점에서 아동 서적 코너에 있는 유아용 교보재부터 퍼즐까지, 그리고 유아용 퍼즐에서 고난이도 퍼즐까지 따라가다 보면, 이해되긴 한다. 


 의문은 프라모델이다. 

 프라모델은 플라스틱모델의 줄임말이다. 건담류의 로봇이나 밀리터리 제품들의 축소된 모형을 직접 조립할 수 있게 만들어진 패키지다. 언젠가부터 서점의 구석에 프라모델들이 지분을 차지해가더니, 요즘 대형서점은 아예 프라모델 코너를 따로 마련해두고 있다. 그 현상이 좋거나 싫거나가 아니라, 어째서 다른 장난감들을 함께 왕창 팔지 않고 유독 프라모델(+레고 조금)일까 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래서 내 나름대로 억지논리를 붙여봤다. 


 서점에는 정말 많은 책들이 있다. 얇은 책은 100페이지 미만의 책부터, 두꺼운 책은 1000페이지가 우스울 정도의 책까지. 다양한 분야의 많은 책들은 각자의 색깔에 맞는 표지와 내용을 담고 책꽂이에 꽂힌다. 그런데 엄밀히 말하면 그것들은 책이 아니다. 아직 누구에게도 읽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냥 존재하는 여러 종이들 중 하나일 뿐이고, 종이에 빼곡히 여러 글과 그림이 담겨있을 뿐이다. 그 책들은 누군가의 손에 들어가 읽혔을 때, 비로소 값어치를 한다. 독자가 책을 대충 읽었을 수도 있고, 꼼꼼하게 읽어서 모든 내용을 체득했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안읽은 상태로 서점에 존재하는 그냥 '종이뭉치'에 비할 바가 아니다. 


 프라모델은 어떤가? 조각들이 플라스틱 판에 붙어있는 상태에선 그야말로 플라스틱 조각에 불과하다. 밟으면 아프고 그렇다고 그 상태로 어디 전시할 수도 없다. 물론 미개봉 새 제품을 구매하고 그대로 보관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프라모델의 재미는 '구매'에서 오는게 아니라 구매한 제품을 뜯고, 플라스틱 조각들을 뜯어서 조립하고 색칠하고 스티커를 붙이며 집중할 때, 그 행위에서 비로소 발생한다. 누군가는 손재주가 없어서, 집중력이 부족해서, 혹은 막상 사서 조립하는데 별로 재미가 없어서 완성된 프라모델의 상태가 별로일 수도 있다. 반면 또 누군가는 정말 땀이 나고 눈과 허리가 아플만큼 집중한 결과로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어쨌든 완성품의 상태가 좋건 나쁘건, 그냥 새제품의 상태로 종이상자 패키지 안에 들어있는 '플라스틱 조각들'에 비할 바가 아니다. 


 이렇게 생각하고보니 프라모델과 책은 거의 흡사하다. 책에 담긴 내용과 지혜는, 독자가 얼마나 책을 심취해서 읽었는지에 따라 머리와 마음에 남는다. 프라모델도 만든 사람이 얼마나 심혈을 기울이고 만들었는지에 따라 완성품이 남는다. 하지만 책도, 프라모델도 안 읽고 안 만들면 그냥 네모난 종이이거나 네모난 상자다. 


 사람들은 새 것을 좋아한다. 서점에서도 새 것만 판다. 그런데 내 것이 되면 헌 것이 된다. 새 것을 헌 것으로 만들어야만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 프라모델도, 책도 그렇다. 헌 것으로 만들어가는 과정, 내 것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을 거쳐야만 진정으로 의미가 생기는 공산품. 그래, 이 정도면 약간 억지스럽지만 서점에서 프라모델을 책과 같이 팔아도 되는 이유가 조금은 되지 않았을까? 

 '이 책/프라모델은 당신이 구매하고 헌 것으로 만들어야만 온전히 당신의 것이 되는 상품입니다.'


 그렇게 다소 억지스런 논리를 만들고나니, 집 책꽂이에 꽂혀 있는 덜  헌 책들도 더 헌 책으로 만들고 싶어진다.

작가의 이전글 절망의 서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