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IST PROJECT
강원도 고성은 행정구역의 절반이 북한에 속해있는 갈라진 땅이다. 높은 산지대이면서도 바다와 맞닿아 있기 때문에 도로 구성이 매우 단조롭다. 동해안으로 길게 뻗어있는 7번 국도는 고성군의 척추같은 역할이다.
지도에서 휴전선 근방 도시들을 보면 철원, 화천, 양구, 인제를 지나서 가장 동쪽의 고성을 만나게 된다. 여기서 휴전선의 모양은 기이하다. 흔히 좌우로 뻗어 있다고 생각했던 휴전선이 고성에서는 예외다. 좌우보다는 남북 느낌으로 휴전선이 쭉 북쪽으로 올라가있다.
한국전쟁은 3년의 장기전이었다. 하지만 전쟁 후반부 1년을 훌쩍 넘긴 기간동안 전선은 38선 인근에서 교착됐다. 하루 북쪽으로 전진하면 다음 하루는 남쪽으로 후퇴하는 1년 이상의 시간. 고성을 가로지르는 세로형의 휴전선은 이 교착상태에 죽어간 수 많은 무명의 헌신을 증명한다. 휴전선이 확정되기 직전까지도 남쪽의 군인들은 젖먹던 힘까지 빼내어 북쪽으로 전진했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북쪽의 이들은 남쪽으로 달려오며 총을 쏘고, 남쪽의 이들은 북쪽으로 달려가면서 총을 쏘는, 어떤 이성적인 판단이 아닌 본능적이고 무의식적인 움직임이 반복됐고 그 마무리가 기이한 휴전선의 형태로 남았다.
주요 국내 인터넷 플랫폼은 지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네이버나 카카오의 지도에서 거리뷰를 선택하면 일반인들이 볼 수 있는 범위가 파란색으로 표시된다. 민간인 통제구역 북쪽은 이 거리뷰가 표시되지 않는 한계선이다. 그래서 거리뷰로는 명파해수욕장이 있는 명파리 북쪽을 볼 수 없다. 이 선이 끊어지는 지점에 거리뷰 화살표를 찍어보면 군인들이 출입을 통제하는 통제소의 형상이 보인다. '형상이 보인다'라고 표현한 이유는 블러처리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휴전선 끄트머리에 간당간당 존재하고 있는 거리뷰를 보는 것만으로도 -그것이 꼭 고성이 아니더라도- 수없이 볼 수 있는 블러처리를 통해 한국이 간직한 아픔과 현실을 직시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민간인 통제구역 이북에 거주하고 있지 않아도, 여기를 통과하는 방법은 없지 않다. 가장 잘 알려진 방법은 통일전망대를 방문하는 것이다. 고성의 통일전망대는 휴전선과 불과 직선거리로 3~4km 가량 떨어져 있다. 민간인 통제선 안쪽에 위치하기 때문에 군인들이 지키고 있는 게이트를 통과해야 되고, 방문을 위해 몇가지 서류를 작성해야 한다. 과거에는 블랙박스 봉인과 트렁크 조사 등을 거쳐야 했다고 하지만, 현재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 이런 특수성 때문에 통일전망대를 방문하는 일 자체가 굉장히 이색적으로 느껴지지만, 막상 절차를 밟으면 그다지 까다롭지 않다. 이런 감정을 느끼는게 매우 모순적이다. 내 땅에 내가 들어가면서 '아니, 생각보다 가기 쉽네?'라는 생각이 든다니.
7번 국도를 타고 고성 군내를 가로질러 북쪽으로 쭉 올라가다보면 조금 소름끼치는 상황을 감지할 수 있다. 북쪽 방향으로 가면 갈수록 눈에 띌 정도로 사람과 건물, 차량이 점점 줄어드는 것이다. 이런 느낌은 도시에서 시골로 갈 때, 느껴지는 그것과는 확연히 다르다. '더 사람이 적은 곳으로 가고 있구나'라는 느낌이 아니라, '사람이 가면 안되는 곳으로 가고 있구나'정도의 느낌인 것.
그렇게 쭉 올라가다 보면 [통일전망대 출입차량은 이곳으로 들어가십시오]라는 플랫카드가 크게 보인다. 민통선 들어가기 전 오른쪽 길이다. 거기서 이런저런 출입절차를 거치고 나면 다시 원래 7번 국도로 나와 북쪽으로 올라간다. 민통선 게이트이르러 군인들에게 출입신고소에서 받은 서류와 확인증을 제시하면 차량 대시보드에 '통일전망대 관광차량'이라는 표시를 올려준다.
거의 다 온 것 같은 통일전망대는 통일전망대 출입신고소로부터 무려 8km 가량을 더 와야 한다.
정리하면, 통일전망대 출입신고소부터 통일전망대까지의 거리보다 통일전망대부터 휴전선까지의 거리가 훨씬 가까운 셈이다. 이 거리의 차이는 무섭다. 남북간의 괴리는 서로간의 완충지대를 만들기 위해 출입신고소부터 통일전망대까지의 8km만큼 엄청난 거리를 비워두게 했다.
통일전망대는 으스스할 정도로 아무것도 없는 -민통선 내부이기때문에 아무것도 없어야 하는- 공간에 혼자 우뚝 웅장하게 서있다. 북한에서도 어렵지 않게 보일 것이다. 이것이 북한의 사상 혼란에 얼마나 영향을 끼치는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통일전망대 내부에서 북쪽을 보았을 때 그 정도로 화려하고 웅장한 건물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다만 금강산이 조용하게 자리하고 있다.
여기까지의 긴 글을 아주 간략히 정리한다.
사람들이 어느정도 모여사는 고성 군내부터 우리의 발이 닿을 수 있는 가장 북쪽까지는 7번 국도가 뼈대처럼 자리한다. 통일전망대 출입 절차는 생각보다 단순하지만, 통일전망대까지의 거리는 생각보다 멀다.
통일전망대의 꼭대기 전망관람소에서 북쪽을 보면 가장 먼저 휴전선 남북으로 보이는 벌판이 눈에 띈다. 그리고 그 벌판 왼쪽 부분으로 기차길과 도로가 가로지르고 있다. 도로는 아마 금강산 육로관광때 쓰였을 도로라고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철로는 대한민국 최북단 역인 제진역에서 북쪽으로 뻗어있다. 물론 지금은 이용되지 않을 터. 하지만 무엇보다 눈에 띄었던 점은 휴전선 그 자체이다. 비록 3~4km의 거리가 떨어져 있긴 했지만 그 거리를 감안하더라도 생각보다 낮고 허술해 보였다. 휴전선이 절대적으로 허술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동안 '휴전선'이라는 단어가 주던 엄청난 무게감에 비해 글쎄, 다소 시시해 보였다고 해야 하려나. 콘크리트벽은 별다른 게 없었고, 동해바다와 닿아있는 휴전선 부분은 바다를 가로지르고 있진 않아서 이론상으로는 바닷물에 무릎 정도 담그고 건넌다면 휴전선의 통제없이 쉽게 오갈 수 있어 보였다. 물론 현실적으로는 그걸 제지하는 엄청난 장치들이 있겠지만.
휴전선 건너를 보면 초소가 눈에 띄지만, 사실 금강산의 웅대함이 이를 가린다. 저 곳이 금강산이구나, 라는 생각은 지금 계절엔(여름) 절경에 대한 감탄보다 그저 심연의 숲 정도로 느껴졌다. 숲의 색이 변하는 계절이면 조금 다르게 느껴지려나. 흔히 '금강산 찾아가자, 일만이천봉'으로 흥얼거리며 떠올리게 되는 금강산의 아름다움에 대한 감탄은 실물 앞에서 다소 누그러진다. 오히려 싸늘하고 추워보일 뿐이다. 이 한여름에도 말이다. 그렇게 허술하고 별거 없어 보이는 콘크리트벽 하나가 놓여있다는 이유만으로 금강산은 한국 절경의 상징이 아니라, 싸늘하고 닿을 수 없는 곳으로 인식되어 버렸다.
통일전망대 건물을 나오면 황망하다. 통일전망타워라고 명칭된 건물은 2018년 말에 완공되었다. 20세기의 분단을 21세기에 완공된 건물이 마주하게 한다. 화려하고 번쩍거리는 건물이 약간의 언덕배기 위에 그 어떤 사적 공간없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황망함을 더욱 본격적으로 가시화한다. 그러니까 통일전망대는, 그 전망대 자체의 의의보다 전망대가 세워져 있는 위치의 고요함, 왠지 모르게 유독 더 싸늘하고 깊어보이는 동해의 차가움, 여름은 분명하지만 이해되지 않을 정도로 추운 색깔을 띄고 있는 주변의 전체적인 전경 모두를 품었을 때 완성된다.
전망대 앞 광장에는 낡은 전투기와 장갑차가 쓸쓸히 전시되어 있다. 화려함이 품고있는 굴곡 깊은 어두움의 표현을 바로 이 두 대의 전쟁도구가 마침표로 찍어진다.
모순의 종합선물세트 같았던 통일전망대를 나와 차를 타고 돌아오면 다시 민간인 통제선의 게이트를 통과하여 남쪽으로 달리게 된다. 군인들은 경례를 하고 차에 비치해 두었던 '통일전망대 방문차량'이라는 큰 표지를 거둬간다. 그렇게 남쪽으로 점점 더 갈수록 다시 휴전선과 멀어져 비로소 일반적인 도로의 풍경이 양 옆으로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