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의 모순

TEXTIST PROJECT

by 서인석

1.

언제부턴가 카페라는 공간을 좋아하게 됐다. 나는 주로 카페에서 글을 쓰거나, 책을 읽거나, 서핑을 하거나, 멍하니 있거나, 어쨌든 무언가를 하거나 안하거나 하며 존재한다.


카페가 집보다 집중이 더 잘되거나 하는건 아니다. 하지만 집에서 뭔가 할 때는 청소기나 세탁기를 돌릴까 고민한다거나, 냉장고에는 뭐가 있을까 궁금해 한다거나, 옷을 좀 개어놓으면 깔끔할지를 판단하거나, 하다못해 한 10분만 게임하고 할까 등의 선택지가 수십가지 생겨버린다. 하지만 카페에서는 펜과 종이, 노트북에만 집중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도 카페라는 공간을 좋아하는 이유를 5할 정도밖에 설명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카페에서 이런 일들을 처리하는 경우만큼이나 위에서 언급한 여가를 즐기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2.

일단 카페에는 커피향이 기본으로 깔린다. 동네에 내가 좋아하는 카페가 새로 생긴지 1년 정도 되었는데, 여기는 공간이 넓은 편은 아니다. 이런 카페들은 향이라는 측면에서 큰 장점이다. 화학적으로 좁은 공간일수록 냄새의 농도는 더 짙기 때문이다. 애초에 원두부터 신경써서 고르는 카페다보니 공간의 냄새 자체가 마성을 갖고 있다.


후각적인 카페의 매력과 연달아서 주는 자극이 시각이다. 카페의 어떤 자리에 앉으면 공간 내부가 보이고, 또 어떤 자리에 앉으면 창에 걸쳐있는 외부가 보인다. 창은 어떤 그림보다 아름다운 작품이다. 카페 내부가 보이는 자리에서는 그 안에 존재하는 모든 이들의 움직임이 눈이라는 프레임 속에 그림으로 담긴다. 덕분에 어느 자리에 앉든, 카페에서는 좋은 냄새를 맡으며 뭔가를 편안히 볼 수 있다.


음악이 틀어져 있지 않은 카페는 없다. 카페의 음악 선곡이 어떤 알고리즘에 의해 이루어지는지 나는 알 수 없다. 어떤 곳은 멜론 Top100을 틀어놓기도 하고, 어떤 곳은 분위기 있는 팝을 틀어놓기도 한다.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캐롤을 틀어놓는 곳도 많다. 어쨌든 카페에서 재생되는 음악은 평상시 개개인의 귀에 꽂혀있는 음악과는 다르다. 그래서 카페에 머무르는 이들은 특정 공간에서 일방적으로 제공해주는 음악을 받아들여야 한다. 아주 예민한 사람이 아닌 이상, 이 음악은 카페의 향과 풍경이 함께 제공하는 패키지로 느끼게 된다.


카페의 음료, 커피의 맛에 대한 이야기는 이전에 쓴 적 있는 '최고의 커피'라는 글에서 주구장창 늘어놓은 바 있으니 굳이 얘기하지 않겠다.


3.

카페에서 내가 주로 즐기는 분위기는 '조용함'이다. 이는 '침묵'과는 다르다. 카페의 음악은 시끄럽지 않고 조용하다. 카페의 풍경과 향도 조용함을 기반으로 둔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서인석은 모든 카페를 좋아한다'라는 명제는 틀렸다. 특유의 핫플레이스화된 카페일 수록 사람이 많고, '사람이 존재'만 할 때 남아있던 조용함이라는 가치는 사라진다. 그리고 시끌벅적한 그 카페 나름의 새로운 분위기와 색깔을 구축하게 된다. 나는 그 시끌벅적함을 굳이 카페에서 느끼고 싶진 않다.


최근에는 주말 아침시간에 집에서 걸어서 10분 조금 넘게 걸리는 거리의 스타벅스를 간다. 일단 일찍 일어나서 상쾌하다는 느낌을 품고 있고, 성내천을 따라서 걸어가면 산책하는 느낌도 난다. 그리고 주말 그 시간에는 사람이 별로 없다! 조용함을 '아직' 품고있는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괜찮은 자리를 잡고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고 있으면 시간가는 줄 모를 정도로 집중할 수 있다. 그리고 정오를 지날 때쯤이면 나는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난다. 이 무렵부터는 언제 그랬냐는듯 사람이 많아지기 시작한다. 대한민국 대부분의 스타벅스들이 그러하듯, 이 곳도 '북적북적한 스타벅스'의 역할을 이 시간대부터는 충분히 수행한다. 나는 이때 가방을 들고 집으로 돌아온다.


홍천에서 생활할 때는, 카페 몇군데를 마음 속으로 픽해두었었다. 그리고 찾아가기 조금 불편한 거리라도, 일부러 그 곳에서 머물렀다. 이들을 골라둔 가장 큰 이유는 조용하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몇달 카페를 다니다보면 카페는 문을 닫는다. 다시 다른 조용한 카페를 발굴해서 몇달 다니면 또 금세 문을 닫는다. 카페의 역설이다.

내가 좋아하는 카페는 조용한 카페다. 카페가 조용하다는 건 고객이 그만큼 적다는 의미다. 고객이 적으면 카페는 매출과 이익을 발생시킬 수 없다. 카페의 유지가 어려워지면 문을 닫는다. 그래서 나는 내가 좋아하는 카페에 고객이 많기를 바라야 하는데, 그러면 카페가 조용하지 않기 때문에 그 카페를 온전히 좋아할 수 없게 된다.


여기에 몇가지 조건들을 대입하면 '조용하면서도 오래 다닐 수 있는 카페'가 될 수도 있다. 가령, '내가 갈 때만' 손님이 없다거나, 카페 사장이 건물의 주인이고 놀기 뭐해서 열어둔 카페이거나 하는 그런 조건들이다. 하지만 어쨌든 내가 카페에 가는 시간도 다른 많은 이들이 카페에 가고자 하는 시간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카페의 모순'에서는 배제된다. 위에서 이야기한 스타벅스의 경우도, 스타벅스의 특성상 다른 카페들에 비해 상당히 이른 시간에 문을 열기 때문에 '조용함'을 느낄 수 있는게 가능하다.


4.

글 초입부에서 이야기한 카페는 이미 커피 맛으로 끝장을 보는 곳이다. 그래서 재택근무때마다 훌륭한 테이크 아웃 커피를 사올 수 있다. 하지만 오픈 초창기에는 카페 안에서도 자주 머물렀다. '조용함'이 지금보다 더 넉넉했기 때문이다. 요즘은 그 카페에서 커피를 자주 사오긴 하지만, 카페 안에서 무언가를 잘 하진 않는다. 커피맛이나 위치, 세련된 분위기, 넓은 창, 사장 부부 내외의 친절함 등등의 이유로 카페의 고객은 매우 늘었고 단골도 많아 보인다. 덕분에 내가 좋아하는 이 공간 근처를 지나갈 때면, 대부분 손님들이 북적북적하다. 이제 혼자서 저 인기있는 공간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있기에는 미안할 정도가 된 것이다.


조용한 공간에서 커피향과 눈에 들어오는 풍경과 카페의 음악을 마음껏 즐기고 싶다는 생각은, 세상 물정 모르는 한 개인의 이기적인 생각이겠다. 어쨌든 그 공간들의 가치를 나 말고도 다른 많은 이들이 인정해준다는 점에 도리어 뿌듯해야 맞을 것이다. 그래서 카페의 모순은 그저 모순일 뿐이다. 아쉬움과 별개로 커피는 맛있고 카페에서 보는 창 밖은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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