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의 이임

TEXTIST PROJECT

by 서인석

가톨릭에는 특이한 규칙이 있다(이것이 한국 가톨릭만의 규칙인지는 모르겠다). 바로 주기적으로 사제(신부)들이 떠난다는 것이다. 보통 주임신부는 5년 안팎, 부주임신부는 2년 안팎을 한 성당에서 보낸 후 다른 성당으로 떠나게 된다. 같은 신을 믿는 개신교에서 '개척교회'라는 말이 있는 것과는 매우 다르다.

성당에서 신부의 역할은 지대하다. 신부는 성당의 목자이면서도 최고 경영자이다. 교장 선생님이기도 하고, 인사담당자이기도 하다. 아버지이자 어머니이며, 심리 상담가이자 CFO 역할도 겸한다. 한 성당에 신부가 여러 명 있다면 이 역할은 나눠지겠지만, 대부분의 성당에는 신부가 많아야 2명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부가 이임하는 문화는 비효율적이다. 이토록 다양한 신앙적 역할과 책임, 그 성당만의 문화와 분위기까지 이해하고 스스로의 역할을 유연하게 해낼 수 있을 때 즈음이면 떠나버리게 되는 셈이다. 그러면 또 다른 신부가 새로 부임해 온 후 성당의 분위기를 익히고 그 성당의 사람들과 문화, 신앙적인 지향점, 재무적인 문제 등등을 하나하나 다시 익히고 실행해야 한다.


가톨릭은 역사적으로 많은 병폐를 남겨왔다. 이게 아주 먼 과거의 일이 아니라 불과 100여년 전까지도 유효했다. 가톨릭이 철저히 바티칸과 교리에 순종하고 시스템의 보수성을 강력히 유지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그동안 저질렀던 여러 해악들을, 더이상은 역사책에 남기지 않기 위한 발버둥의 한 종류라고 생각한다. 빡빡할 정도의 규범과 교리로 스스로를 얽매어 놓지 않으면, 언제라도 가톨릭은 다시 면죄부를 팔 수도 있고 십자군 전쟁을 일으킬지도 모른다고 항상 경계하는 것 같다.

주기적으로 신부들이 인사이동하는 것도 마찬가지의 이유이다. 과거 제정일치 사회에서 신앙의 힘은 대단했다. 봉건영주들과 사제들은 그들끼리의 강력한 연결고리를 구축하고 부와 명예를 공유했다. 신부가 한 지역에서 수십년씩 신앙적 지도자 역할을 하다보니 어떤 공적인 조직보다도 영향력이 강할 수 있었다. 지금 각 성당의 신부님들은 '이제서야 정이 좀 들었네' 싶을, 딱 그 정도의 시기가 되면 떠난다. 성당을 중심으로 어떤 지역에서 신부들이 힘을 발휘하고 어쩌고 할 기회조차 없다.


지금 다니고 있는 성당은 결혼 즈음부터 오게 됐다. 성당에서 별개의 활동을 열심히 한 것도 아닌데, 그래도 몇 년 간 이 성당에 교적을 담고 있다보니 대소사의 기억이 이 성당에 남아있다. 특히 이 성당의 부주임 신부께 혼배성사를 받았고, 새로 차를 구매했을 때도 그 신부님께 축복을 받았다.

그 신부님이 최근에 다른 부임지로 이동하게 됐다. 내가 이 성당으로 발걸음을 한 게 약 3년 정도 되었으니, '갈 때 되어서 간' 셈이다. 그 신부님의 마지막 미사에서 유독 신부님은 경건한 모습을 보였고, 아쉬움과 슬픔을 참아내는게 보였다.

미사가 끝나고 아내와 함께 신부님께 인사를 드리러 갔다. 우리에게 신부는 한 명이지만, 신부에게 신자들은 여럿이다보니 우리를 기억할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신부님은 우리를 기억하고 있었고, "성가정을 이루시라"는 인사를 남겼다. 한번도 가까이서 본 적 없는 사제의 눈에는 아쉬움과 슬픔의 눈물이 고여있었다.


가톨릭은 굉장히 조심스러운 종교다. 스스로를 옥죔으로서 과거의 역사적 죄악들에 반성하려 하고, 미래에 쓰여질 역사에 더이상 잘못을 업데이트 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신앙과 교리를 떠나서 시스템의 단단함을 통해 끊임없이 자정하려는 가톨릭의 시스템에 종종 감탄한다.

그렇기에 떠나는 신부를 붙잡을 수 없고, 새로 오는 신부를 맞이할 수 있다. 하지만 이건 시스템을 존중한다는 부분에서의 이야기다.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신부가 떠날 때 아쉽다. 슬프다. 글쎄, 나는 이런 아쉬움과 슬픔도 인간이기에 감내해야 한다고는 받아들이고 있다. 그래도 슬픈 건 슬픈 거다. 그리운 건 그리운 거다. 가톨릭 신자들은 그렇게 자신들을 이끄는 목자들과 수년에 한번씩 꼭 이별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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