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IST PROJECT

by 서인석

전쟁은 가늠할 수 없는 모순만으로 쌓여진 탑. 탑의 원료는 피와 뼈, 눈물이다. 전쟁을 결정한 자는 결코 전장 한가운데 있는 법이 없고, 결정자를 추종하는 자들 또한 안전한 곳에서 전쟁의 필수불가결함을 침튀기며 설명한다.


전쟁의 모순은 일으킨 자에게만 해당되는게 아니다. 전쟁을 바라보는 자 또한 고결한척 정치적일 뿐이다. 러시아는 2022년 카타르월드컵에서 퇴출됐다. 하지만 2003년 이라크에서 전쟁을 일으킨 미국은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 당당히 출전했고 메달 순위 1위를 차지했다. 인정받는 전쟁과 인정못받는 전쟁은 사람의 목숨과는 아무 관계가 없고, 전쟁이 얼마나 길고 짧게 진행되는지와도 상관없다.


제3자들은 자신에게 득이되냐 해가 되느냐에 따라 그 전쟁의 당위성을 판단한다. '평화'나 '인류애'라는 단어는 민망하고 초라하다. 내 편이 일으킨 전쟁이면 평화와 정의를 위한 전쟁이다. 남의 편이 일으킨 전쟁이면 인류애를 위협하는 극악무도한 살상이다.


세계 질서의 헤게모니를 가진 자들은 결코 "모든 전쟁은 일어나선 안된다."라고 선언하지 않는다. 힘있는 자들은 선언하지 않음으로서 스스로의 보험을 보유한다. 그 보험은 그들도 필요할때면 언제라도 전쟁 시작 버튼을 누를 수 있다는 암묵적 합의다. 전쟁은 패권국의 힘을 확인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그리고 니편 내편을 재확인하는 가장 공신력있는 창구다. 패권국들에게 전쟁은 고작 경조사 정도의 행위일 뿐이다. 내가 개최한 경조사에 누가 왔는지, 축의금을 얼마나 냈는지, 사진찍을때 어디에 서있었는지 확인하는 시간이다. 물론 경조사는 큰 행위다. 하지만 패권국들에게 경조사는 '그 정도는 충분히 값을 치를 수 있는 행사' 정도다.


백번 양보해서, 충분히 일으킬만한 명분이 있는 전쟁이라고 해도, 누군가는 죽는다. 대부분의 경우 그 죽음의 대상자는 처음에 말했듯 전쟁 결정자와는 무관한 사람이다. 결정자 본인이나 친족이 전쟁 최선단에서 총알이나 미사일이나 폭탄을 맞고 죽는 경우는 없다. 드물게 있다손 치더라도 세상의 주목을 받고 영웅이 된다. 그런 죽음은 사소한 죽음들과는 다른 대우를 받곤 한다. 20세기 최고의 악마조차 피해자 누구에게도 자신을 찢을 기회를 주지 않고, 안전한 곳에 숨어서 제 스스로 자신의 총으로 제 목숨의 향방을 결정했다. 멋들어진 유언과 함께.



러시아에 동원령이 내려졌다. 미래의 세상을 꿈꾸고 희망할 세대들은 하루하루의 생존을 걱정해야 한다. 눈 앞에 보이는 타국가의 생명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살상할지 배워야 한다. 러시아는 과연 강한 나라인가.


모든 전쟁은 일어나선 안된다. 총칼로 누군가를 찔러대지 않아도 이미 세상은 총성없는 전쟁터다. 전쟁의 결정권자들은 자신이나 자신의 자식을 전쟁터에서 피하게 할거라면 쎈척해선 안되고 부끄러운줄 알아야 한다. 인간이라면 말이다. 카메라와 마이크 앞에서서 수사어구로 점철된 문장을 내뱉는 행위가, 얼마나 무지몽매하고 파렴치한 짓인지 스스로 인지해야 한다. 적어도 호전적이려면 기여한 경험이나 책임 정도는 있어야 마땅하다. 치킨호크라는 말이 괜히 있는게 아니다. 부끄러워라.


전쟁을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모든 무장을 해제하자는 말 또한 꿈 속에서 허우적대는 논리다. 치킨호크만큼이나 부끄러워라. 그 누구와 대적하더라도, 아무리 강한 상대라고 하더라도 결정적인 상해를 입힐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갖추는 것이 전쟁을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우크라이나가 대한민국 정도의 국방력만 갖추었더라도 러시아는 쉽사리 전쟁을 결정하지 못했을터다.


모든 전쟁은 일어나선 안된다. 하지만 결국 전쟁을 결정한 자들은 그 판단이 옳았든 아니든, 판단 당시에는 이길거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방아쇠를 당겼을테다. 그 판단 자체를 갖지 못하게 할 준비는 언제나 되어있어야 한다. 그것을 우리는 국방이라고 일컫는다.



전쟁이라는 단어 하나에서 수 많은 모순과 무의미가 불필요하게 나열된다. 두 나라에서는 도합 이만오천명 이상이 죽었고, 오만칠천명 이상이 다쳤다. 이유에 대해 설명하는 자들은 벙커에 있고, 죽은 이만오천명과 다친 오만칠천명은 벙커밖에 있었기 때문에 죽고 다쳤을 테다. 그들이 숨을 거두는 순간에, 벙커 안에서 침튀기며 멋들어지게 설명된 명분과 이유를 떠올리며 행복하게 눈을 감았을지, 나는 도무지 상상되지 않는다. 다각적으로 분석된 국가의 흥망 논리보다, 엄마와 아빠, 아내와 아들 딸을 떠올리며 외로이 아프게 다른 세상으로 떠나갔으리라.


그저 나처럼 나약하고 비열한 인간은 세태에 대해 어떤 것도 바꿀 능력이 없는 대신, 이 땅에서, 내 주변에서 전쟁이라는 모순된 행위가 일어나지 않기만을 바랄 수 밖에 없다. 월급의 앞자리를 바꿔가며 뭉텅뭉텅 잘라내어지는 세금이, 이 나라를 겨눈 총칼보다 훨씬 더 강한 방패로 알차게 쓰이고 있기를 감시하는 수 밖에 없다.


누군가는 주식을, 누군가는 유가를, 누군가는 원자재를, 누군가는 물류를 걱정하며 계산기를 빠르게 누르고 있다. 그 계산기에서 드러나는 숫자는 이미 사라져버린 이만 몇천명의 목숨과 오만 몇천명의 아픔은 집계되지 않았다.


여전히 왜에 대해서 누구도 설명하지 못한다. 그저 부끄러울 자들은 부끄러운 것을 인지하길, 멍청한 자들은 멍청함을 인지하길 기원하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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