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열려있는 어떤 집

TEXTIST PROJECT

by 서인석

"우리 집에 오셨어요?"

경상북도 의성군 시골마을의 어떤 집 담 너머로 한 노인과 눈이 마주쳤다. 노인은 낡은 밀짚모자를 쓴채 마당의 밭에 호수로 물을 주고 있었다. 숨이 넘어갈 듯 껄껄껄 웃는 해맑은 노인은 인자하다못해 아이같은 표정이다. 똑같이 환하게 웃으며 인사하게 된다. 노인은 들어오라고 했다. 그러나 문을 열어주진 않았다. 낮은 담과 연결된 흰색의 작은 대문은 이미 활짝 열려 있었기 때문이다. 가슴팍보다 낮은 높이의 대문 옆에 '두봉 천주교회'라는 작은 명패가 달려있다.


만93세의 두봉 레나도 신부는 1954년 처음 한국에 왔다. 전쟁 직후의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다. 프랑스인인 그는 해외 선교를 나가기로 결심하고 한국행이 결정되었을 때,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나라에 오게 됨을 기쁘게 생각했다. 천주교 안동교구 초대 교구장을 맡게 되고 주교가 된 후 농촌의 발전을 위해 전력을 다했다. 특히 권위주의 시대에 핍박받는 약자였던 농민을 보살폈다.


그저 '두봉 천주교회' 모습만 구경하고 떠나려 했다. 집의 주인까지 만날 거라는 생각을 하고 찾아간 게 아니었다. 그야말로 무작정 가본 것. 노인은 처음 본 청년을 환대했고, 집 안으로 안내했다. 커피와 다과를 내오는 할아버지가 교구장을 역임한 주교라는 사실이 쉽게 상상되지 않았다.

내 나이가 만34세. 그리고 내가 성당을 다닌 기간이 34년이다. 천주교의 문화와 전통에 익숙한 내게, '주교'는 쉽게 말해 '무지 높은 사람'이다. '밀짚모자를 쓰고 파와 감자와 토마토가 자라는 작은 텃밭에 물을 주고 있는 사람'에 연결되지 않는다. 신부님이 안내한 낡은 소파에 앉으면서도 '이렇게 불쑥 들어와도 되나' 싶었다. 또 말하지만, 나는 정말 그저 밖에서 건물만이라도 슬쩍 구경하고 가려던 참이었다.


'두봉 천주교회'는 사실 두봉 레나도 신부의 '자택'이다. 은퇴한 원로 사제에게 "고향으로 돌아와 달라"며 안동교구에서 거처로 마련해 준 곳이다. 이 표현은 꽤 재밌다. '고향'이라니. 교구가 신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리고 신부가 안동교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 수 있다. 성당이 곧 자신의 집이고, 집이 곧 성당이라고 생각한 신부는 자신을 위해 마련된 집에 '두봉 천주교회'라는 명패를 달았다. 그리하여 작고 외진 시골마을에는 조그마한 성당이 생겼다.


신부께서는 끊임없이 "너무 잘 오셨습니다." "환영해요."를 연발했다. 계획에 없었던 손님을 맞이하는 게 불편하진 않았을까. 노인은 그새 밀짚모자와 밭일 옷 대신 셔츠와 바지 차림이다. 커피를 마실 수 있게 물을 끓여 주셨고 다과 쟁반을 내오셨다. 그리고 쿠크다스 몇 개를 아예 까서 내 앞에 놔주셨다.

30분이 넘지 않는 길지 않은 대화. 우리는 행복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치 고해성사 같았던 대화를 모두 옮길 순 없지만, 대화 내용과 상관없이 신부와의 자리 자체가 할머니집 장판마냥 따뜻했다. 연신 숨이 넘어가는 웃음과 아이같은 미소를 보인 노인은, 수백 페이지의 교리서나 성경에서 담고있는 '이웃'과 '사랑'의 본질을 표정만으로 몇초만에 알려주었다.


두봉 신부는 몇몇 방송에서 본인의 삶을 덤덤히 알린 적이 있다. 농사짓는 노인과 천주교 고위직의 사제라는, 관계없어 보이는 두 개념이 두봉 신부의 삶에서 완벽히 중첩되어 있었다. 자료로 남아있는 두봉 신부의 노력과 성과, 한국 사회와 약자에 대한 기여는 높고 대단해 보였지만, 그는 그저 이웃을 사랑했을 뿐이고 나눔으로 완전한 행복에 이르렀을 뿐이라는 걸 "우리 집에 오셨어요?"라고 물어온 웃음담긴 환영 한마디로 흠뻑 느낄 수 있었다.


짧지만 영원처럼 깊었던 순간을 뒤로하고 노인의 배웅을 받으며 운전석에 몸을 실었다. 노인은 웃으며 무작정 찾아온 초면의 청년에게 손을 흔든다. 한국에서 태어난 그 청년보다 몇 배는 더 많은 김치와 된장찌개를 드셨을 프랑스 출생자다.

따뜻해진 영혼을 보듬으며 저릿한 마음으로 차를 몰다가 문득 '우리 집'이 그저 '대지 몇 평', '어떤 특정 주소'에 대칭되는게 아님을 깨달았다.

집.

노인은 당신의 소유가 아닌 방문하는 모든이의 집이 되어주고 있었다. 이웃을 향한 웃음으로, 밭에 대한 사랑으로, 그리고 365일 24시간 열어두는 대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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