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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인석 Oct 15. 2021

음악이 폭발하는 순간 기록장

TEXTIST PROJECT

 어제 퇴근을 하는 길, 문득 오랫동안 듣지 않았던 어떤 앨범을 듣고 싶어졌다. 계기가 있어서 듣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분명 좋은 앨범이지만, 그런 앨범들이 너무 많아서 잘 누르지 않았던 것일까. 어쨌든 어제는 딱 그 앨범이 떠올랐고 너무 간절히 듣고 싶었다. 왜 그런 날 있지 않은가? 막연하게 '아 배고프다' 정도의 생각이 아니라, 아주 구체적으로 '오늘은 OO식당의 OO메뉴를 시키면 나오는 OO 반찬을 먹고 싶다'고 떠오르는 그런 날. 

 그래서 음반별로 나눠둔 폴더에서 그 음반의 1번 트랙부터 틀었다. 박정현의 8집 'Parallex'라는 음반이다. 대중적으로 엄청 성공한 앨범은 아니다. 또 '꿈에'라던지 'p.s. I love you'처럼 히트곡이라고 꼽을만한 곡이 있는 앨범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앨범의 초장부에서 몰아치는 강렬한 구조가 매번 환상적이라고 느끼기 때문에 박정현 앨범 중 제일 좋아한다. 

 서정적이면서도 큰 스케일의 오케스트라가 깔린 1번 트랙을 지나면 2번 트랙은 더 무겁고 폭풍우 같은 느낌으로 몰아친다. 3번 트랙은 좀 더 대중적인 멜로디이지만 앞의 두 트랙에서 갖춰놓은 구조를 무너뜨리진 않는다. 그리고 안정적이지만 아름답고 다소 슬픈 멜로디의 타이틀곡까지 네 개의 트랙이 이어진다. '그렇게 하면 돼' - '실감' - '도시전설' - '미안해'로 이어지는 박정현 8집의 초장부다.


 열어놓은 차창 사이로 살랑이는 바람이 들어오면서 음악이 귀가 아닌 심장을 때리는 느낌을 받았다. 같은 음악을 항상 들어도, 전혀 다르게 들리는 날이 있다. 바로 이 순간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음악과 일상을 함께한다. 고가의 무선 이어폰 판매량이 높은 이유와도 어느정도 연관이 있을터. 하지만 늘 붙어있는 음악이다보니 '폭발한다'고 표현할만한 순간이 항상 찾아오진 않는다. 그래서 이 특정한 순간에 폭발하는 음악은 또 다른 선순환을 만든다. A라는 순간에 B라는 음악을 듣는데 바로 이 '폭발'을 느꼈다면, 그 이후로는 언제라도 B라는 음악을 들을 때마다 A라는 순간이 떠오르게 되는 것이다.


 몇 순간이 더 있다. 


 울산 고향 아파트 근처를 한밤중에 지나가던 무렵 그 어둠과 가로등 빛이 절묘하게 기이한 형상을 띄었던 어떤 순간, 이어폰이 꽂혀있던 귀에서 서태지의 'Take One'이 팡 하고 터져나왔다. 이 곡은 밴드의 악기들이 정교하게 얽혀있으면서도 록 본연의 시끄러움뿐 아니라 기묘한 설렘을 주는 음계로 구성되어 있다. 나는 이 순간에 음악과 그 가로등 빛, 어둠이 주는 폭발적인 느낌때문에 받았던 소름을 잊을 수가 없다. 


 어떤 날은 지금의 아내와 연애하던 시절, 아내를 데려다 주고 홀로 차로 집으로 오던 길이었다. 랜덤으로 플레이되던 리스트에서 자우림의 '스물다섯, 스물하나'가 흘러나왔다. 어두운 길에서 선루프 안으로 작은 달빛이 스며들어오고 있었는데, 마찬가지로 서정적인 폭발을 가져다 준 순간이다. 원래도 좋아하는 곡이었지만, 이 날 이후로 이 곡을 들을때면 그 순간이 떠오른다. 특히 2절이 끝나고 브릿지역할의 멜로디가 현악기와 어우러져 나오는 부분.


 이외에도 몇몇 순간이 더 있지만 구질구질하게 감상에 젖진 않겠다.

 


 음악이 폭발하는 건 개인적인 이유가 있을 수도, 아니면 우연히 오는 느낌일 수도 있다. 어찌됐건 그 순간 자체가 주는 강렬함은 말로 형용할 수 없다. 눈으로 보는 현상은 글로 어느정도 쓸 수 있고, 소리를 들을 때의 느낌 또한 어느정도 글로 쓸 수 있다. 하지만 여러개의 감각이 자아 속의 감정과 어우러져서 폭발하는 형태는 어떤 글로도 설명할 수 없고, 느낀자 스스로만 기억하고 기억할때마다 전율할 뿐이다.

 이 글 또한 아무리 길게 늘어놓더라도 폭발의 순간이 주는 강력한 감동 자체를 결코 설명할 수 없고, 그저 '그런 폭발의 순간이 있었다' 정도의 기록으로 남을 뿐이다. 다만 이 글을 읽는 이들이 음악을 통해 느꼈던 특별한 폭발의 경험을, 이 글로 인해 오랜만에 떠올릴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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