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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인석 Nov 10. 2021

나무 팽이 3

TEXTIST PROJECT

 여느 날처럼 가고 싶은 곳, 그리운 곳을 네이버 거리뷰로 구석구석 탐방하고 있었다. 이 날의 장소는 전라북도 군산시에 위치한 외할머니댁. 슬레이트 지붕에 마당이 있고, 담장 대신 빽빽하고 낮은 나무가 집의 영역을 알려주는 곳이다. 


 네이버 거리뷰나 다음 로드뷰는 우리나라 동네 곳곳을 생생하게 화면으로 보여준다. 첨단 기술의 발달로 누릴 수 있는 편리함이지만, 사실 이 기술은 의외로 단순하고 노동 집약적이다. 자동차가 카메라를 달고 계속 촬영을 하는 것. 그리고 그 촬영분을 쭉 이어서 지도의 해당 위치에 띄워서 보여줄 뿐이다. 

 그러니까 거리뷰는 그저 특정 시간이나 거리별로 촬영된 순간의 연속을 담아낼 뿐, 어떤 감정도 담고 있지 않다. 혹은 어떤 복잡한 기술보다는, 오히려 방대한 데이터량에 그 서비스의 효용이 담긴다. 그래서 이렇게 네이버 거리뷰에 찍힌 외할머니댁의 담장이나 담장 너머로 보이는 집의 모양, 마당의 구조는 어떤 감정도 담고 있지 않고, 그저 거리뷰를 찍는 자동차가 그 앞을 지나갈 때 찍힌 사실 자체일 뿐이다. 

 보통 네이버의 거리뷰는 1년 내외의 최신 사진을 제공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과거의 사진이 없어지진 않고, 아카이브 형태로 남는다. 그래서 이용자는 과거 특정 시점에 찍힌 사진을 볼 수 있다. 내 놀랍고 유의미한 경험은 여기서 시작된다. 


 외할머니댁의 과거 시점 거리뷰들을 재미삼아 넘겨보았다. 어떤 사진은 겨울이 보이고, 또 어떤 사진은 가을이 보인다. 마당에 심어진 작물들은 찍힌 시점이 언제냐에 따라 달라진다. 재밌다. 그리고 2010년의 거리뷰를 보는 순간 헉 하고 놀랐다. 

 거리뷰에 찍힌 외할머니댁 마당에 선명하고 생생하게 외할아버지의 모습이 찍혀 있는 것이다. 


 2010년이면 내가 군대가기도 전이다. 할아버지는 집 오른편 마당의 배추밭 앞에 서 계셨다. 그래, 이 때만 해도 할아버지는 거동에 아무 불편이 없으셨지,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모자를 쓰고 점퍼를 입고 계셨다. 


 2년 전, 내가 인지할 수 없는 세상으로 다른 여행을 떠난 할아버지.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사진과 기억으로만 할아버지는 이 땅에 남아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어떤 감정도 담기지 않은 한 기업의 지도 서비스에 의해, 할아버지는 또 다른 섹터에서 선명하게 남아있는 것이다. 물론 여러 번 강조했듯 이렇게 찍힌 사진은 어떤 감정도 없으나, 피사체의 의미없음은 거리뷰에서만 유효할 뿐, 할아버지를 사랑하고 할아버지가 사랑했던 이들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다. 이제 이 거리뷰는 할아버지와 끈이 있는 모두에게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담은 사진으로 남을 수 있게 됐다.


 나는 외할아버지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무 팽이'라는 제목의 글로 벌써 두 번이나 썼다. 맥가이버 같은 손재주를 가지셨던 할아버지는 어린 시절 나에게 나무를 깎아 팽이를 만들어 주셨었다. 이제 할아버지는 새로운 여행을 하고 계실거고 이 글을 읽을 수 없는 다른 차원에 존재하시지만, 할아버지의 기억은 많은 이들에게 여전히 유효하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흔적은 의도치 않은 공간에서도 오랫동안 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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