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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인석 Nov 11. 2021

할로윈 이야기

TEXTIST PROJECT

 확실한 건,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아니 대학생 때까지만 해도 할로윈이 대중적인 축제는 아니었다는 점. 그래서 최근 몇 년 간 할로윈이라는 테마로 분위기가 고조되는 10월 말은 다소 이질적이면서도 신기하게 느껴졌다. 한편으로는 '과연 할로윈이라고 호들갑떠는 이들이 가까운 사람들 생일은 얼마나 잘 챙길까?' 같은 부정적인 생각도 함께 드는 걸 막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할로윈의 문화적 토대는 대한민국과 전혀 관련이 없다.

 특정일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곧 다가오는 빼빼로 데이나, 발렌타인데이의 스핀오프격인 화이트데이에도 동일한 편이다. 상업성으로 중무장한 이런 날들 때문에 할로윈을 부정적으로 바라볼 명분은 충분했다. 


 세대가 어릴수록 할로윈에 대한 민감도는 높아지는 것 같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아내는 이 분위기를 가장 가까이서 체감하는 부류 중 한 명이다. 할로윈 즈음이 되면 수업하러 오는 학생들의 복장이 매우 창의적이 된다고 전했다. (올해는 오징어 게임이 핫했다고 한다.) 넘어서서 선생님의 입장에서 작은 사탕이라도 준비해야 하는 날이 되었다고도 덧붙였다. 

 어쨌든 올해도 이태원을 비롯한 젊은 거리들은 시국의 위험함을 무릅쓰고도 할로윈 분위기를 만끽한 듯 하다. 오징어 게임은 물론이고, 조커나 할리퀸, 베인, 아이언맨 등등의 캐릭터들이 거리에 난무했다. 특정 문화 작품에 등장하지 않은 창의적인 캐릭터들이나 무시무시한 분장들도 축제에 등장했다. 그렇게 사람들은 10월을 보냈고, 다시 일상의 11월로 돌아왔다.


 최근 할로윈에 대한 나의 시선은 많이 전환되었다. 몇 가지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바로 이런 생각. '우리나라에 이런 축제가 있었나?'


 한국의 명절을 쭉 돌아보자. 추석이나 설날같은 대형 명절 말고도 달력에는 엄청나게 많은 전통 명절들이 표시된다. 단오나 복날, 입춘, 입추 같은 날들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날 중, 어떤 날도 자유를 발산하고 재미를 즐기는 날이 없다. 오히려 한국의 명절은 복장이나 태도에 대해 규범이 꼭 정해져 있고, 어떤 태도를 갖춰야 한다는 의무만을 부과한다. 설날과 추석에는 성묘를 가야 하고, 단오날에는 창포물에 머리를 감으라고 한다. 수 많은 명절들은 결코 어른에 대한 공경과 전통적인 유교 가치관을 벗어나는 일이 없고, 오히려 엄격한 시스템을 공고하게 유지하는 역할로서 작용하고 있다. 특히 대형 명절인 설날과 추석의 거대한 의무들은, 의무에서 해방되지 못한 사람들에게 '조상이 공경할 만한 분들이었다'는 수긍보다도 '조상은 공경해야만 하는 신성한 존재'라는 정언명령으로만 작용할 뿐이다. 명절만 되면 인터넷 댓글란에 [진짜 조상을 잘 만난 사람들은 여행지에 있고, 조상 잘못만난 사람들이 지금 제사 준비 하고 있다]고 우스갯소리처럼 매번 달리는 내용은 결코 웃어 넘길 수 만은 없다. 


 한국 사회는 급격히 자본화되고 개인화되었지만 관습은 이 속도를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젊은 세대들로부터 창의적이고 자유로운 문화들이 자리잡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해지고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서 개인의 즐거움을 추구하게 된 사람들에게, 그 열망을 드러낼 수 있는 장이 없다는 것은 절망적인 사실이기도 하다. 특히 수 천 년의 역사를 매번 자랑하면서도 그 역사 속 살아남은 명절들 중 단 하나도 '개인의 즐거움'을 실천할 수 있는 명분을 주지 않는다는 사실은, 어쩌면 우리는 조상들을 조금은 책망해도 될 자격이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온전한 즐거움을 폭발시키며 '즐기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는 행사의 대표격은 바로 의정부고의 졸업사진이다. 그 혈기왕성한 친구들은 단지 졸업사진 촬영 날만 즐거운 게 아니라, 사진을 찍기 위해 아이디어를 모색하고, 친구들과 낄낄거리며 컨셉을 구상하는 그 모든 과정들을 즐거움으로 느낀다. 나는 그래서 이런 문화를 자리잡게 한 그들을 응원하는 글을 쓴 적이 있기도 하다.


 할로윈에 대해 긍정적으로 바라보기로 한 이유다. 웃기는 옷을 입고, 그저 거리로 나가서 모르는 사람들과 웃고 사진찍고 인사하는 그런 행사. 어떤 한국의 전통 명절도 수 천 년 동안 제공하지 못했던 유흥을, 서양에서 들여와서라도 즐기려고 노력하는 사람들. 그리고 이젠 그렇게 즐길 수 있는 마음을 갖게 된 사람들. 이젠 박수를 좀 쳐보기로 했다.


 다만 그래도 이 바이러스들이 자리를 비키기 전까지는 마스크 잘 쓰고, 손도 잘 씻으며 즐거움을 누렸던 할로윈이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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