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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인석 Nov 12. 2021

장난질의 삶

TEXTIST PROJECT

 형제. 늘 서로 의지하는 것처럼 보이는 자매나, '츤데레'스러운 모습으로 서로간의 우애가 유지되는 남매에 비해, 다소 서로에게 무심해 보이는 가족구조가 바로 형제다. 실제로 주변에 본인이 형제관계에 속해 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부분 사이가 나쁘진 않지만, 그렇다고 엄청 따뜻한 것은 또 아닌, 그야말로 무관심 수준의 관계인 경우가 많더라. 물론 사람관계라는 게 일반화를 할 수는 없을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나의 형제, 그러니깐 동생과 나의 관계는 다른 많은 이들이 정의하는 '형제'와는 조금 다른 것 같다. 동생은 나에게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동성의 친구이자 의지되는 멘토이기도 하다. 사람의 마음 속을 알 순 없지만, 같은 피를 공유하고 있는 동생도 나와 같은 생각이지 않을까 싶다. 그만큼 동생과 나는 대화의 공감대가 넓고, 서로를 누구보다도 위한다. 

 가족관계 중에서도 이런 형제 관계는 정말 소중하다. 이제는 '0촌'관계인 아내가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평생동안 낳아주고 길러주신 '1촌'관계의 부모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가령 아내와 부모님에게 하기 어려운 얘기 중 고작 '2촌' 관계인 동생에게 먼저 공유하고 의견을 나누는 경우도 종종 있을 정도다. 이럴 때마다 동생은 가끔 전혀 새로운 시각과 방향을 제시하기도 한다. 나 또한 동생에게 그런 형이길 바란다. 


 어쨌든 그런 동생과 조금 진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항상 욕심이 많은 편인 형은 '앞으로 어떤 것을 더 성취할 수 있을까'류의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별 생각없던 동생의 답은 가벼웠지만 묵직하게 형의 머리를 때렸다.


 "나는 그냥 장난질이나 치면서 재밌게 살고 싶더라."


 동생이 말하는 장난질의 정의는 별 대단한 게 아니다. 그냥 어쭙잖은 만담거리, 의미없는 농담들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장난스럽게 나누는 걸 의미했다. 어떻게 보면 나도 가장 좋아하는 일. 

 동생과 이야기를 나눌 때 즐거운 이유가 바로 우리의 '장난질' 범위가 상당 부분 중첩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동생과 항상 장난질로 대화의 대부분을 채워나가고, 그 즐거움을 온전히 삶의 온기로 남겨왔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를 망각했던 것 같다.

 사실 좀 깊게 들어가보면, 동생이 말하는 '장난질'이 재밌기 위해선 장난질을 나눌 수 있는 여유가 있어야 한다. 또 힘든 상황에 처해있지 않아야 진정 장난질을 그 자체로 즐길 수 있다. 동생은 비록 별 생각없이 이 이야기를 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내면적인 의미를 충분히 포함하고 답한 것이 분명하다. 

 결국 편하게 장난질이나 치면서 재밌게 살겠다는 가벼운 대답은, 그 실천을 위해서 일상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 수반된다. 다만 그 노력은 스스로의 신체와 정신의 체력을 갉아먹지 않는 선에서 유지되어야 한다. 가벼워 보이지만 가만히 드러누워서 사는 사람은 이룰 수 없는 일이다.


 선비처럼 여유를 지닌 모습으로 농이나 따먹으며 지내고 싶다는 소소한 인생의 바람을 제시한 동생은 최근 한 건축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수상했다. 본인의 회사일을 하면서도 친구들과 퇴근 후나 주말의 시간을 내어 틈틈히 작업했을 것이다. 가만히 드러누워서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이었다면 수상하지 못했을 것. 이런 주 업무 이외의 활동들 또한 동생의 '재미'를 위한 일련의 과정이 아닐까라는 짐작을 했다.

 재미. 일상에서 재미가 사라질 때서야 비로소 '어떻게 해야 재밌을까'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들게 되는 소중한 가치다. 언제라도 이런 생각이 들지 않는, 그러니까 항상 재미가 나의 일상에 실존하는 삶을 이어갈 수 있는 원동력이 존재했으면 한다. 장난질과 재미를 사랑함에도 동생의 가벼운 답변 이전까지는 그것의 소중함을 망각했던, 야망과 욕심만 많은 모자란 형의 소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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