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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인석 May 23. 2020

거울 속 명절

TEXTIST PROJECT

 귀경길에 휴게소에 들렀다. 일을 보고 손을 씻고 스치듯 거울을 보고 돌아서려다, 흠칫 놀라서 다시 거울을 봤다. 거울 속에는 있어야 할 기억 속의 사람은 온데간데 없고, 피곤과 근심이 들어찬 얼굴의 삼십대 아저씨가 서있다.

 명절은 오랜만에 가족들을 만나고 사촌들과 놀고, 용돈을 받았던 기억들로 가득하다. 길게 쉬는 몇 안 되는 날들에 더 피곤함과 힘듦을 토로하는 부모님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받는 용돈이 줄고, 혹은 용돈을 드려야 하는 순간들이 와도 작은 성공의 증표이자 자부심으로 생각했던 기간이었다. 감흥이 사라지고 현실만 남았다. 거울 속에서 내가 본 건, 보이지 않는 어깨위의 무언가들이다.
 화장실에 들어차 있는 수 많은 아저씨들이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나는 아닐 줄 알았다. 영원히 젊고 패기 넘칠줄 알았다. 어머니를 모시고 할머니 댁을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는 서울길, 타지에 계신 아버지 대신에 명절을 잘 챙겼다는 뿌듯함이 마음 속에 가득할 줄 알았는데 사흘만에 거의 처음 자세히 마주한 거울을 보고야 알았다. 무게가 무겁구나.
 어디서 무얼해도 재밌게 사는게 중요하다는 마음가짐은 변한게 없다. 하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들이 더 많음을 시나브로 느끼고 있었다. 뿌듯함과 책임감은 전혀 다른 분야에서 각각 작용하여 서로를 상쇄시켜줄 수 없는 듯 하다.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아저씨가 된다는 건 슬픈 일이다. 단지 나이가 들어서가 아니다. [하고 싶은 것]보다 [해야 하는 걸] 우선시해야 하는 상황이 훨씬 많아지기 때문일 것이다. 해야할 것을 챙기다보면 하고 싶은 걸 할 시간이 사라진다. 어쩌다 생기는 주말시간에 안방에 늘어지는 아버지의 모습들이 의지가 없어서가 아니라는 걸 슬며시 느끼게 될 것이다. 그렇게 수십년을 보내면 머리는 하얗게 새고, 일터는 해야 하는 것조차 더이상 주지 않을 것이다. 슬픈 일이다.

 저 앞에 딸 아이를 어깨에 태운채 소떡소떡을 결제하고 있는 한 아버지의 모습이 다정하다. 딸 아이 한명의 몸무게보다 수십배 수백배의 짐을 지었을 테지만, 저 아버지는 사랑과 책임감으로 환한 웃음과 함께, 무거울 짐을 행복과 뿌듯함으로 맞고 있다. 휴게소에 있는 모든 부모들이 그럴 것이다. 나도 그렇게 될 것이다. 두렵고 아직 준비가 안된 것 같지만, 내가 원하는 시기에 취향에 맞춰 오진 않는다는 것을 거울 속의 모습이 슬며시 읊어준다. 어머니를 챙기고 운전대를 잡으며 다시 시동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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