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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인석 Nov 30. 2021

책 버리는 청년들

TEXTIST PROJECT

 성당으로 발걸음을 옮기던 중 두 명의 남자 청년들이 밝은 표정으로 나를 지나쳐 갔다. 그들은 분리수거를 하는 듯 보였는데, 둘 모두 양 손에 노끈으로 묶은 책 뭉치를 들고 있었다. 나와 가까운 위치로 지나쳐간 청년의 오른손에 들려있던 책 꾸러미 제일 위에 쓰여져 있던 제목의 큰 단어 몇개가 눈에 담겼다. '수능 특강'. 

 아, 저렇게 크고 어른같아 보였던 청년들이, 사실은 아직 청소년이었구나. 청년의 나이를 향해가는 이들 중 가장 나이 많은 청소년이었구나. 


 얼마 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났다. 물론 입시 시스템과 개인차에 따라 수능 이전에 입시를 끝낸 청소년들도 있을 것이다. 반대로 수능 이후 한참 지나고서야 입시의 모든 과정이 끝나는 청소년들도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수능이 갖는 의미는 이 학년을 보내는 모든 청소년들에게 충분히 유효하다. 실제로 하루라는 시간동안 수능을 친 학생들은 말할 것도 없으나, 수능을 치지 않았던 고3 수험생들에게도 상징적인 날짜임이 확실하다. 


 비행기는 이 날 영어듣기 평가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활주로로 진입하지 못하고 하늘 위를 배회한다. 경찰차는 시험장에 늦을새라 뛰어가는 청소년들을 위해 기꺼이 바퀴를 제공한다. 꽤 많은 택시나 오토바이들도 자발적으로 힘을 보탠다. 수능시험장 입구에서 교복입은 1, 2학년들이 자기 학교 선배들을 위해 응원한다. 시험장 문이 닫히면 어머니 아버지들만 남아서 담 안 시험장을 바라보며 각자의 신앙에 마음을 담아 기도한다. 다른 날보다 희안하리만큼 추워지는 이 날, 부모들은 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하염없이 담 안을 바라보며 몇몇 부모는 눈물까지 훔친다. 

 매 과목이 끝날 때마다 뉴스는 속보로 무슨 과목이 끝났고 난이도가 어땠는지를 보도한다. 오후 네 시 무렵이 되면 시험장 근처의 공기는 꽤 무거우면서도 침착해진다. 그리고 곧 수능시험장 문이 열리고 수험생들은 살면서 처음 느껴보는 감정을 느끼며 문 밖으로 나온다. 누군가는 씁쓸한 표정, 또 누구는 다소 상기된 표정, 다른 누구는 허탈하면서도 맑은 표정으로 문을 나서지만 이 모든 각양각색의 표정들이 느끼는 감정이 결코 다른 것이 아님을 그들 자신도 잘 안다. 


 매년 꼭 존재하는 이 하루가 지나갈 때마다 항상 모든 사람(수능과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들까지도)은 안타까운 소식을 뉴스로 접하지 않기를 희망한다. 어른들은 수 년동안 청소년들에게 공부와 입시가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수능에 목숨이라도 걸어야 한다며 열변을 토하지만, 막상 수능이 끝나면 "수능이 전부가 아니야."라는 위로와 응원의 말을 건넨다. 그리고 청소년들이 힘을 내서 다음 문턱을 향해 다시 뛰어가길 권한다. 수능이 전부가 아니고, 세상에 힘든 일이 더 많을거라는 그 말은 사실이겠지만, 수험생들에게 진심어린 위로나 응원이 될수는 없을 것이다. 그들에게 옳고 필요한 말은 "수고했다." 혹은 "참 대단하다." 아니면, "감사하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수험생의 가족이 아니더라도, 그 청소년들의 노력이 사회를 계속 발전시켜왔다는 사실에 모든 어른은 감사해야 되는게 옳다. 


 책 뭉치를 들고 지나간 청소년들이 버릴 책을 골라내고 노끈으로 묶는 시간, 그리고 그 책을 들고나와 분리수거의 '종이류'에 놓는 시간은 아무리 길게 잡아도 30분은 걸리지 않을 것이다. 수능 하나만을 바라보고 뛰었을 그들의 수고에 대한 갈무리로는 한없이 부족하고 짧은 시간일테다. 

 그럼에도 그들은 밝은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며 지나가더라. 이제 그들은 청소년 시기의 마무리와도 같은 가장 큰 관문을 어떻게 넘을지 걱정을 놓을 수 있게 됐고, 청년으로서의 첫 걸음을 얼마나 즐겁게 내딛을지 기대하는 일로 일상을 채워 나갈 수 있게 됐다. 유별나게 이 나라에서 더 크고 깊게 느낄 수 있는 아름답고 활기찬 모습이다.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그들을 짓누르고 있던 엄청난 무게의 짐들이 사실은 별거 아니었음을, 이제 그들은 스스로 충분히 알게 됐다. 굳이 어른들이 말해 줄 필요도 없는 그런 아름답고 벅찬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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