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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인석 Dec 09. 2021

복사

TEXTIST PROJECT

 '복사를 선다'는 천주교 신자들이 이해할 수 있는 관용어다. 미사(개신교의 예배에 해당되는 행사)때는 사제(신부님)가 미사를 집전(주관과 같은 의미)한다. 그 장면을 보면 거의 대부분의 경우 두 명의 '도우미' 같은 사람들이 함께 서있는 걸 볼 수 있다.(한 명이거나 세 명, 혹은 없는 경우도 있다.) 이 사람을 복사라고 하고, 그 행위를 '복사를 선다'고 표현한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청소년, 청년이 될 때까지 쭈욱 복사를 서왔다. 특히 초등학교 때는 새벽미사의 복사를 서야되는 경우도 있었던지라 의도치 않게 엄마의 아침잠을 방해하기도 했다. 

 지금은 성당의 예하 단체 활동을 하고 있지 않아서, 미사만 조용히 참례하고 귀가한다. 그래도 비교적 최근까지도 성당의 청년활동으로 복사를 섰다. 그것이 자부심이거나 행복했다거나 엄청난 뿌듯함이 있다거나 그런건 전혀 아니다. 그냥 나는 그런 활동을 했었다.


 하지만 초등학교 시절의 복사에 대한 기억은 조금 다르다. 제법 크다. 그 때의 나는 신부님이 장래희망이었기 때문이다. 아주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신부님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미사를 보는 복사 활동을 한다면, 꿈을 이룰 수 있다고 단순하게 생각했기도 하다. 그래서 소년시절 복사를 설 때는 그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복사에 임했다. 물론 겉으로 보여지는 복사로서의 동작, 행동은 정례화가 되어 있기에 다른 소년들과 다르지 않았지만 내 마음은 구름위에 떠 있거나 활활 타오르는 그런 상태였던 기억이 생생하다. 


 청년 시절에 섰던 복사 또한 미사와 신앙을 조금은 다르게 받아들이도록 도운게 사실이다. 하지만 소년 시절의 그것과는 결코 비교할 수가 없다. 소년시절의 서인석 루카는 복사의 동작과 행동을 까먹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걸 넘어서서 신부님의 동작 하나하나, 아주 작은 손짓과 행동까지도 마음에 담아놓으려 애를 썼다. 복사 선 후 수녀님이 주시는 간식조차도 미사시간에 모시는 성체처럼 감사하게 받아왔고, 집에 돌아와서 그 간식을 동생과 나눠먹으며 비로소 미사와 복사의 모든 시퀀스를 마음 속으로 종료했었다. 


 청년 활동을 하던 시절의 복사는 수월했다. 모태신앙이었기 때문에 미사의 과정을 갓 세례를 받은 신자들에 비해 잘 이해하고 있었고, 행동들의 의미도 어느정도 다른 이들보다 잘 이해한 상태였다. 하지만 과연 이 시기의 나의 복사가 소년시절의 복사보다 능숙하고 괜찮은 복사 활동이었다고 볼 수 있을까. 기계적으로 더욱 완성된 행동들이 미사 전체를 지배했다고 한들, 그야말로 성령으로 감복해 있던 소년 시절의 마음을 따라갈 순 없을 것이다. 


 아마 앞으로도 그 시절의 서인석 루카가 행했던 복사보다 성스러운 신앙활동을 하긴 힘들지 싶다. 그리고 이처럼 겉모습은 훨씬 성숙하고 완성되었더라도, 그 내면은 과거의 행태를 따라잡을 수 없는 사례들이 꼭 복사에만 국한되는 것 또한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년시절의 기억을 꺼내어 머릿속에서 재상영하려 노력하는 이유는, 그 순수함을 잠깐이라도 기억하며 탁해진 마음을 씻어내고 싶기 때문이라고, 내 맘대로 생각한다. 


 울산 고향집 내 서랍에는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초상화가 있다. 신부님이 되고 싶다는 생각에 어디에선가(아마 성당일 것이다) 받았던 작은 초상화를 버리지 않고 간직했었다. 신부님이 되고 싶어했던 소년은 이제 없지만, 그가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의 증거로 김대건 신부의 초상화는 여전히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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