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기회

TEXTIST PROJECT

by 서인석

제주도에서 3일 동안 못질, 드릴질을 하게 된 건 즉흥적인 성격을 가진 한 친구의 한 마디 때문이었다.

그 친구는 그저, "너 드릴 있냐?"고 물었고, 나는 그렇다고 답했다. 그러자 돌아온 그 친구는

"그러면 11월에 나랑 같이 제주도 가자."고 했을 뿐이다. 뭔가 판단할새 없이, 자리에 같이 있었던 아내의 동의까지 후다닥 받아지게 된 그런 상황이다.


친구는 제주도에 한 달 살기 숙소 사업을 준비 중이었다. 평범한 방 두 개 거실 하나의 아파트를 숙소처럼 꾸미고 있는 단계였고, 그 막바지 공사를 위해 나에게 같이 가자는 의사를 물었던 것이다. 아내가 다녀와도 된다고 하는 한, 안 갈 이유는 없었다. 그런 작업을 좋아하는 편이기도 했고.

그렇다고 해도 이토록 촉박하고 타이트하고 힘들 줄은 몰랐다. 일단 첫날밤 늦게 도착하자마자 대형 사이즈의 침대부터 조립했다. 언제 잠들었는지 모를 정도로 기운을 뺐다. 다음날도 망치질과 드릴질은 이어졌다. 특히 인테리어용으로 친구가 미리 주문해놓은 인조 나무들을 하나하나 상자에서 까서 옮기는 동안은 시간과 공간의 방에 갇힌 느낌이 들 정도. 둘째 날 자정을 넘기고 한두 시쯤에 내가 먼저 지쳐 잠들고 나서도 친구는 한참 동안 작업을 진행했을 정도로 일이 많았다.

타이트하게 진행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바로 셋째 날의 촬영 일정 때문이었다. 숙소 홍보를 위해 셋째 날 오전, 숙소 내부 촬영을 예약해둔 일정이었고, 그전까지는 무조건 숙소가 완성되어 있어야 했다. 다행히 촬영도 잘 끝났다.


제주도라는 지명에 걸맞지 않게 2박 3일 동안 대부분 그 숙소 안에 머물렀고 나사와 드릴을 안고 살았다. 같이 일하러 와준 나를 위해 친구는 아끼지 않고 음식을 제공했음에도 불구하고, 돌아와서 잰 체중은 동일했다.

우리의 여유는 딱 두 번 정도였다. 하나는 둘째 날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오기 전 잠깐 커피를 들고 돌았던 바닷가. 대학교 동기인 친구와 별 시답잖은 얘기를 나누며 낄낄대며 해안가를 걸었다. 컴컴한 밤이었는데도 에메랄드 빛 바다가 보일 정도로 시계가 좋은 날이었다. 다른 하나는 셋째 날 촬영 후 다른 업체와의 미팅까지 마치고 점심을 먹은 후 공항 가기 전 한 시간 정도의 시간이었다. 이때 정말 우리는 코를 골며 단 낮잠을 잤다. 그만큼 지친 상태였다. 하지만 알람 없이도 햇빛에 금세 일어날 수 있었고 '무한도전' 재방송을 보면서 요깃거리를 먹은 후 공항으로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뻘소리'를 나눌 친구들이 줄어든다. 2박 3일 동안 양껏 뻘소리를 하며 지냈다. 청소기를 끌며, 가구를 조립하며, 못을 박으며 보낸 시간이 힘들었지만, 앞으로 언제 이렇게 오랜 친구와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땀으로 사흘을 보낼 정도로 빡빡한 작업이었지만 마음은 대학교 때로 돌아간 채, 친구와 조별 과제를 하는 기분이었다.

아마 이 힘들면서 즐거웠던 오묘한 기억은 이 친구나 대학교 동기들과의 술자리에서 두고두고 풀어놓을 수 있을 것 같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이런 기회가 더 있을까, 싶었던. 그런 기회의 3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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