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IST PROJECT
커피. 현대인의 하루를 유지시켜주는 합법적 스테로이드. 아침을 열어주면서 하루를 이끌어주는 향기로운 각성제. 과장된 표현일 수는 있어도 부인하긴 어렵다.
한국인은 유독 커피를 사랑하는 듯 보인다. 성인 1인당 커피 소비량은 연간 353잔. 세계 평균 132잔에 비해 2.7배가 높다. 자연스럽게 커피전문점의 매출액 합계도 미국, 중국에 이어 3위다. 두 나라가 소위 말하는 '대국'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고작 인구 5천만인 나라의 커피 사랑만큼은 충분히 대국급이라고 말할 수 있다.
국제적 차원으로 설명할 것도 없다. 출근 후 자리에서 잠깐 하루의 업무를 확인한 직장인들은 스트레칭을 하며 커피 한 잔씩을 사러 나간다. 혹은 출근하면서 커피를 들고오는 경우도 많다. 사무실에서 노동을 행하는 직장인들에게 커피는 아침식사보다 훨씬 중요하다. 아침 먹는 직장인보다 모닝커피를 챙기는 직장인이 더 많을 것이라고 쉽게 예상할 수 있다. 그게 끝이 아니다. 점심을 먹고 나면 다시 커피를 챙긴다. 마치 커피는 약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침 커피의 약효가 떨어질 때쯤, 점심 커피로 약효를 연장한다. 이 약은 사무 노동의 필수적인 처방일지도 모른다. 이 말들 또한 과장은 아닌게, 아침과 점심에 커피를 사서 마시는 사람은 많아도 저녁에 퇴근하면서 커피를 챙기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드물기 때문이다. 여러모로 커피는 한국의 GDP에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다. 커피 전문점들의 매출로도, 직장인들의 노동 효율 극대화에도.
나 또한 커피의 굴레에서 독립되지 못한 직장인이기에, 아침마다 커피를 꼭 챙긴다. 커피의 기술도 각양각색으로 발전을 거듭해서 이제는 캡슐을 넣으면 기계로 커피를 내려주기까지 한다. 나의 경우는 보통 이 커피로 아침을 시작한다. 캡슐은 매우 다양하다. 물을 조금 넣은 텀블러에 캡슐 커피를 내린다. 비율에 따라 커피의 향과 맛이 꽤 차이가 난다. 우연찮게 비율과 온도를 잘 맞춘 날은 비록 캡슐커피지만 그 향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아침동안은 흐뭇함이 지속된다.
커피열매가 있다. 일반적으로 '커피콩'으로 알려진 식물이다. 우리가 마시는 커피는 여기서 시작한다. 잘 익은 커피열매의 껍질을 벗겨 볶는다. 볶는 과정을 '로스팅'이라고 한다. 커피열매도 좋아야 하고, 로스팅도 잘 이뤄져야 커피 맛이 좋다. 이렇게 로스팅된 커피는 바로 추출하면 오히려 맛이 없다. 로스팅 후 일정시간이 지나야 탄소가스가 배출되고 적당한 맛에 이를 수 있다. 그래서 맛있는 커피를 위해서는 로스팅 후 보관 시간도 중요하다. 볶아지고 보관된 커피열매를 갈아서 추출하면 비로소 우리가 마시는 커피의 샷이 탄생한다. 과정을 늘어놓고 보면 인간의 문명이 신기하게 여겨진다. 어떻게 열매를 그냥 먹지 않고 껍질을 벗길 생각을 했는지, 또 어떻게 볶을 생각을 했는지, 보관해서 가스를 빼낸다는 걸 어떻게 알아냈는지, 어떻게 커피를 갈아낼 생각을 했는지, 게다가 갈아진 커피를 그냥 물에 타는 것도 아니고 추출해서 먹을 생각을 했는지까지. 한 과정처럼 보이는 각각의 세심한 절차들이 모두 전능한 누군가가 알려주지 않으면 알아내기 어려울 것처럼 보인다.(쌀 농사도 비슷하다고 항상 생각한다.) 아마 인간의 역사가 길어지고 커피가 그 역사에 함께 존재하면서 과정 하나하나 시나브로 습득해 온 것이 아닐까 싶다.
반면 내 커피의 역사는 매우 짧다. 나는 대학교 때까지만 해도 커피를 즐겨마시지 않았다. 카페라떼도 때론 쓰다고 느꼈고 보통 강의실에 커피를 들고 들어가야 되는 상황 -이를테면 누군가가 사준다고 할 때-에는 단맛으로 먹는 카페모카를 마시곤 했다. 같은 맥락에서 캔커피도 종종 마셨다. 학군후보생 하계훈련때 캔커피가 부식으로 나오면 그렇게 시원하고 달달할 수가 없었다. 지금 마시는 '진짜 커피 맛'과는 분명 거리가 있었지만.
군생활을 시작한 후에는 커피를 마시는 양이 급증했다. 다만 '아메리카노' 같은 커피는 아니었고, '한국을 빛낸 발명품' 무려 5위에 해당하는 믹스커피류. 소대장때는 그리 많이 마시지 않았는데, 계급이 올라가고 참모직을 맡은 후부터 격렬한 야근에 하루 대여섯잔의 믹스커피를 기본으로 마시며 생활했다.
전역 후 회사에 들어오고는 자연스럽게 직장 동료들과 커피를 하나씩 들고 산책하는 굴레에 속하게 됐다. 스물 중반에는 주로 카페라떼를 마셨는데 점점 시간이 흐르면서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빈도가 늘었고 이젠 오로지 아메리카노만 마신다.
한국인들에게 유독 커피가 사랑받는 이유는 뭘까. 아니, 과연 사랑받기 때문에 많이 소비되는 것일까. 어쩌면 한국이 여전히 OECD에서도 손꼽히는 과로사회라는 점과 상관관계가 있는 것은 아닐까. 회사 밀집지대에는 카페들이 많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혹여 '원래 사람이 많은 곳엔 카페 뿐아니라 모든 가게가 많다'는 반론이 있다면, 내가 근무하는 우면동을 재반론 예시로 들어볼 수 있다. 삼성연구단지가 있는 이 곳은 우면산이 사무 건물들과 몇 십 세대의 주택가를 감싸고 있다. 지하철역도 없고 상업시설도 그다지 발달하지 않은 곳에 연구단지만 덜렁 들어선 느낌. 그러다보니 인구가 밀집된 곳이면 으레 있을법한 식당가들도 거의 없고, 연구단지가 들어설 시기에 호기롭게 오픈했던 식당들도 여러 곳 폐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페는 항상 북적북적하다. 대여섯채 밖에 없는 상가건물에 카페들은 무려 열 곳에 달한다. 점심시간이면 한참 줄서야 커피를 받을 수 있는 곳도 있을 정도.
상황이 이렇지만 커피를 노동용으로만 판단하고 이야기를 이어가기엔 주말의 커피에게 미안해진다. 토요일 아침에 일어나 맡는 첫 커피향은 평일의 커피들과 사뭇 다르다. 평일 어느 요일보다도 희망찬 의욕을 불러일으켜 준다. 설령 '이번 주말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내야지'라는 마음을 먹었을지라도, 아침 커피를 통해 더더욱 마음을 다잡게 된다. '아무것도 안 하겠다는 마음가짐보다도 더더욱 아무것도 안하며 보내야지!'
휴일이건 평일이건, 노동이건 휴식이건, 커피는 나와 내 주변 대부분의 사람들의 일상에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개인 사업자들이 치킨집만큼이나 부담없이 도전하는 영역이 카페라는 사실은, 그만큼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고 수요도 많다는 점에 기인할 것이다.
커피와 건강과의 상관관계는 항상 양극단을 달린다. 두통해소나 심장질환의 위험 감소, 심장마비 가능성 감소 등을 비롯해서 우울증을 막아주는 효과까지도 증명된다. 커피의 효과가 사실 카페인의 효과나 마찬가지인데, 결국 카페인이 주는 악영향 또한 커피의 것이다. 두통을 해소해주는 커피의 효과는 일정량에만 한정되고, 과용하면 오히려 두통을 유발한다. 우울증도 마찬가지다. 우울증 예방에 효과가 있던 커피는 신체가 카페인에 내성이 생기는 순간부터는 오히려 우울증을 악화시킨다. 그래서 커피는 신기한 음료다. 아수라백작처럼 같은 영향을 미치면서도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 커피는 그저 존재하고 신체의 특정 영역에 영향을 미칠 뿐이지만 마시는 자의 양 조절이 수반되지 않으면 영향의 부정성은 끝도 없이 증폭된다.
그저 검정색 음료일 뿐이지만 맛은 천차만별이다. 커피 맛을 매우 심오하게 알지 못하더라도 몇 번 마시다보면 특정 프랜차이즈들을 피하게 된다. 적어도 '맛있는 커피'를 이해하는 수준은 아니더라도 '맛없는 커피'는 구분하게 되는 셈이다. 여기에 내가 피하는 프랜차이즈들을 하나하나 다 적을 필요는 없다. 커피의 심오한 맛과 자부심에 대한 또 다른 증명은 이탈리아 로마에서 느낄 수 있다. 세계적인 관광도시지만 여기서 프랜차이즈 카페는 찾아보기 매우 힘들다. 카페주인들은 몇 세대동안 한 자리에서 가업으로 바리스타를 이어받기도 한다. 그들은 어딘가에서 원두를 일괄적으로 제공받고, 제조법이나 기계를 일괄적으로 습득하여 커피를 잔에 내는 것을 매우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 느낀다. 이들의 콧대높은 자부심을 증명하듯 로마의 카페들은 확실히 한국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먹던 커피와는 다른 맛을 자랑한다.
그러고 보면 커피는 여러 어려운 음식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단순한 제조법에도 결코 단순하지 않은 음료다. 나는 커피의 제조에 대해 거의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저 재료라고는 원두와 물만으로 만들어지는 이 신비의 음료가 오만가지 맛을 낸다는 점에 감탄한다. 나노단위의 제조과정 차이가 맛의 편차를 만든다고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어떤' 원두를 '어떻게' 쓰느냐와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라는 조건 안에서 커피의 맛은 한없이 벌어진다. 그리고 내가 아주 드물게 '오늘의 커피는 진짜 너무 맛있는데?'라고 느끼는 그 커피들은 단순해보이지만 결코 쉬이 달성되지 않는 조건들을 철저하게 달성했을 때 손에 들어지게 될 터다.
그렇게 미세한 차이로 맛이 갈리지만 내가 마셨던 최고의 커피가 무엇이었냐는 질문에는 어렵지 않게 대답할 수 있다.
회사 입사 동기들 중 친한 두 명이 있다. 나를 포함한 세 명은 여름에 종종 여행을 같이 간다. 둘은 모두 지독한 커피 매니아들이다. 직접 커피를 내려 마시는 멋을 지닌 그런 부류 말이다. 1박을 보내고 다음날, 잔디밭이 보이는 숙소에서 아침부터 향기로운 커피냄새가 났다. 알람없이 커피냄새로 깬 기분은 수 년이 지났음에도 생생하다. 눈꼽을 떼기 전에 홀린 듯 그들의 커피로 다가갔다. 향은 가까워질수록 진해졌다. 그들은 내 커피를 아이스로 준비해 줬다. 우리 셋은 커피를 들고 잔디밭의 의자로 나갔다. 그렇게 입에 머금다가 커피를 슬며시 목 뒤로 넘겼다. 천상의 맛이었다.
그들의 커피 자부심은 여전하다. 이 때의 커피 맛을 언급할 때마다 그들은 그 때의 원두가 뭐고, 어떻게 만든 것인지를 줄줄 얘기하지만 단 한번도 제대로 기억해본 적이 없다. 그저 그 맛의 강렬함만이 박혀서 그 외에는 불필요하다고 여겨지는 듯 하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또다시 그 때의 생생한 커피맛을 떠올리며 상상에 빠졌다. 그런 생각도 들었다. 그 때의 커피맛을 잊지 못하는 이유가 단지 커피가 맛있어서가 아니라, 일상을 떠나 한적한 곳으로 놀러갔다는 전제 때문은 아닐까. 혹은 그렇게 놀러가서 아주 좋은 날씨의 햇살을 받으며 커피를 마셨기 때문이 아닐까. 혹은 그 날의 그 잔디와 의자와 친구들과의 실없는 동담이 곁들여졌기 때문이 아닐까.
여전히 커피는 고양이처럼 기묘하다. 하루 종일 함께하는 음료지만 여전히 커피의 정체는 모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