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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인석 Jul 21. 2022

체중계를 보는 습관

TEXTIST PROJECT

 작년 나의 가장 큰 성취를 꼽자면 다이어트다. 고작 다이어트가 작년에 남은 거의 유일한 성과라는 게 씁쓸하지만, 고작이라는 단어로 묘사하기엔 뼈를 깎는 노력을 수 개월 간 했던 점 또한 간과할 수 없다. 


 두세 달 남짓한 기간동안 나의 모든 끼니는 고구마와 계란으로 해결됐다. 재택근무가 아닌 날에는 회사에서 제공하는 샐러드팩을 식사로 삼았다. 하루 두 번, 오전 11시와 오후 6시에 식사했다. 각 끼니는 보통 계란 두 개와 고구마 한 개, 혹은 계란 한 개와 고구마 한 개로 끝마쳤다. 당연히 너무 배고프다. 그래서 참았다. 참기 힘들 정도로 배가 고플 때는 또 참았다. 그렇게 참을 인자를 서인석의 인자 대신 몇 번을 고쳐 쓰다가 도저히 못 견디겠다 싶을 때는 아몬드를 두세 알 정도 먹었다. 


 나의 최대 체중은 80Kg이었다. 결혼식 전날 체중은 74~75kg 정도였다. 나는 이 사실을 숫자로만 막연히 봤을 뿐, 이 숫자들이 외형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그다지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다. 내 키는 178cm이고 어릴 때부터 나는 항상 마른 사람이었기 때문에, 체중계의 숫자가 내가 기억하는 숫자보다 많이 올라갔을 때 내 외형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체감할 수 없었다. 그렇게 77~80kg 사이의 체중인 상태인 어느 날, 내 사진을 보고 순간적인 이질감을 느꼈다. 사진의 내 모습은 통통한 상태였고,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았던 '전형적인 아저씨'의 스테레오타입을 향해가는 듯 했다. '아빠 곰은 뚱뚱해'의 가사에 쉽사리 고개를 끄덕이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날 당장 다이어트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언급한 식단으로 한 달을 넘기자 마침내 체중의 앞자리가 6으로 바뀌었다. 먹는 것만 조절한 것은 아니다. 정해 놓은 걸음 수와 운동시간을 비가 오는 날에도 지켰다. 다만 이건 힘들지 않았다. 오히려 타이트하게 뛰고 나면 식욕까지 떨어져서 도움도 됐다. 걷고 뛰는 일이야 이렇게 본격적인 다이어트를 시작하기 전에도 원래 꾸준히 해왔기도 하다. 

 여기서도 멈추지 않고 몇 kg를 더 뺐다. 체중에 옷의 무게가 더해지는 걸 감안해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67kg까지 만들고 다이어트는 종료됐다. 다이어트 시작하던 날의 체중이 78kg였으니 두 달동안 11kg을 뺀 것이다. 78kg에서 70kg을 만드는데 한 달 정도가 걸렸는데, 70kg에서 67kg을 만드는 데도 한 달 정도가 걸렸다. 초반 8kg을 빼는 것보다 후반 3kg을 뺄 때가 더 힘들었다. 마치 몸은 끊임없이 '이제 그만하자'고 유혹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다이어튼 종료 후가 더 힘들었다. 몸에서 11kg이 빠져나갔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감격스러워 할 틈 없이, 세상에 맛있는 게 너무 많이 보였다. 하지만 두 달 동안의 고생을 생각하니 아무렇게나 입에 음식을 넣으면 안되겠다는 각오가 먼저 들었다. 다이어트 때처럼 고구마와 계란, 샐러드만 먹진 않지만, 지금도 먹는 양과 시간은 기민하게 조절하고 있다. 그렇게 반 년을 넘게 유지했다. 이 정도면 조심스레 성공한 다이어트라고 표현해도 될 듯하다. 


 다이어트 기간동안 생긴 습관이 체중계에 자주 올라가는 것이었다. 일단 아침에 씻자마자 속옷만 입은 상태로 체중을 잰다. 그리고 자기 전 다 씻은 상태에서 속옷만 입은 상태로 체중을 잰다. 하루 단위로 500g 정도씩의 무게가 빠지는 게 숫자로 보이면 더더욱 다이어트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끼니 후 올라가고, 화장실을 다녀오면 올라가고, 운동 후에 올라가며 계속 확인했다. 원래는 체중계를 그리 자주 사용하지 않았었는데, 다이어트 기간동안 생긴 습관 때문에 아침 저녁으로 체중을 재는 루틴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평범한 일상을 유지한다는 가정 하에, 체중계에 찍히는 숫자는 저녁이 아침보다 무겁다. 그리고 저녁 식사를 일찍 끝내고(야식은 당연히 없다), 잠을 늦게까지 잘수록 체중은 훨씬 낮게 나온다. 많이 자면 살이 빠진다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나의 경우는 저녁보다 아침이 300~600g정도 가볍더라. 큰 숫자다. 정수 뒷자리가 바뀔 수 있는 유의미한 양이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는 아침이나 저녁 중 한번은 체중을 재는 걸 까먹기 시작했다. 자려고 눕고 나서야 '아, 몸무게 안 쟀네'라는 생각이 들거나, 아침에 출근하면서 '아, 몸무게 안 쟀네'라는 생각을 하는 경우가 종종 생겼다. 오늘도 아침에 체중 재는 걸 잊고 출근했다. 

 물론 이렇게 놓친다고 하더라도, 그 다음 개체량 측정 때 체중이 확 늘어있진 않다. 이미 내 몸은 다이어트의 습관이 자리잡았고, 손도 입도 음식을 무분별하게 탐한다거나 하지 않는다. 스마트워치로 틈틈히 걷는 양을 체크하고, 하루 만 보 이상은 무슨 일이 있어도 걷는다. 

 한창 고구마와 계란만 먹던 때는 '내가 이 정도로 고생했으니, 그 결과를 100g 단위로라도 확인해야겠다'는 결과값에 대한 집착도 더해져서 그렇게 자주 체중계에 올라갔던 게 아닐까.


 이렇게 가정하면 지금의 나는 행복하기 그지없다. 체중계에 올라가는 걸 까먹더라도, 걱정하지 않는 수준에 다다른 셈이다. 체중계로 숫자를 똑 부러지게 보여주지 않아도, '잘 유지되고 있다는 걸 나 스스로가 알고 있어'라는 자신감. 집착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자신하는 여유의 길에 들어섰다. 

 종종 까먹을 수 있겠지만, 그래도 아예 체중계에서 눈을 떼진 않으려 한다. 배고파서 침을 질질 흘리면서도 백 걸음 천 걸음을 더 걷던 70kg대의 서인석을 기억한다. 그 고생이 아까워서라도, 집착까진 아니더라도, 체중계는 확인하련다. 꼭 다이어트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일상 속에서 점점 찾기 힘들어지는 고진감래의 생생한 흔적이라는 걸, 스스로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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