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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인석 Jul 23. 2022

서울 개와 지방 개

TEXTIST PROJECT

 20분 산책거리를 요롱이와 함께 나가면 40분이 걸렸다. 요롱이는 지나가는 사람이 있을 때마다 그들의 복숭아뼈 근처에 코를 댔다. 그는 지나가는 무명의 모두에게 인사하고 싶어했는데, 요롱이의 또랑또랑한 눈과 점잖으면서 예쁘장한 외형을 보고 그냥 지나가는 사람은 잘 없었다. 그렇게 모두에게 자신의 자태를 뽐내고, 사람들의 쓰다듬을 받고 돌아오느라 산책시간은 두 배로 늘 수 밖에 없었다. 

 요롱이만 그랬던 건 아니다. 동네를 걷다보면 가끔 요롱이 정도로 예쁘진 않지만 올망졸망한 강아지들이 뽈뽈뽈 자기 주인을 따라 산책을 하고 있었다. 그들 또한 내가 옆을 지나가면 내 발목 근처의 냄새를 맡고 나와 눈을 마주치며 꼬리를 흔들었다. 그들은 대부분 짖지 않았지만, 눈으로 명확하게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 예쁘지? 쓰다듬고 싶지?' 사람인 나는 그들의 유혹을 이길 수 없고, 그들은 내 쓰다듬에 더 맹렬하게 꼬리를 흔든다. 주인이 줄을 잡아끌면 그제서야 제 갈길을 쫓아 뽈뽈거리며 멀어진다.


 내 편견일까. 서울 생활을 시작하고 가장 크게 느낀 차이는 개들의 행동이었다. 내가 울산에 살던 때보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의 숫자는 크게 늘었다. 동네를 걸을 때면 사람 반 개 반이다. 한 인간이 두 세 마리의 개를 데리고 다니는 경우도 흔하고, 유모차에 태워진 개도 많다. 이렇게 많은 개들 중 발목에 코를 대러 오는 개들을 본 기억이 드물다. 그들은 항상 코를 정면으로 또렷이 치켜든 채, 주인과 안전거리를 유지하며 착착착 잰걸음으로 지나간다. 개와 눈이 마주쳐도, 그저 쳐다보고 지나갈 뿐 멈추는 일이 드물다. 개들도 서울개들은 많이 바쁜 것일까, 아니면 정이 없는 것일까. 

 혹은 세월이 십 수 년 흘러서 개들조차 MZ 세대로 변한걸까. 철저히 개인주의적인 그들은 쉽사리 쓰다듬을 허용하지도, 기다리지도 않는다. 주인 아닌 인간이 손을 내밀어야만 성향을 알 수 있다. 크게 으르렁거리며 짖는 걸 굳이 확인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나도 그저 눈만 마주치고 손을 내밀지 않은 채 지나간다. 


 거리의 사람들은 참 바쁘다. 나 혼자 두리번 거리고 있다. 길을 관찰하고 사람들을 구경한다. 오리들이 냇가에 뛰어드는 걸 보고 참새들이 과자부스러기를 주워먹는 걸 본다. 서울 사람들은 앞만 보고 빠르게 지나간다. 혹은 휴대폰에 코를 박고 빠르게 뭔가를 쓰고 있다. 나만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린다. 

 그렇게 서울은, 개도 사람도 홱홱 지나가버린다. 지방에서 온 나만, 여기저기 두리번거리고 즐거워하고 불안해하며 어떻게든 서울 땅에 발이나마 붙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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