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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인석 Jul 24. 2022

없어진 장소

TEXTIST PROJECT

1.

 학군사관후보생이라는 명칭으로 처음 버스에 실려 학생중앙군사학교에 갔을 때는 겨울이었다. 첫 훈련은 아무 정신이 없었고 마냥 힘들었다. 뭘 했는지도 모를 정도로 이것저것 쫓겨다녔는데도 불구하고, 시간은 잘 가지 않았다. 훈련을 철책의 교문 밖으로 나간 적이 몇 번 있었다. 나는 이 곳이 어딘지 전혀 감이 없었다. 그저 훈련이 힘들 뿐이었다. 기억나는건 교문 바로 앞에 녹색 이정표가 있었고, 그 이정표는 '서울'의 위치를 알려주고 있었다.


 서울-경기권이 철저히 타지인 사람에게 '서울'이라는 단어는 막연하다. 딱 지도에서 본 만큼, 성남과 서울이 붙어있는 곳이라는 정도만 알 뿐, 학군교가 성남에서 어느 위치에 있고, 서울과 얼마나 가까운지 가늠해 볼 새가 없었다. 마지막 4학년 훈련때도 마찬가지였다. 훈련 커리큘럼 중 지도와 나침반만을 가지고 남한산성을 헤매야 되는 코스가 있다. 이 때도 나는 '이 곳이 병자호란의 그 남한산성이구나, 책으로 그렇게 봤던.' 이라는 생각 정도가 다였다. 남한산성이 서울과 얼마나 가깝고, 성남의 어디인지 알지 못했다. 


2.

 당시 학군교 밖으로 구보를 하거나 행군을 나갈 때면 다소 무서운 풍경이 중첩됐다. 시멘트 벽마다 붉은 페인트 글씨로 '유치권 행사 중' 같은 문구들이 자주 보였다. 부수다 만 건물들이나 폐기물이 쌓여있는 공터를 어렵지 않게 마주했다. 어쨌든 누구의 군생활이나 그러하듯, 나는 그런 것들에 많은 상념을 할애할 틈이 없었다. 내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그 장소들과 얼마나 더 마주할지 전혀 감이 없었다. 

 아마 서울-경기에 오랫동안 익숙했던 이들은 학군교에서 2주, 4주 훈련을 하는동안, 나같은 사람보다 좀 더 편안했을까. 적어도 이 곳이 어디인지를 아는 상태에서 머무른다는게 어느 정도로 위안이 되는지 나는 잘 알지 못한다.


3.

 오랜 시간을 돌고 돌아 학군사관후보생이라는 명칭을 뗀지도 한참 지나고, 군 생활까지 마친 뒤, 수 년이나 더 흘려보내고 문득 학군교라는 이름이 생각나 그 곳의 흔적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내가 학군교를 찾아보기 시작한 이유는 그곳이 이제는 없기 때문이다. -다른 훈련 장소였던 논산 훈련소를 찾아보지 않는 이유와도 일치한다. 논산 훈련소는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학생중앙군사학교는 이제 충청도 괴산이라는 곳에 자리잡았다고 한다. 나는 이 사실을 몇 년 전 뉴스로만 봤다. 그러면 내가 훈련을 받고, 밥을 먹고, 구르고, 자고, 미래를 향한 이상을 키웠던 그 장소는 어떻게 된걸까. 그제서야 찾아보기 시작했다.

 군사 주소들은 기밀이다. 그렇기 때문에 상세한 주소는 남아있지 않다. '사서함'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그래도 내 기억에 '성남시 수정구 창곡동'이라는 주소까지는 남아있다. 이 주소는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에 네이버 지도에 검색하는게 가능하다. 창곡동이라는 곳의 행정 범위가 매우 넓어서 그 길들 하나하나를 뒤지는게 어려울 뿐이다. 


 나는 그렇게 창곡동을 찾아본 뒤에야 아득한 가까움을 본격적으로 체감하고 말았는데,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과 창곡동은 직선거리로 3km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또 평상시 운동하는 코스 끄트머리부터 시작하는 남한산성이, 바로 그 남한산성이라는 사실도 '지도가 아닌 현실로' 본격적으로 깨달았다. 섬뜩했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상세한 위치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4.

 구글과 네이버의 시대에 특정 위치를 찾는건 쉬울 줄 알았지만, 오만이었다. 특히 재개발되는 대단위의 도시사업에는 아예 도로 구조까지 싹 바뀌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점을 간과했다. 내가 찾으려는 '성남시 수정구 창곡동 어딘가'에 위치한 학생중앙군사학교가 정확히 이 케이스였다. 지금의 위례신도시다. 그 때의 도로는 흔적조차 없다. 

 결국 창곡동이라는 넓은 행정구역을 네이버지도의 거리뷰로 뒤져야만 했다. 나는 창곡동 내부를 계속 거리뷰로 뒤지며 과거의 사진과 대조해보는 반복 작업을 지속했다. 그러던 중 철조망이 둘러진 벽이 보이는 길을 찾아냈다. 당시의 학군교는 다른 여러 군부대들과 함께 붙어있었다는 사실이 기억났다. 그렇게 길을 따라 마우스와 키보드를 누르다가 결국 2010년 5월의 학생중앙군사학교 거리뷰를 찾아낼 수 있었다. 

 2010년에는 7월에 하계훈련을 이 곳으로 입영했다. 그러면 찍혀있는 거리뷰는 내가 훈련하기 2개월 전일 것이다. 기분이 이상했다. 


5.

 지난 일요일, 영화를 보고 왔다. 집에서 직선거리로 3km 정도밖에 안떨어진 영화관이다. 이 영화관 앞에서 사진을 하나 남겼다. 바로 이곳이 스물두살, 스물세살의 내가 훈련을 받았던 장소다. 이렇게 가깝게 있었다. 


 12년이 지났다. 성남시 수정구 창곡동에 학군교는 흔적도 없다. 같이 훈련을 받았던 우리 동기들은, 모두 같은 짧은 머리에 같은 단복, 같은 군복을 입었었다. 이제 우리의 그 흔적 또한 희미하다. 이곳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남았을까. 20kg의 군장을 메고 여기저기를 굴렀던 일련의 공간들은, 이제 전혀 상관없는 아스팔트와 철골 건축물들로 채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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