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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인석 Jul 17. 2022

버려지진 않은

TEXTIST PROJECT

 최근 세 개 정도의 글을 썼는데 그 어떤 것도 게재하지 못했다. 어차피 거의 보는 사람이 없는 공간이기에 게재의 여부는 큰 상관이 없겠다. 문제는 완성의 여부. 누가 보든 안보든 완성이 되어야 게재가 되는데 세 편 모두 어딘가 모자라고 답답하다. 분명히 쓰는 동안은 물 흐르듯 썼는데 막상 다 된 밥을 먹어보니, 이건 뭐 질은지 설익었는지도 판단이 안된다. 아무리 다시 쭉 퇴고를 해봐도. 아예 상한 밥 같기도 하다. 

 글을 쓰다보면 성에 차지 않는 경우야 많다. 어찌저찌 꾸역꾸역 퇴고에 퇴고를 거듭해서 '이건 최고야!'까지는 아니어도 '완성은 됐네' 단계가 되면 공개된 공간에 게재하는데, 최근 이 세 놈은 모두 더 나아가질 않는다. 또 희안한 건 보통 글이 잘 써지면 제목이 고민되거나, 주제는 번쩍하고 빠르게 정했지만 막상 글은 안 써지거나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세 놈은 막상 제목과 본문 모두 바람에 노 젓듯, 쓰는 동안에는 신나서 백지가 채워졌다는 점이다.


 글을 저장하는 폴더에는 많은 txt파일이 쌓여 있다. 세어보진 않았는데 그래도 이백 개는 넘지 않을까 싶다. 개별 글 분량이 짧은 에세이가 이들 중 대다수일 텐데, 거의 1/3정도는 파일명에 (미완)이라고 붙어있다. 완성되지 않았지만 더 써지지도 않아서 그 상태로 저장해 둔 녀석들이다. 아주 가끔 이 녀석들을 꺼내서 어떻게든 완성해보려 하는데.. (미완)이 괜히 (미완)이랴. 

 그러면 휴지통으로 보내면 될 것을 왜 그렇게 쌓아 놓기만 하는가 하면, 막상 그 (미완)들을 열어보면 뭔가 하나는 마음에 들기 때문이다. 주제든 제목이든 혹은 비록 완성되지 않았지만 본문 중 몇 문장만이라도. 최근 작성된 세 편의 에세이도 이렇게 몇 번을 반복해서 다시 읽고 고치고 또 읽고 하다가, 시간이 많이 지체되면 결국에는 파일명에 (미완)이 붙은 채로 저 폴더로 이동할 것이다. 그러니깐 나는, 콰광 하고 떠오른 글들을 '제발 이 글은 파일명 끝에 (미완)이 붙지 않길!'이라고 소망하며 쓴다. 


 아주 드문 경우지만 파일명에 붙어있던 (미완)이 빠지는 경우가 있다. 그 녀석들은 좀 더 기억에 잘 남는다. 예를 들어 한 이틀 골머리를 앓고 문장을 밀고 나가다가 더 이상 써지지 않아서 방치한 글이 있다고 치자. 이 글은 한동안 방치되다가 바탕화면을 정리할 때 결국 (미완)꼬리를 달고 폴더 안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버려지진 않은' 상태로 그 폴더에 오래 머무른다. 세 달 정도 지났다고 가정하자. 그 때 쯤 나는 어쩌다 우연히 그 (미완)을 보고 다시 써보는데.. 잘 써진다! 하면 이 녀석은 (미완)을 떼고 온전한 제목의 파일명을 가진 채, 어딘가로 얼굴을 내밀 수 있다. 내가 이 글을 쓰는데 걸린 실질적인 총 시간은 다 합해봐야 몇 시간 정도겠지만, 체감상 그 글을 쓴 시간은 세 달 플러스 알파처럼 여겨지게 된다. 


 어쨌든 그저께 어제 쓴 이 세 개의 글을 오늘 또 다시 손을 봐야겠다. 그냥 글을 좋아할 뿐 재능이라곤 없는 습작생의 한탄이다. 글들에게 생명이 있다면 '버려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려나. 완성되지 못한 글 하나하나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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