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휴게소

소설 연재

by 서인석

공소에서의 짧다면 짧은 4일동안 남겼던 영상과 사진, 기록들은 그 뒤에 이어진 관측의 나날들에 여유를 남겼다.

이를테면 '오늘 (어떤 이유로든) 관측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도 괜찮다'는 마음가짐 같은 것들이다.

공소에서 건진 별과 관련된 데이터들의 용량은 상당했다. 그리고 공소를 떠나자마자 자리잡은 스팟은 관측에 그다지 좋지 않은 장소였다. 그럼에도 굳이 스팟을 이동하지 않고 캠프를 설치했다.


밤이되어 육안과 망원경으로 확인했을 때 좋은 관측 스팟이 아니라는 결론이 도출된다면, 미련없이 공소에서 촬영한 데이터를 꺼내어 딥스카이 보정, 파일 정리, 영상 편집을 하면 된다. 그 정도로 공소에서 쌓은 데이터들은 버릴 것이 없었다.


그래도 여름 막바지의 하늘 상태에 비해 가을 중반부를 넘긴 지금의 하늘은 웬만해선 구름을 허락하지 않았다. 애국가의 '높고 구름없이'는 10월 중순 이후부터 11월 초입까지를 가장 잘 설명한 가사임에 틀림없었다.


뭐든 좋았다.

하늘이 좋은 날이면 관측을 하면 되었고, 하늘이 안좋은 날이면 누적된 데이터로 해야할 일들이 그만큼 있었다.



블로그의 댓글을 좀 더 신경써서 확인하는 습관도 갖게 됐다. 처음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을때는 '부러움'으로 점철된 표현들만 아주 가끔 달릴 뿐이었기 때문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하지만 별 보는 동호인들이나 천문학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이 블로그가 은근히 화제가 된 모양이다. 그들은 망원경이나 렌즈, 보정 프로그램의 종류를 묻곤 했고, 때로는 내가 아는 것보다 훨씬 방대한 지식으로 꽤 도움되는 훈수를 두기도 했다. 실제로 망원경과 카메라를 사용할 때, 몇몇 댓글들이 남겨준 요령을 활용하여 그동안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결과물을 뽑아낸 적도 있었다.


이렇게 되자 자연스레 나도 댓글들에 적극적으로 대댓글을 달게 됐다. 블로그 댓글란을 통해 정보의 교류가 이루어지고 촬영 성과물이 견고해지는 선순환이 이루어졌다.



스팟을 조금 크게 옮겨보기로 결정했다. 타이어를 꼼꼼히 밟아보고 출발했다. 내비게이션으로 찍은 스팟은 고속도로를 지나게 되어 있었다. 고속도로에 올라탄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휴게소가 보였다.


노숙인들에게 휴게소는 소중한 공간이다.


평일 오전 시간대라 한산했다. 양 옆에 차가 없는 빈 공간에 주차를 한 후, 네 문과 트렁크까지 활짝 열었다. 그리고 먼지를 차 밖으로 털어냈다.


나는 비교적 쾌적하게 이 생활을 이어가고 있지만 차의 먼지를 밖으로 터는 행위는 아무때나 할 수 없는 일이다. 보통 캠프를 설치하는 위치가 산 어딘가이므로 사방이 흙인 공간이다. 잘못 털었다간 오히려 먼지가 차 안으로 들어오는 역효과가 난다.


먼지를 털어낸 후 트렁크에 단정히 모아두었던 쓰레기들을 양손에 들고 휴게소 쓰레기통에 분리해서 버렸다. 냄새나는 쓰레기가 발생되지 않도록 일상을 유지하고 있지만, 사람이 살면서 쓰레기가 안나올 수는 없다. 휴게소처럼 눈치보지 않고 편하게 분리수거 할 수 있는 곳도 많지 않다.


다시 운전석에 자리잡고 휴대폰을 꺼냈다. 사야되는 품목들을 쭉 메모했다. 다 살건 아니다. 적당히 저렴한 가격인 것들만 미리 구비해 두고, 급하지 않거나 많은 양을 구매해야되는 물품은 마을에 진입했을때 한번에 사는게 낫다. 껌과 초콜릿을 몇개 사서 차에 두기로 했고, 타이레놀이나 가스활명수 같은 상비약도 적었다.


차에서 나오기 전, 인터넷창을 열었다. 이 휴게소를 검색했다. 여기는 '황태정식'이 맛있다고 나온다. 평상시에 맛집을 찾아다니거나 할 수 없기 때문에, 이렇게 휴게소에 들르는 경우는 사치아닌 사치스런 식사를 할 수 있다. 휴대폰 창을 닫으면서 계기판을 보니 주유도 해야하는 시점이다. 마침 알뜰주유소가 있는 휴게소다.


그러면 이제 여기서 할 일이 쭉 정리된다.


차 먼지털기(완료), 쓰레기 버리기(완료), 식사 하기, 식사 후 간단히 필요한 물건 구비하기, 화장실 들르기, 커피 한잔 사기, 차에 돌아와 낮잠 한 숨 자기, 나가면서 주유소에서 기름 보충하기.



요즘 휴게소는 옛날 휴게소가 갖고 있던 시장판스러운 분위기가 없다. 프랜차이즈 가게들도 많이 들어와있다. 싫지 않다. 깔끔해지고 정갈해진 휴게소는 안정감을 주기도 한다. 프랜차이즈 카페가 들어와 있다는 사실은, 커피를 마실 때 위생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맛의 편차도 크지 않다. 커피향에 이끌리듯 따라가니 프랜차이즈 카페 앞에 서 있다. 아메리카노를 받아 야외의 의자에 앉았다.


휴게소는 한산한 편이었지만 소리는 시끄러웠다. 고속도로의 차들이 지나가는 소리가 휴게소 전 구역을 뒤덮는 느낌이다. 커피를 한모금씩 넘기며 차들을 구경했다. 들어오는 차, 나가는 차.

그리고 사람들을 구경했다. 이 시간에 이 도로의 이 휴게소에 오게 된 사람들 모두 각자의 사연과 사정이 있겠지.

커피는 적당하게 깊고 맛있었다.



필요한 일들을 대강 정리하고도 나는 휴게소를 떠나지 않았다. 아직 어디로 이동할지 정확한 스팟을 정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냥 조금 더 시간을 여유롭게 사용하고 싶었다.


한층 깨끗해지고 내부 공기가 맑아진 차 안에서 운전석을 뒤로 눕혔다. 창문을 손톱만큼 내려놓은 후 휴대폰으로 잔잔한 피아노 연주곡을 재생했다. 저절로 눈이 감겼고 잠에 빠졌다. 피아노 멜로디가 꿈 속에서도 맑게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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