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십자가가 있는 관측 기지

소설 연재

by 서인석

두 달이 넘는 관측 생활을 통틀어, 낡은 공소는 어떤 캠프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한 관측 스팟이었다. 모든 것을 갖춘 곳, 완벽한 곳이었다. 감히 '관측소' 혹은 '관측 기지'라는 호칭을 붙이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계속 날씨가 맑았던 기운을 이어가듯 공소 옥상에서의 촬영은 군더더기가 없었다. 찍고 싶은 성운에 카메라를 고정해 두고 회관 내부로 들어와 보일러를 켜고 몸을 지지며 잠들었다.


해가 뜨기 직전, 알람을 듣고 다시 옥상으로 올라가서 영상을 확인했을때, 이정도면 NASA에 보내도 되겠다는 자신감까지 차올랐다. 유튜브나 구글을 검색해서 나오는 아름다운 밤 하늘 사진들에 뒤지지 않을 정도의 결과물.


어딘지 알 수 없는 산 속에서 혹시 뭐라도 잘못될까 전전긍긍하며 찍은 영상들은 오히려 실패한 적이 많은데, 덜렁 망원경과 카메라를 옥상에 설치해두고 방에서 자다가 일어나서 확인한 영상은 완벽에 가깝다니.


노트북으로 촬영 내용을 대강 정비한 후, 회관 내부를 싹 청소하기로 했다. 해가 슬며시 얼굴을 내밀었고, 회관 내부는 햇빛이 약하지도 강하지도 않게 딱 기분좋을 정도로 들어왔다.


모든 창문을 열었다. 빨래를 세탁기로 돌린 후, 덮고 잤던 이불을 들고 옥상으로 올라가 탈탈 털었다. 그리고 건조대에 널었다. 내부로 다시 돌아와 한 구석에 있던 청소기를 켰다. 사실 회관 내부는 먼지한톨 없을 정도로 깨끗했다. 씽크대 배수구조차 아무것도 끼어있지 않다.

조금 아쉬웠다. 이 장소에 보답할 수 있는게 그다지 없는 것 같다. 작은 냉장고 내부조차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하다못해 견출지로 각 통에 들어있는게 어떤 음식인지, 언제 만든건지 메모되어 있었다.

TV 뒤를 손가락으로 스윽 훑어보았는데도 먼지 한톨 없다. 대체 이 곳을 왔다갔다하는 천주교 신자들은 어떤 사람들이길래.



해는 맑고 밝았다. 이제 아침 저녁은 쌀쌀한 때가 됐는데, 햇빛의 강렬함이 '춥다'라는 단어가 아직은 입 밖으로 나오지 않도록 막고 있었다.


회관 밖으로 나왔다. 공터에서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몸이 깨어나는 것처럼 기분좋게 풀어졌다. 시계를 보니 이제 여덟시를 조금 넘겼다. 조금 자는게 나으려나 싶어서 방으로 들어갔다. 소파에 몸을 뉘였더니 기분좋게 잠이 쏟아졌다. 공소로 들어온 후 '기분좋게'라는 표현 말고 다른 표현을 쓸 일이 없는 듯 했다.



꿈을 꾼 것 같은데, 문 두드리는 소리에 현실로 돌아왔다.

'누구지?'

약간 긴장한 채로 문을 열었더니 한 할머니가 큰 냄비를 들고 문 앞에 서 있었다.


"여기 며칠 계신다믄서? 곰국 끓였는데. 이거 드시게."

냄비는 상당히 무거워 보였다. 황급히 받아들고 뭐라 대답하려 했지만, 그럴 틈도 없이 할머니는 몸을 돌려 사라졌다.

"고맙습니다!"

이미 할머니의 뒷모습만 멀어지고 있었다.


가스레인지 위에 냄비를 올려두었다. 눈곱을 떼며 회관 내부에 있는 벽 시계를 확인했다. 오전 열한 시.


세탁기는 제 할 일을 마치고 멈춰 있었다. 빨래를 널고 밥을 먹으면 되겠구나. 부엌에는 쌀도 깨끗이 보관되어 있었다. 이토록 과분한 장소라니.


어제 신부가 여기 묵으라고 했을 때, 내가 생각했던 감사함은 오로지 '물'과 '잠'에만 닿아 있었다. 다른 의식주를 따로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기대한 적도 없는 모든 것이 갖춰진 곳에 몇시간 머무르니 노숙생활만 하던 이에게는 이루 말할 수 없는 풍성함이 생생히 와닿았다.

라면은 그동안의 생활에서 가장 적당하고 영양가 있는 식사였는데, 당장 오늘 점심은 곰국을 먹을 판이다. 김치도 받아오지 않았던가. 곰국에 밥에 김치라니. 이 생활을 시작하면서, 식당에 가지 않는 한 이런 끼니를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문 두드리는 소리는 두 번이나 더 났다.

다른 할머니가 큰 그릇에 도토리묵을 가져다 주었다. 이 할머니는 회관 내부를 두리번 보더니 "뭐 반찬 필요한거 있으면, 저 아래쪽 파란 지붕 있는 집이 우리 집이니께, 거기로 오셔."라며 돌아갔다.

그 뒤에 10분이 지나지 않아서 온 또 다른 할머니는 김치전을 주고 돌아갔다. 할머니는 돌아가면서 "양이 적을거 같은데.."라고 계속 되뇌이며 돌아갔다.


이불을 방에 내리고, 다 돌아간 빨래를 옥상에 널은 후, 밥이 다 되어 점심을 차렸다. 밥과 곰국, 냉장고에 있던 멸치와 김치, 그리고 아까 받은 김치전과 도토리묵을 조금씩 그릇에 내어 식탁에 올려놓았다.

'몸둘바를 모르겠군.'


이 생활을 시작한 후, 가끔 식당에 들를 때도 밥에 그다지 감흥을 가져본 적은 없다. 하다못해 호텔에서 묵을 때의 코스 식사도 사진을 남기지 않았다. 손에 닿지 않는 별들은 수십 기가씩 매일 밤마다 찍고 있으면서 목으로 넘어오는 식사는 사진도, 기억도 잘 남지 않는다. 그런데 여기서는 기분이 오묘하다. 차려놓은 식탁을 찍고 싶어졌다.


그렇게 사진에 점심식사를 담고 식사를 시작했다. 이 식사의 맛은 굳이 글로 설명하지 않겠다. 글로 어떻다 저떻다 표현하는게 오히려 누가 될지 모른다.



공소는 한번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는 경우는 없었다. 하지만 마을이 조용한 것에 비해 비교적 수시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방문했다. 첫 밤을 보내고, 둘째 날은 할아버지 두 분이 정오를 조금 지난 시간에 와서는 두어 시간 화투를 치다 가기도 했다.

또, 첫째 날 그랬던 것처럼 과일이나 반찬을 주고 가시는 분들도 있었다.

첫 날 만난 신부는 셋째 날까지도 보지 못했다.



사흘간 공소에서의 촬영은 상당히 성공적이었다. 3일 모든 날의 결과물이 그 전 두달간 찍었던 괜찮은 사진들보다 훨씬 나았다.


공소가 다른 집들보다 살짝 올라와 있었기 때문에, 꽤 높은 언덕에서 촬영하는 듯한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게다가 산속과는 달리 건물 옥상은 지대가 안정되어 있다는 장점도 있었고, 흙먼지로부터도 비교적 안전했다.

마을이라 불빛을 걱정했었지만, 기우였다. 산 속 마을의 저녁은 해가 빨리 지는만큼 밤도 빠르게 찾아왔다. 여덟시, 아홉시만 되어도 공소에서 보이는 거의 대부분의 집들이 불을 껐다.


정리하면 이 곳은 별을 보겠다는 나그네에게 그 어떤 장소보다 매력적이었다. 주민들은 친절하다 못해 끊임없이 배를 불려주었다.

이제 거의 70일이 다 되어가는 시점. 신부에게 양해를 구하고 여기서 한달 정도를 머무를 수 있다면 어떨까. 생활은 문제가 없다못해 풍족하고 쾌적하다. 촬영도 마찬가지. 하다못해 여기서 생활하면 택배도 받을 수 있을 정도다. 망원경 장비나 전자장비를 추가로 주문하여 진짜 관측 기지처럼 셋팅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사흘째 밤 촬영을 마치고 촬영 결과물을 정리하면서 살며시 마음을 정리했다.


내일 아침 잠을 잔 후 단호하게 떠나기로.


***


이 장소와 마을의 대가없는 친절을, 부담없이 받을 수 있는 마지노선은 딱 사흘까지다. 내 마음이 그렇다.

여기서 더 머무르면 과하게 미안해지거나, 과하게 감사해야 한다. 혹은 불필요하게 사람들과 정을 붙이게 된다. 온정은 따듯하지만, 자유로운 생활을 옭아 맬지도 모른다.

섣부른 걱정일 수 있다.


간단하게 생각해보자. 대가 없는 친절은 없다. 하다못해 미안함과 감사함에 종교를 갖게 될지도 모른다. 내가 바라는 모습은 아니다. 미련을 두지 말자. 딱 감사한 정도로 이 장소에 대한 마음을 두고 돌아서자.. 배불러지지 말자..


아침 열시 좀 넘어서 차에 촬영 장비들을 실었다. 옥상에 널어두었던 빨래들을 회관 내부로 가지고 내려와 개켰다. 빨래는 햇볕을 받아 바짝 기분좋게 잘 말라 있었다. 차 안의 먼지도 훌훌 털어냈다.

이 생활을 시작한 이후로 차가 이틀 이상 움직이지 않은건 처음이다. 차는 공소에 주차된 이후 단 한번도 움직이지 않았다. 차에게는 꿀같은 휴식이었던 셈이다. 온갖 오지만 골라서 돌아다녔으니 이 정도 휴식은 충분히 받을 자격이 있다.


마을 반대편에서 낡은 차 한대가 공소로 향해오는게 보였다. 차는 공소 안으로 들어와서 팰리세이드 옆에 자리를 잡았다. 운전석에서 첫날 만났던 신부가 내렸다.


신부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인사하며 물었다.

"가시게요?"

나는 꾸벅 인사하고 그렇다고 답했다.

"오늘도 일하러 오셨어요?"

"아뇨, 오늘 주일이라. 미사 있어서요."

일요일이었다.

"좀 편하게 지내셨나 모르겠네요."

"제가 별 보러 나온 뒤로.. 가장 편한 생활을 했습니다."

신부는 웃어보였다.

나는 다시 떠날 채비를 했고, 신부는 성전 건물로 가서 자물쇠를 열었다.


짐 정리는 더 걸리지 않았다.

어떻게 인사하고 떠나야 되나, 공소 내부를 어슬렁거리며 돌았다. 성모상 뒤쪽으로는 가을꽃이 몇 송이 피어 있었고, 그 뒤로 들꽃들이 언덕까지 이어져 있었다. 살랑거리는 바람에 들꽃들은 춤추듯 흔들렸다.

아침에 내려놓은 커피만 다 마시고 가자. 커피 도구만 씻고 떠나면 된다.

회관 안으로 들어가 커피를 들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공소 마당을 걸으며 한모금씩 카페인을 목 뒤로 넘겼다.

대체 지금 이 기분은 뭘까.

한걸음씩 걸었다.


자유롭다? 그건 이 생활을 시작한 뒤로 항상 그랬다.

행복하다? 이것도 마찬가지다. 체력적으로 힘든 날도 있었고, 관측에 실패한 날도 많았지만, 그런 날들마저도 행복한 감정에 포함된다.

즐겁다? 여유롭다? 아니다. 아주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딱 지금에 맞는 표현이 뭐가 있을까.


한 손에 커피를 들고 반대쪽 손으로 골반을 두드리며 풀어주었다.

마을 집들을 세어보다가 회관의 외관을 눈으로 훑었다. 깨끗한 창 안으로 내가 사흘을 먹고 잤던 실내가 눈에 들어왔다. 고작 3일, 떠나는 오늘까지 고작 4일인데, 의식주에 관측까지를 모두 충족시켰던 이 장소가 어느새 내 집 같았다. 낡았지만 깨끗한 공소는 따스한 공간으로 각인됐다. 호텔의 흰 이불보다도 더욱 푹신한 감정으로 온 몸이 기억하게 됐다.

창 안으로 회관 안의 달력이 눈에 띄었다. 달력의 큰 그림에 '평화'라는 돌판 사진이 인쇄되어 있었다.


평화롭다..

이곳에서의 3박 4일. 평화롭다가 딱 맞는 말이다!

드디어 적확한 표현을 떠올렸다는 확신에 소름이 돋는게 느껴졌다. 고개를 끄덕이며 빈 컵을 들고 회관 안으로 들어가 컵과 커피 도구들을 깨끗이 씻었다. 밖으로 들고 나와 탈탈 턴 후 차에 실었다.


평화롭다.

공터를 걸으며 '어떻게 떠날까' 고민했던 답도 어느정도 정리됐다.


조수석 대시보드를 열었다. 엄마가 준 돈들이 봉투 안에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나는 5만원짜리 두 장을 꺼냈다. 그리고 뒷좌석 가방 안에서 손을 휘저어 봉투를 찾았다. 혹시나 필요할 것 같아서 호텔에서 묵을때 비치되어 있던 봉투 몇장을 챙겨왔었다. 봉투 안에 돈을 넣어 성전 안으로 들어갔다.


신부는 제대 위에서 뭔가를 정리하고 있었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신부는 손을 들어 보였다.

"이제 떠나시나보죠?"

"예, 신부님."

"편하신만큼 계셔도 되는데. 원하시는 스케줄이 있을테니 일부러 붙잡지는 않겠습니다만.."

"아닙니다. 너무 감사했습니다. 여기 할머님들도 많이 챙겨주셔서.."

신부는 손사레를 쳤다. "누군가 여기 있는거 자체가 그분들께는 반가우셨을 겁니다."라는 말을 덧붙였다.

신부에게 봉투를 내밀었다.

"신부님, 제가 그.. 성당을 다니는 사람이 아니어서 어떻게 감사를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크진 않지만.. 어떻게라도 고마움을 좀 표현하고 싶어서요."

신부는 멀리 떨어지며 다시 손사레를 쳤다.

"이러려고 계시라고 한게 아니에요."

신부는 단호했다. 어떻게 해도 봉투를 받지 않을 태도였다.

옆에 무슨 바구니가 보였다. 아마도 헌금하는 통인 것 같다. 나는 재빨리 그 안에 봉투를 넣으며 신부에게 인사했다.

"너무 감사했습니다."


나는 도망치듯 성전 밖으로 나왔다. 신부가 쫓아와서 다시 봉투를 가져가라고 할까봐 후다닥. 나의 등 뒤로 "건강하세요!"라는 신부의 목소리가 울렸다.



성전 밖으로 나와 운전석에 올라탔다. 운전석에 앉은 것도 참 오랜만이다. 찬찬히 엑셀 페달을 밟았다. 차는 기다렸다는 듯 힘차게 앞으로 움직였다.

공소의 터를 벗어나고 마을의 집들이 보였다. 왼쪽 집에서 한 할머니가 외출 복장을 갖추고 대문을 나오고 있었다. 공소에 반찬을 주러 들렀던 할머니다.

차를 멈추고 운전석 창문을 내렸다.

"할머니, 덕분에 잘 지냈습니다. 저 이제 갑니다!"

할머니는 "조심히 가시게."하며 손을 흔들어보였다. 나는 다시 창을 올리고 출발했다. 왼쪽 백미러로 할머니가 보였다. 할머니는 성호를 그으며 공소 방향으로 뒤뚱뒤뚱 멀어졌다.


차는 조심스레 길을 밟으며 나아갔다. 곧 중앙선이 있는 길과 합류하는 지점이 나타났고, 다시 차는 오랜만에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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