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77일째

소설 연재

by 서인석

세상의 흔한 오빠들과 나는 크게 다르지 않아서 이런 말은 민망스럽다. 그래도 사실이기에 굳이 소개하자면, 동생은 속이 깊은 아이다.


말수가 많거나 표현이 애살맞거나 하진 않다. 하지만 첫째인 나보다 자주 듬직하다.

내가 이 생활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도, 동생은 별 말이 없었다. 건강 잘 챙기라는 말과 엄마에게 전화 종종 하라는 얘기 정도 전했다. 어른스런 동생의 권유를 그다지 잘 따랐다고 볼 순 없다. 전화를 한 기억은 많지 않다. 추석 정도만 확실하게 기억난다.

그래도 성연과 몇번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긴 했다. 동생의 메시지는 대부분 엄마의 이야기였다.


엄마는 2년전 위암 수술을 했다.

엄마의 상태는 많이 나아졌지만, 대부분의 암 환자들이 그러하듯 끊임없이 상태를 체크해야 했다. 엄마는 일상생활을 하면서 오히려 병원을 다닐 때보다 상태가 더욱 빠르게 회복됐다.


동생은 엄마와 한 집에 살고 있진 않지만, 가까운 곳에 있기 때문에 적어도 사흘에 한번은 엄마에게 다녀갔다.



그래서일까. 전화에 성연의 번호가 떴을 때, 당장 엄마의 걱정 먼저 들었다.

이 생활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 엄마는 지지하면서도 걱정했다. 먹는 것, 자는 것, 생활하는 것 모두. 하지만 말리지는 않았다.


생활을 정리하고 여수의 엄마 집에 들러서 식사를 할 때, 엄마는 서랍에서 봉투를 꺼내 주었다.

"엄마, 이게 뭐야. 나 돈 많아. 엄마보다 많을걸."

"알아. 그래도 밖에서 생활한다고 싼거 먹지 말고, 좋은거, 건강한거, 몸에 해롭지 않은거만 먹으라고 엄마가 여행비로 보태는 거야."

"엄마, 이렇게 주시지 않아도 내가 알아서 잘 먹어요."

"알아, 알아. 근데 엄마가 아프고 나니깐, 아는 거랑 느끼는 거랑 다른걸 알게되어서 그래. 꼭 엄마 말 들어주겠다는 약속으로 생각하고 챙겨가."


엄마는 암 수술했던 배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그리고 엄마는 굳이 나의 병원 생활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엄마는 엄마의 아픔만을 내게 교훈으로 전해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나의 병원 생활은 없었던 일로 넘기길 바랐던 것 같다.


더이상 거절할 수 없어서 그 돈을 받았다. 봉투는 묵직했고, 서울로 돌아오며 확인한 봉투 속에는 100만원이 들어 있었다.

봉투는 몇번 열지 않았다. 호텔을 갔을 때, 공소에서 나올 때 정도 돈을 꺼냈다. 큰 의미를 부여할 때만 사용해야 하는 필살기이거나 아이템처럼 느껴졌다.



"여보세요?"

"오빠. 잘 지내고 있어? 하늘은 잘 보고 있는거지?"

"응. 무슨일이야?"

"엄마가 다시 입원을 하셨어. 심각한 건 아닌거 같은데, 일단 입원먼저 하시라고 했어. 예민하게 반응하는게 나을거 같아서."


하긴. 성연의 깊은 성정을 감안했을 때, 나에게 먼저 전화를 걸었다는 건 분명 그만한 일이라는 뜻일테다. 그래서 나는 전화가 울릴 때부터 덜컥 겁을 먹었던 것 같다.


"어디가 안좋으시대? 어떤거야?"

동생은 침착하고 논리정연하게 대답했다.


"아냐아냐, 오빠가 걱정하는 것만큼 심한건 아닌거 같고. 최근에 배 쪽에 통증이 좀 있으셨나봐. 근데 엄마 성격 알잖아. 그 얘기를 하시길래 얼마나 그랬냐고 여쭤봤지. 일부러 말씀 안하고 오래 감추셨을까봐.

아냐아냐, 다행히 엄마도 수술한 경험이 있으셔서 그런지 감추신건 아니더라고. 동네 병원으로 갔더니 별건 아닐거라고 하면서도, 암 수술을 하셨었던거면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하더라. 당장 서울로 가는 것보다는 요 근처에 있는게 왔다갔다 하기도 편할 거 같아서, 전남대병원으로 갔어.

진료 받고 어쩌고 하다보니 당연히 검사도 몇 개씩 해야하고. 예전 의료기록이랑 대조도 하고 해야할 것 같아서 통원으로 왔다갔다 하느니 그냥 입원하자고 했어. 엄마도 병원비 걱정은 하셨지만, 내가 내 입장에서도 입원이 더 편하다고 말씀드렸더니 더 말리진 않으시더라고.

오빠한테는 절대로 말하지 말라고 하시더라. 오빠가 언제 그렇게 자기가 뭐 하고 싶다고 말했던 적이 있냐고. 삼십몇년만에 처음으로 '이거 할래'라고 한 일인데, 그걸 우리가 방해하면 안 된다고.

근데 내가 엄마 말 안듣고 알려주는 거야."


성연은 항상 침착하고 영민하고 빨랐다.

엄마가 암인걸 알았을 땐, 경과에 따르면 이미 꽤 병이 진전되어 있었고, 병을 키워놓은 상태였다. 수술의 경과나 회복하면서의 엄마 상태는 더할 나위 없을 정도로 빠르게 좋아졌지만, 엄마는 이 때를 기점으로 당신이 더이상 젊지는 않다는 걸 인정했던 것 같다.


엄마는 혼자서 항상 둘을 키워내야 한다는 정신적인 무장을 하고 살아왔고, 그래서 항상 정력적이었다. 우리가 성인이 된 후에도 엄마의 이 짐은 덜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건강 관리에 소홀했고, 병을 키우게 된 것이라고, 우리 남매는 그렇게 암묵적으로 결론짓고 있었다. 아마 엄마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번역 일을 하던 엄마는 회복이 다 된 후, 원래의 양보다 일을 절반으로 줄였다. 시청, 구청, 각종 기업들과 오랫동안 프리랜서 번역가로 관계를 유지해 온 엄마는, 아프기 전에는 들어오는 모든 번역을 기계처럼 받았다. 하지만 퇴원 이후의 엄마는 들어오는 일 중 할 수 있는 것만을 걸러내기 시작했다. 아마 엄마의 수입은 절반으로 줄었을 것이다. 대신 엄마만의 시간은 두 배로 늘었고, 음악을 들으며 걷거나 도서관에서 하루 종일 책을 읽거나하는 시간을 늘렸다.


엄마의 생활이 바뀐 후, 동생이 내가 머물고 있었던 서울에 겸사겸사 방문했을 때 성연은 술을 마시며 그런 얘기를 했었다.

"엄마가 안 아팠으면 좋았겠지만, 엄마가 지금 저렇게 지내는 모습을 보면.. 이렇게 엄마의 삶을 찾는 계기가 생긴게 오히려 감사하기도 해."

나도 십분 동의했었다.


"오빠, 내가 하루 단위로 검사 결과나 이런거 알려줄테니깐, 너무 걱정하지 말고 하려던거 잘 하고 지내고 있어."

"걱정이 안될 수 있겠냐?"

동생은 웃으며 말했다.

"이래서 엄마가 알리지 마라고 한거라고. 물론 검사들은 해봐야 알겠지만, 그렇게 심각하지 않아. 엄마는 병원에서도 표정도 밝고, 체중도 괜찮으셔. 나도, 엄마도, 혹시나 1%라도 뭔가 안좋은 일이 있을 때 빠르게 조치하고 싶어서 들어온거니깐."

"알았어. 병원비는? 좀 보태줄까?"

동생은 더 크게 웃었다.

"됐네요. 오빠보다 내가 더 벌걸?"

나는 동의하며 같이 웃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말라는 동생의 말을 나는 지킬 수 없었다.


***


성연의 전화를 받은 그날 저녁, 이상하게 망원경 지지대가 잘 고정되지 않았다. 구름도 유독 많았고, 바람이 좀 있는 편이어서 펼쳐놓은 지도나 별자리 사진들을 단단히 고정해야 했다.


카메라와 컴퓨터를 설치하면서도 머릿속에서 계속 엄마의 걱정이 떠나질 않았다. 엄마에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안 좋은 상황이 뭐가 있을지, 단 1%의 가능성이라도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을지, 의도하지 않아도 머리 속에서 자꾸 재생이 되었다.


사람의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완벽히 제거되지 못한 암 세포가 혹시 다른 곳으로 전이된 것은 아닐까. 혹은 오랜 투약으로 인해 다른 합병증이 생겼고, 아예 암도, 다른 합병증도 막을 수 없는 전조는 아닐까, 같은.



망원경에 눈을 댔다. A별을 기점으로 북서방향의 AA성운을 보고 싶었는데, 자꾸 구름이 걸렸다. 구름은 렌즈 바로 앞에서 흐물거리며 시야를 막아댔다. 렌즈와 눈만 막혀있는 건 아니었다. 머리속 또한 구름같은 생각들로 막혀있었다. 초점을 잡을 수도 집중할 수도 없었다.


펴놓았던 의자에 털썩 앉았다가 다시 일어났다.

일어났다 앉았다 하는 동안 노트북 화면에는 구름이 범벅이라 의미없는 별 사진들이 계속 녹화되고 있었다.



갑자기 나는 벌떡 일어나 조수석 문을 열고 대시보드 밑 서랍을 열었다. 엄마가 준 봉투가 있었다. 안에는 5만원권 12장과 1만원권 3장이 남아있었다. 심장이 마구 뛰었다.


나는 봉투를 빠르게 다시 대시보드에 넣었다. 몸이 신속하게 움직여지는걸 느꼈다.


30분 뒤, 캠프는 깨끗이 철수되고 차 안으로 모든 짐이 깔끔하게 정리됐다. 내비게이션으로 동생의 집을 찍었다.

오전 두시 사십분.



별 볼일 있었던 생활은 77일째, 76박으로 갑작스레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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