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물고 있던 스팟, 그러니깐 모험의 마지막 장소였던 곳은 강원도 인제군.
여기서 동생의 집이 있는 여수 어딘가를 내비게이션으로 찍으니 500km를 훌쩍 넘는 거리가 나왔다. 섬을 제외한 한반도를 거의 종단하는 듯한 경로. 무지막지한 거리와 경로에 비해 주행 시간은 그리 길게 뜨지 않았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 깜깜한 밤 중이라 그럴 것이다.
방랑 생활이 한참 흐른 뒤에도, 온갖 산 중턱을 뒤지며 캠프를 설치하던 일이나 밤하늘 별을 보며 황홀경에 젖던 일들은 꽤나 생생하다. 짤막짤막하긴 하지만 기록도 꾸준하기 때문에 기억을 되짚는 건 어렵지 않다.
그러나 이 긴 거리의 복귀 주행은 기억이 없다. 비슷한 거리를 이동했을게 분명한, 출발의 기억은 오히려 드문드문 떠오르는데 말이다.
아득한 밤 고속도로를 계기판도 제대로 보지 않은채 달렸지 않았을까, 짐작만 해볼 뿐이다.
세상의 아침이 시작될 무렵 성연의 집에 도착했다. 벨을 눌렀을 때, 화장기 없는 맨얼굴의 동생은 놀란 내색없이 눈을 비비며 문을 열어주었다.
성연의 집을 많이 와보진 않았지만, 올 때마다 깔끔하다고 느꼈다. 여전했다. 성연이야말로 언제든 모든 짐을 빠르게 싸서 어디로든 떠날 수 있을듯한 컴팩트한 삶을 살고 있었다.
동생은 하품을 하며 물었다.
"어떻게 바로 왔대?"
"신경이 쓰여서 말이지."
"별일 아닐텐데, 진짜로 괜히 말했나 싶네."
나는 부엌으로 가서 물병을 땄다. 한모금 넘기고서는 말했다.
"병원은 바로 가볼 수 있나?"
"출근해야지. 다들 오빠처럼 매일이 휴가인건 아니야."
나의 생활동안 가장 무뎠던 세상의 잣대 중 하나는 바로 '요일'이다.
날짜는 중요했다. 특히 음력. 달이 어느 위치냐에 따라 잘 관측할 수 있는 성운이나 별이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하지만 요일, 특히 언제가 토요일이고 일요일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캠프를 이동할 때, 고속도로나 큰 도로에 차가 많으면 주말이겠거니, 하며 다녔을 뿐이다.
"오늘 일찍 퇴근할테니깐, 여기 좀 있을래? 좀 씻고 쉬어. 그래도 옷이랑은 멀끔하네. 오빠가 그렇게 간다고 해서, 수염 엄청 기른 자연인처럼 되어있을 줄 알았어."
집은 따뜻했다. 해도 슬며시 창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화장실 문이 닫히고 물 틀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냉장고를 열어봤다. 성연의 집을 미니어처 형태로 옮겨놓은 듯, 냉장고 내부도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오빠!"
화장실 안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오빠, 위에 층 바닥 따뜻하니깐, 거기서 좀 자던지!"
"아냐! 너 씻고 나오면, 나도 좀 씻으려고!"
닫혀있는 화장실 문과 물소리 때문에 제대로 들었는지는 알 수 없다. 머리를 뒤로 넘기며 소파에 앉았다. 뒷머리가 손에 잡히는게 느껴졌다. 매일 잘 씻었고, 면도도 꼭 매일 했지만, 머리를 자르는 것은 혼자 할수 없다.
팔짱을 끼고 소파에 몸을 대자, 눈이 슬며시 감기기 시작했다.
휴전선에 가까운 위치에서부터 남해 끝자락까지 한밤 내내 운전해서 왔다는 사실이 실감났다. 언제 그랬는지 모르겠는듯 달콤하게 눈이 감겼다.
툭-
어깨를 치는 느낌에 고개를 흔들며 눈을 떴다. 머리를 뒤로 질끈 묶고 나갈 준비까지 다 마친 동생이 앞에 있었다.
"나 출근해. 내내 운전해서 왔나보네. 좀 자. 뜨신물 잘나오니깐."
성연은 손을 흔들고 나갔다. 나가기 전 집 비밀번호를 알려주었다.
엄마에 대한 걱정 하나로 쉬지 않고 달려왔는데, 막상 따뜻한 집 안에 몸이 들어오니 저절로 나른해졌다. 차에서 몇가지 짐을 가지고 올라왔다. 몸을 깨끗히 씻어내자 엄마에 대한 걱정도 다소 씻겨지는 것 같았다.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복층으로 올라갔다.
천장이 낮은 복층도 집의 다른 곳들과 마찬가지로 깨끗했다. 옷도, 책도 칼같은 각을 유지하고 있었다. '데미안'만 따로 이불 옆에 나와 있었고, 읽고 있었는지 책갈피가 꽂혀 있었다. 순간적으로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건 내 책이다.
주변을 좀 두리번 거렸다. 어렵지 않게 한 구석에 정리된 세계문학전집을 찾을 수 있었다. 이 생활을 시작하기 전, 집을 비우기 위해 정리하던 짐들 중 버리거나 처분하기 아까워서 성연에게 보냈던 바로 그 책들이다. 그저 보관하기 위해 이 집으로 보내놨을 뿐인데, 이렇게 나는 의도치 않게 내가 책을 보냈던 그 곳으로 오게 되었구나.
성연이 읽던 부분부터 데미안을 펼쳐들었다. 싱클레어가 내면의 혼란을 겪으며 답을 찾는 과정 중 음악가를 만나는 부분이다.
이불 속으로 몸을 밀어넣었다. 책을 다시 내려놨다. 베게에 얼굴을 대며 지난 밤을 복기했다. 지난 생활들을 복기했다.
원래의 계획대로면 100일 중 마지막 열흘동안 '별 보는 생활이 끝난 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구상하려 했다. 어디서 지낼지, 앞으로의 생계는 어떻게 꾸릴지 같은 것들 말이다.
나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엄마는 괜찮은 걸까. 데미안을 나도 읽으면서 잠들까. 온갖 연관성 없는 생각들이 뒤섞이며 빠르게 잠에 빠져들었다.
성연이 돌아온 건 오후 네시 무렵이었다. 복층에서 활개를 치며 자고 있을 때,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오빠, 가보자."
성연이 운전하는 차를 타본 건 처음이었다. 동생의 운전은 능숙했다. 차는 시원하게 고속도로를 타고 톨게이트를 지났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일곱시 정도였다.
성연은 능숙하게 병원의 엘레베이터를 탔고, 능숙하게 11층을 눌렀다. 그리고 능숙하게 요리조리 병실을 찾아갔다. 6인실 병동이었다.
물어보지 않았는데 성연은 설명했다.
"처음에는 2인실이나 4인실을 가려했는데, 엄마가 그게 더 불편할거 같다고 하시더라고. 예전에 수술하고 회복 때도 6인실이 오히려 넓고 편했다고."
이해할 수 있었다. 특히 2인실은 오히려 잘못 잡으면 두사람만 있는 그 적막함과 적적함을 감당해야 했다. 차라리 6인실은 조금 북적거려도 생기가 있었다. 엄마는 예전의 병원생활때도 그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병실로 들어섰다. 엄마 이름은 가장 끝쪽에 적혀 있었다. 성연이 커튼을 스윽 젖혔지만 침대는 비어있었다.
"이거봐. 엄마 괜찮아. 오빠가 올 정도 아니래도. 어디 돌아다니고 있을거야."
엄마가 없는게 오히려 안심이 됐다. 혼자 돌아다닐 정도라니.
성연은 제집인것마냥 냉장고를 열어서 비타민 음료 두개를 꺼냈다. 한병을 나에게 건내고는 다른 하나를 망설임없이 땄다.
"냉장고 이쪽이 엄마 칸이야."
"엄마 찾아와야 되는거 아니야?"
"아냐. 여기 있는게 나아. 기다리면 오실거야."
빈 침대에 걸터앉은 성연은 비타민 음료를 단숨에 들이켰다.
***
5분, 10분이 지나도 엄마가 오지 않자, 성연과 나는 병실 밖으로 나와 복도를 좀 걸었다. 그리고 휴게실에서 안경을 코에 걸치고 책을 읽던 엄마를 발견했다. 몸의 긴장이 탁 풀렸다.
"엄마!"
엄마는 안경너머로 성연을 봤고, 그 뒤의 나를 보고는 눈이 엄청나게 커졌다. 병원복을 입고 있는 엄마는 전혀 아파보이지 않았다.
"아이고."
엄마는 벌떡 일어나서 나를 안았다. 엄마가 읽고 있던 책이 의자 아래로 툭 떨어졌다.
"이.. 이 먼 거리를.. 오지 말지.."
엄마는 내 얼굴을 만지고 머리를 만지다가 팔을 만졌다. 나도 엄마를 안아주었다. 엄마는 나를 놓고는 이내 성연을 흘겼다.
"말하지 말래니깐.."
성연은 딴청을 피웠다. 엄마가 성연의 팔을 찰싹 때렸다. 성연은 피하며 의자 밑으로 떨어진 엄마의 책을 주워들었다.
"아, 그럼 엄마는. 오빠가 막, 어? 어디 아플때, 어? 막 우리한테 숨기고, 그러면 좋냐?"
엄마는 대답하지 못했다.
엄마는 성연이 전화로 해줬던 설명보다도 월등히 건강했다. 의사의 진료나 진단들도 큰 무리는 없어보였다. 먹는 약만 있는 듯했고, 꽂는 형태의 주사제는 아무것도 투여되지 않았다. 우리는 휴게실에 모여앉아 마치 카페에 온 것처럼 평온한 담소를 나눴다. 모두 엄마가 아프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의 대화는 온 곳으로 이어나갔다.
오빠, 엄마가 이번에 번역 시작한 작품이 있는데, 재밌나봐, 그거때문에 빨리 퇴원하겠대, 오빠가 좀 뭐라고 해봐. 요즘 젊은 능력자들이 너무 많아, 나같아도 이십대들 고용하지, 나처럼 육십 넘은 사람을 고용할까, 그래도 이번에 하고 있는 번역은 내용 자체가 재밌어서 빨리 다시 시작하고 싶은데 여기서는 좀 집중이 안되네. 아, 엄마 병원에서는 좀 미뤄놓자, 일단 건강하고 안전하다는거 확실히 확인받고 집에 가서 하면 되잖아.
성연이는 최근에 누구 소개를 받았는데 아주 꽝이었다고 하더라 깔깔깔. 엄마는 무슨 그런 얘기를 몇 달만에 본 자연인한테 하냐. 아니 성운아 들어봐, 회사에 그 누가 소개를 해줬다고 하는데 얼굴이 개그맨 그 누구를 닮았다고 하잖아, 얘가 지 주제도 모르고 외모를 봐. 참나, 엄마 그럼 뭐 나는 외모를 보면 안되냐. 지금 너가 서른이야 이것아. 하이고, 엄마 요즘 서른은 나이 많은것도 아니네요, 그럼 여기 자연인 아저씨는 뭐 아예 노총각이게. 노총각 맞지 그럼, 에그 우리 애들은 언제 지들 짝 찾으려나 몰라. 아, 그럼 엄마나 퇴원하면 연애하던지.
오빠 그리고 엄마 옆집 사는 가족 기억나? 그분들 이사가셨거든, 근데 그분들이 가시면서 이것저것 좀 주고 가셨는데 그 집이 부자잖아, 그래서 나중에 보니깐, 엄마 그거 뭐였지? 포장도 안뜯은 그 접시세트 이름, 하여튼 그게 무슨 브랜드인지도 모르고 까서 쓴거지, 근데 그게 어디 방송에 나오길래 검색해보니깐 접시 몇개랑 그릇 몇개 세트가 거의 몇십만원 하는거야, 그럴줄 알았으면 팔걸 그랬나 싶어. 얘는, 선물받은걸 어떻게 판다고 그러니. 엄마도 참, 웃으라고 하는 얘기지, 엄마도 뭐 선물 보냈다면서, 그 집 아들이 뭐가 잘 풀렸다고 그러던데.
오빠는 어땠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언젠가 누구에게라도 이 질문을 받았으리라. 밤 하늘의 깊이처럼 한없이 깊고아득한 지난 77일을, 바로 어제일 뿐인데도 꿈처럼 느껴지는 두달 반의 시간을, 어떻게도 잘 설명할 수가 없어서 나는 입을 열다가 닫을 수 밖에 없었다.
쉽사리 입을 열지 못하는 내 손을 잡고 엄마는 슬픈 표정을 지었다.
"엄마 때문에.. 갑자기.."
나는 단호하게 엄마의 말을 끊었다.
"아니야."
엄마가 단단히 오해하고 있다. 내가 뭐라고 설명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 시간들이 등 뒤로 지나가버린 아쉬움과 안타까움 때문이 절대 아니다.
단지 아름답고 평화로웠던 지난 몇 주를,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 최대한 알맞는 단어와 문장을 고르고 골라야 한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일분 일초가 행복했고 소중했던 시간들을 몇마디 비루한 말로 휘발시키고 싶지 않았다.
두 달 넘는 시간들이 머릿속에 쭈욱 펼쳐졌다. 지구에는 별처럼 많은 인간들이 숨쉬고 있지만, 그들 중 내가 기댈 수 있는 사람은 여기 두 사람 뿐이다. 쭈욱 펼쳐지는 장면들 중에 가장 아름다운 장면을 가장 생생하게 전해주고 싶다.
있잖아, 별 보는 일은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