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연재
엄마는 내가 돌아온 후 며칠 지나지 않고 퇴원했다. 갑작스레 강원도에서 전라남도로 돌아오게 된 상황이다보니 생활이 혼란스러웠다. 엄마의 집에서 당분간 지내기로 했다. 성연의 집에서 지내기에는 미안스러웠다. 혹은 엄마의 상태를 가까이서 당분간은 지켜봐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엄마와 같이 지내면서 막상 편해진건 나였다. 하루 한두끼를, 보릿고개 넘기는 형태의 식량으로 연명하던 나그네가 두어달만에 호사를 누리게 됐다. 하루 세끼를, 그것도 따뜻한 밥을 꼬박꼬박 정상적으로 먹게 됐으니 말이다. 병원에서 퇴원한건 엄마였지만, 오히려 엄마는 "아이고, 살이 빠졌네."하면서 자꾸 서른살이 훌쩍 넘은 아들의 밥그릇에 반찬을 올려주었다.
몸의 편안함과는 별개로 한동안 나는 부유하는 느낌이 들었다. 해야할 일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엄마도 그게 눈에 보였는지 계속 미안해 했다. 엄마는 "다시 갈꺼지? 얼른 다시 출발해야지."라거나 "여기서는 별 관측이 좀 어려운가?" 등의 말을 자주 물었다.
엄마는 내가 돌아왔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글쎄, 나에게 묻는다면 솔직한 심정은 뭘까.
계획했던 100일을 채우지 못했기 때문에 아쉬운건 맞다. 그런데 그게 뼈에 사무칠 정도로 안타깝거나 애가 탈정도로 섭섭하진 않다. 축구선수가 80분 정도 경기를 뛴 후 교체된 느낌이다. 훌륭한 80분을 보내지는 않았지만, 1인분의 능력은 충분히 발휘한 딱 그정도의 80분.
그래서일까, 엄마가 회복되는게 확인된다고 해도 굳이 못다한 스무일과 사흘을 다시 채우러 떠나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대신 당장의 생활이 내 시야에 우선 들어섰다.
엄마에게 얹혀서 사는 것도 길어야 서너달이다. 그렇다고 성연에게 얹혀살 건 더더욱 아니다. 내 밥벌이를 다시 찾아야 한다.
서울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은건 아니다. 나는 도서관이나 카페를 다니며 노트북으로 그동안 내가 쌓았던 커리어에 맞는 일자리를 찾아보고 이력서를 쓰곤 했다.
그리고 가끔 후회도 했다. 나는 왜 전 회사에서 굳이 휴직이 아닌 퇴직을 택했을까. 왜 나는 고작 별 보는 일에 나의 모든 것들을 벼랑 앞으로 밀어붙인 상태에서 추진했을까하는 후회. 만약 휴직이었다면 별다른 걱정없이 다시 복직해서 적당한 생활을 시작했지 않았을까.
나의 병원생활, 엄마의 병원생활, 그리고 나의 퇴사와 모험의 시작. 일련의 과정을 겪으면서 우리 세 가족은 좀 더 단단해지고 오밀조밀해진 듯하다. 성연은 적어도 사흘에 한번은 엄마의 집에 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식사를 하고 돌아갔다.
성연은 올 때마다 빈손으로 오는 법이 없었다. 동네 핫한 카페나 식당에서 작게라도 꼭 간식거리를 사왔고, 우리 가족의 담소에 충분한 안주가 되어 주었다.
엄마와 성연은 누구도 나에게 앞길을 묻진 않았다.
엄마의 집에서 누리는 나날들은 비록 앞길에 대한 걱정은 있었을지언정 춥진 않았다. 따뜻함을 누리며 필요한 고민과 걱정을 향유하는 일상. 그리고 때때로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 시간이면 천막을 설치하고 있겠구나 하는 소량의 그리움 정도.
괜찮은 생활이었다. 엄마가 느끼는 미안함과 죄책감은 전혀 불필요한 것일 정도로.
NASA에서 J 우주 망원경으로 찍은 최신 사진을 공개했다. J 우주 망원경이 찍은 사진은 'Pillars of Creation'이라는 명칭이 붙어있다. 창조의 기둥. 과학자는 과학만 잘해서는 안되나보다. 별들이 보여주는 모양새와 빛깔, 전해지는 감각에 걸맞는 이름을 붙일 창의성까지 있어야 하나보다. 그런면에서 '창조의 기둥'이라는 이름은 다른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학부생 시절 이 사진을 본 적이 있다. 1995년 처음 찍힌 이 사진은, 당시 허블우주망원경으로 찍혔고 그 아름다움과 촬영상태의 훌륭함 덕분에 내가 재학중이던 시절까지도 교과서에서 볼 수 있었다. 이번 최신 사진은 똑같은 위치를 J 우주 망원경으로 다시 촬영한 것이다.
두 사진은 전반적으로 동일하다. 하지만 형태의 유사성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J 우주 망원경의 화소나 화질은 압도적이다.
처음 허블우주망원경으로 창조의 기둥이 촬영되었을 때는 다들 경탄하면서 '앞으로 이런 촬영을 언제 해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우주를 향한 인간의 집념은 대단했기에 이제 우리는 더 정밀하고 밝게 창조의 기둥을 볼 수 있게 됐다.
엄마의 집에서 생활하면서 자주 그런 생각을 했다. 다시 지난 몇 달같은 시간이 올까. 그게 꼭 별 볼일이 아니라도, 온전히 한 곳에 집중하면서 평화롭고 열정넘칠 수 있는 시간.
나는 모험 생활을 하면서도, 돌아오고 나서도 '이제 그런 생활은 없겠지.'라고 되뇌이곤 했다. 하지만 결국 다시 찍히고만 창조의 기둥 사진을 보면서, 과연 세상에 '앞으로는'이라는 한정용법으로 단언할 수 있는게 있긴 할까라는 반문이 생겼다.
혹시 모르지. 허블우주망원경이 찍었던 사진을 J 우주 망원경이 훨씬 제대로 찍어낸 것처럼, 나의 언제가 될지 모르는 다음 별 볼일은 훨씬 더 완성되고 만족스러운 모습으로 펼쳐질지도.
사진을 보고 감탄하다가 노트북을 덮고 쌍안경을 든 채 옥상으로 올라갔다. 5층 빌라의 옥상은 공용공간처럼 사용되고 있었다.
나는 여기저기 하늘을 보며 몇 주전 하루하루처럼 밤하늘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별 하나하나가 인사를 건낸다. 이제 밤공기는 춥다. 11월 끝자락의 찬 바람은 가디건 틈새로 날카롭게 스며들었다.
쌍안경을 내리다가 왼손목의 시계가 눈에 걸렸다.
11월 28일.
그렇구나. 오늘은 출발 이후 딱 100일째였다.
삽입된 사진 중 왼쪽은 2022년 제임스 웹 우주 망원경으로 촬영한 '창조의 기둥'이고, 오른쪽은 2014년 허블 우주 망원경으로 촬영한 '창조의 기둥'입니다.